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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ice Feb 24. 2024

품 안의 자식

아이를 품에서 떠나보내는 일

회사에서 함께 일하는 J는 작년에 결혼한 까마득한 후배이다. 얼마 전 임신한 아내의 정기검진으로 주중에 휴가를 내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올여름 태어날 첫 아이로 요즘 한창 기대에 부풀어 있는 모습이 옆에서 보기에도 참 흐뭇하다. 아이를 품을 기대에 벅차있는 J이야기를 하며 잊었던 과거의 시간들이 자연스럽게 하나 떠올랐다.



아이를 임신하면서 모든 엄마들이 그렇듯 온 신경이 배속의 아이에게 집중이 되었다. 매일매일의 나의 일상이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 배에 품은 10달 동안 그야말로 모든 것을 아이와 연결 지어 생각하게 되었다.

한 달에 한번 정기검진이 손꼽아 기다려지는 날이었고 초음파 영상으로 아이를 보는 것은 엄청난 신비로움이었다. 영상 속 아이의 작은 움직임에서 이유를 찾고 그것이 종일 남편과의 이야깃거리가 되었었다. 태동을 느끼며 태어날 아이에 대해 온갖 상상을 했던 시간도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만 가질 수 있는 즐거움이었다.

배속에 품고 있을 때가 편하다는 말이 그때는 전혀 실감할 수 없을 정도로 하루하루 아이와 만날 날만을 기다렸었다. 그리고 출산의 고통보다 아이와 만난 기쁨이,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났다는 안도와 감사함이 더 컸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태어난 아이의 눈동자를 보며 나는 아기들의 눈동자가 정말 깨끗하고 맑은 것에 놀랐었다. 누군가가 아이들은 누구나 티 없이 맑고 예쁘게 태어나는데 어른이 되면서 죄를 많이 지어 눈동자가 흐리고 탁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했다. 과학적 근거는 없을지라도 아기들의 눈동자를 보고 있으면 모두가 천사 같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기에 그냥 그 말에 수긍이 가게 된다.



누군가는 아이를 품을 생각에 아이와의 함께 하게 될 행복한 미래에 대해 꿈꾸며, 좋은 부모가 되고자 다짐하며 기쁜 생각에 잠겨있을 지금 나는 아이를 이제 품에서 떠나보낼 준비를 한다. 아이를 품을 때와는 달리 아이를 품에서 떠나보내야 하는 일은 아쉬움으로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참 먹먹하고 아려온다. 아이와 함께 한 시간 동안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지 못했던 미안함이 제일 크고 이제는 내가 뭔가를 많이 해줄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 한없이 아쉽다.


아이는 이제 천천히 홀로서기를 해 나가야 할 때이고 앞으로 세상에 부딪치며 다치고 아파할 많은 일들도 이제는 한 사람으로 어른으로 스스로 이겨나가야 한다. 아이가 어른으로 마주하고 살아갈 세상과 그 시간에 대한 기대보다는 아이가 겪게 될 아픔과 혹시 모를 상처에 대한 걱정스러움과 염려가 더 크다.

좀 더 단단한 사람이 되도록, 쉽게 좌절하지 않는 용기를 갖도록,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도록 내 품 안에 있을 때 많은 사랑과 격려로 도와주었어야 했는데 하는 후회가 한없이 밀려오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아이가 헤쳐나가야 하는 몫이 되어 간다. 품 안의 아이를 떠나보내야 하는 것은 아이를 품으로 맞이할 때 보다 훨씬 힘들고 어려운 일인 것 같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떠나보내는 일도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부모로 아이를 품고 있을 시간이 고작 20년인 것이다. 그 시간이 다 되어가는 지금은 그 기간이 짧게 느껴진다. 남은 기간 동안 아이가 좀 더 올바르고 좀 더 강인하게 설 수 있도록 나는 아이를 응원할 것이다. 그동안 아이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못했던 나의 잘못을 용서받을 수 있다면, 그리고 나로 인해 받은 상처가 아물고 미움이 누그러질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싶다.

언젠가 어른이 된 아이가 세상에 지쳐 힘들어할 때 따뜻한 휴식처로 나를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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