나의 삶을 가꾸어 나가기로 했다
근 한 달 동안 인터넷으로 '성인미술'이라는 키워드를 검색했다.
나는 MBTI 유형의 '판단-인식' 부분이 명확한 'J'이다. 철저한 계획유형인 데다가 확신이 설 때까지 재고 비교하고 따지느라 가끔은 답답해 보일 정도로 결정이 좀 늦다.
나이 들어서 심심하지 않게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취미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느리더라도 성장의 느낌으로 동기부여 되어 오래 싫증 나지 않고 좋아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를 생각하다가 그림을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도 수개월이 지난 뒤에서야 본격적으로 인터넷 서칭을 하며 실행에 옮긴 것이었다.
그림을 배워보는 것을 그래도 빨리 실행을 할 수 있었던 건 아이에 대한 생각을 잊기 위한 다른 몰입할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집에 있으면 온 신경이 아이에게 집중이 되고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 점점 더 불안을 가중시켰다. '회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불안을 견뎌내며 내가 의연하게 내 자리를 지키기 위한 기다림의 노력이었다.
초등학교 졸업을 6개월쯤 앞두고 엄마 손에 이끌려 찾아간 화실은 당시 나에게는 신세계였다.
여러 개의 큰 이젤 앞에서 각자의 작업에 몰입하는 분위기에도 매력이 느껴졌지만 정물과 풍경이 그림으로 실제처럼 표현되는 것은 정말 신비로웠다. 그런 다른 사람들의 작품을 마음껏 구경할 수 있는 것도 재미있었고 언제쯤이면 나도 저렇게 그릴 수 있을까 하는 부러움은 나를 저절로 열심히 하게 만들었다. 미술학원에 다닌 기간은 6개월 정도로 잠깐이었지만 미술학원에서의 기억은 내가 무언가에 푹 빠져 몰입했던 첫 경험이었다.
살아오면서 '몰입'과 '내적 동기부여'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나는 항상 초등학교 시절 미술학원에서의 경험이 떠올려졌다. 우리가 자발적으로 동기부여 되어 무언가를 할 때 얼마나 열심이고 적극적일 수 있는지 나는 이때의 경험으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당시 주 5회 하루 두 시간의 수업이었던 것으로 생각난다. 방과 후에 따로 배우는 것도 할 일도 없었던 나는 이 시간이 매일매일 기다려졌다. 요일별로 데생, 소묘, 수채화, 구성 등 프로그램이 다양했어서 오늘은 어떤 걸 하게 될지 그리고 내가 또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낼지 기대를 하게 만들었다. 매일 두 시간밖에 안 되는 수업시간이 늘 아쉬워 끝나고도 바로 자리를 뜨지 못하고 다음 시간 입시반 언니 오빠들의 그림을 한참이나 구경하고서야 미술학원을 떠났다. 그리고 가끔은 집에서 못다 한 것을 완성하느라 밤을 새우는 줄도 모르며 하기도 했고 주말 동안 무언가를 더해가서 선생님께 보여드리고 평가를 받고자 하기도 했다. 화방에 가서 미술도구를 구경하는 일도 용돈을 아껴 하나씩 구입하는 일도 당시 나에게는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그렇게 한 6개월 즈음 지났을 때 선생님은 나에게 미술에 소질이 있는 것 같다며 입시반 이야기를 꺼내셨고 그 이야기를 들으시고 엄마는 이제 그만 다녀도 될 것 같다고 하셨다.
35년이 지나 예전의 설레었던 기억을 가지고 다시 화실을 찾았다.
어린 시절 기억 속의 화실에 비해 공간이 협소했다. 성인 위주의 화실이라 그런지 서로 말없이 알아서 뭔가를 하는 모습이었고 사람들의 수준도, 사용하는 재료들도 제각각이었다. 모두가 취미 생활일 텐데 전문가 수준의 실력을 보유한 사람들도 직업만큼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도 많았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남의 그림을 구경하는 일은 정말 재미있었다. 그리고 그림을 한참 보고 있으면 그 그림을 그린 사람이나 그림에 대한 배경, 걸린 시간, 재료 등에 대한 이야기들이 궁금해서 살짝 선생님께 여쭙기도 하며 그림을 통해 다양한 살아가는 모습들을 엿보기도 한다.
미술 실기점수를 위해서 같은 명확한 목표는 없지만 여기서의 시간이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으로 힐링이 되고, 마음의 안정을 위한 치유의 시간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기대가 있었다. 그리고 하나하나의 그림을 완성해 가며 뿌듯함을 느끼고 그것으로도 자존감을 회복했으면 좋겠다.
그동안 아등바등 살아오면서 내가 가족을 위해 많은 것을 양보하면 살아왔다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은 자연스럽게 언젠가는 보상을 받고 싶다는 마음을 만들었다. 그러나 내가 보내온 시간들과 내가 선택한 일들을 '희생'이나 어쩔 수 없는 '양보' 였다고 생각하면 그 시간에 대한 책임을 타인에게 전가하는 일이 되고 고스란히 피해의식이 생기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스스로를 불행의 늪으로 빠지게 만드는 일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부터는 나에게 투자하는 일들과 시간들을 점점 더 많이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한 과정에서 내가 주인이 되는 '나의 삶'에 정성을 다할 수 있고 그래야만 삶의 여정에서 어떠한 피해의식도 없이 온전히 느끼고 수용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이 아이가 아이의 길의 건강하게 걸어갈 수 있도록 진정한 응원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