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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ice Feb 17. 2024

기다림의 시간

끊임없는 자기 암시가 필요하다

이제 얼마 후면 다시 새 학기가 시작된다. 그리고 여느 아이들은 또다시 새로운 각오로 학교에 등교를 하게 될 것이다. 새로운 선생님과 새로운 친구들과 새로운 것을 배우는 시작의 시기. 시작은 누구에게나 설렘과 희망과 기대를 갖게 하여 절로 활기를 더해 준다.




2개월이 넘는 긴 겨울 방학 동안 아이는 자신의 방에서 은둔생활을 하고 있다. 밖에 나가는 일도 없었고 식사도 하루 한 끼, 라면 같은 인스턴트식품으로 대충 때우며 지냈다. 친구와 연락을 하지도 않는 것 같고 누구와도 전화하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가끔 아이 방문에 귀를 대고 한참 동안을 서서 소리를 찾아보곤 했는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곰이 긴 겨울잠을 자듯 아이는 종일 방에서 미동도 하지 않고 누워 지내는 것 같았다.


아이는 지난 고등학교 1학년을 학교만 다녔을 뿐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평가에 제대로 응하지 않았다. 1학기까지 일부 과목만 시험을 치렀는데 2학기 들어서는 보란 듯이 전 과목 백지를 내고 왔다. 그런 아이를 보면서도 나는 지난 12월 방학이 시작되며 '그래도 이번 방학 시간을 열심히 지내면 아직 늦은 건 아니야' 라며 아이에 대한 놓지 못한 기대를 그렇게 막연한 희망으로 만들어 스스로를 위로했었다. 

그리고 그런 마음에서 조급함이 더해져 작년 말 그리고 올해 초 아이 방문 앞에서 아이에게 말을 걸었었다. 다시 시작해 보자고. 늦지 않았다고. 엄마가 도와주겠다고... 그런데 아이는 다시 말 걸면 더 막 나가겠다는 내용으로 방문 앞에 거친 말투의 쪽지를 붙여 대답을 대신했다. 


우리 아이에게 기회의 시간이 되어 줄거라 희망을 가졌던 방학이라는 시간이 이렇게 허무하게 지나가고 있다.

이제 무엇으로 희망을 가져야 할지, 무엇으로 아이에 대한 믿음을 이어가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그러다가도 정말 우리 아이가 의료적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로 문제가 있는 건가, 이대로 지내다가 폐인이 되어버리는 건 아닌가 겁이 나고 무섭기도 했다. 그리고 '그냥 하루종일 친구들과 어울려 놀더라도 밖에 좀 나가지.', '무기력하게 누워있지만 말고 게임이라도 하는 게 차라리 더 낫겠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제는 아이가 세끼 식사를 잘했으면 좋겠다는 게 매일매일의 바람이 되었고, 새 학기가 시작되었을 별일 없이 학교에 나가면 좋겠다는 게 간절한 소망이 되었다. 그렇게 나의 아이에 대한 바람은 방향이 바뀌었고 기대라는 말을 붙이기에 너무나 초라하게도 보편적인 일상이 나에게는 간절한 소망이 되었다.


'아이는 부모를 끊임없이 시험할 것'이라는 상담선생님의 말씀이 자꾸 되뇌어진다. 무엇 때문에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나에게 아픔을 주며 아이는 나를 시험하려고 하는 것일까. 우리 부부의 갈등으로 아이에게 편안한 가정을 만들어 주지 못했고, 힘들어하는 아이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못하고 위로가 되어 주지 못했고, 방황하는 아이를 탓하며 몰아붙였던 나의 잘못에 대한 아이의 계획적인 복수일까. 아니면 부모의 자격이 없는 한없이 어리석었던 우리 부부에게 반성과 뉘우침의 시간을 주시려는 신의 뜻일까. 

그 자성적인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나는 오늘도 막연한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기다리는 일.

끝을 가늠하거나 끝이 확실한 기다림 조차도 성격이 급한 나에게는 지루한 일이다. 하물며 아이에 대한 이 기다림은 그 시간을 가늠할 수가 없다는 게 더없이 견디기가 힘들다. 나에게는 너무나도 어려운 그 큰일이 내가 지금 해야만 하는 일이고 매일 해야만 하는 숙제가 되었다.

내 기다림으로 아이가 활기를 찾고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면 나는 언제까지이고 그 기다림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할 수 있겠다 싶다. 그러나 나의 기다림으로 아이가 다시 되돌아올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는 건 또 다른 일로 내가 만들어야 가야 하는 일이다. 


그래서 근거가 없어도 막연해도 나는 오늘도 자기 암시를 한다. 나에게 스스로 끊임없이 주술을 건다. 바람과 소망이 확신이 되고 믿음이 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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