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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북리뷰100

새 해를 시작하기 전_일단 멈춤

<그냥 하지 말라>, 송길영, 북스톤

by 늦된 사람

나는 거의 마지막까지 2G 폰을 사용했다. 스마트폰이라는 신세계에는 아이를 낳고서야 입문하였다. 팔뚝 길이만 한 생명체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도저히 알 방법이 없었다. 물어볼 곳은 마땅치 않고, 필요한 물건은 있는데 사러 나갈 수도 없고. 그제야 핸드폰만 있으면 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세상이 있다는 것에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곧장 갈아탔다.


중학생 시절 012 삐삐를 거쳐, 대학 입학을 구실로 강매당한 016 핸드폰(삼촌의 판매 할당량을 채워야 했다.), 나의 최애템 011 모토로라 라임 폰까지. 여기까지 오는 데에 10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스마트폰.

출발이 늦었든 어쨌든 간에 이미 이 안에 나의 모든 기록과 생활이 들어있다.


은행을 가본 지도 1년이 다 되어가고, 가전제품 매장을 실제로 가본 적은 언제인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스마트하게 매장에서 상품의 실물과 가격을 확인하고 실제 구매는 앱을 통해 최저가를 검색해 결제한다.

유튜브가 나의 취향대로 선곡해준 음악을 들으며 노트북으로 글을 쓴다.


지극히 평범한 어느 40대의 장면이다. 내가 있는 곳이 시골인지, 도시 한복판인지 나의 공간적 배경이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코딩을 전혀 알지 못하는 나도 나의 생활은 코딩된 세계로 꾸려간다. 생산의 언어를 갖지 못한 나는 철저한 소비자로서 이 세계에 있다.


나만 이상한가?


2020년 3월, 타의로 집에 갇힌 그때에 연결통로가 sns라는 것을 이제야 절감했다. 정신 건강을 위해 하지 않는 편을 택하며 띄엄띄엄 대하던 것을 이때부터는 주도적으로 무인도에서 구출 신호를 보내듯 외롭고 싶지 않아 나를 발신하였다. 새로운 나라로 이민 가서 그곳의 문화와 생태를 익히듯 해당 sns 세계의 에티켓과 표현을 알아갔다. 내 게시물도 거기에 점점 맞춰갈 수 있었다.


인기를 얻는 게시물이 나의 정서와 맞지 않을 때는 세상이 이상하게 보이기도 하고,

내가 올린 게시물은 왜 인기가 없을까 싶어 은근슬쩍 따라 해보기도 한다.

국룰에 거슬리는 행동은 없는지 자기 검열을 하고, 남들 좋다는 데는 가보고 싶고 남들 싫다는 데는 왠지 꺼리게 된 나를 발견하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남들 하는 대로 따라 하기 싫어하는 나와 그럼 어떻게 할 건데 하고 길을 잃은 나 사이의 복잡한 동거 상태로 2021년 지금까지 왔다. 부러움에서 끝나는 것을 넘어 먹고사는 문제까지 달린 지금의 변화와 그 변화의 속도를 떠밀리듯 지금이라도 알아야 했다. 취향으로 2G 폰을 선택할 수는 있으나 예전의 나처럼 스마트폰을 몰라서는 생계가 곤란한 때가 되었다.


시대의 흐름이 변한다고들 하는데 그 시대를 이끄는 것이 누구인지, 무엇 때문에 빨라지는지도 모른 채 급류에 휩쓸리고 싶지는 않다. 보트가 뒤집어지기 전, 중심을 잡고 나의 의지로 노를 젓고 싶다.


그냥 하지 말라
당신의 모든 것이 메시지다
-송길영

2022년이라는 새 해로 여행을 떠나기 전, 바뀐 지도를 읽어낼 수 있도록 새로운 독도법을 공부하는 심정으로 읽어나갔다. 거기에는 빅데이터라는 구체적 근거에서 건져낸 사람의 욕망과 어쩌면 꽤 오래전부터 조금씩 바뀌던 흐름이 급물살을 타며 진로를 바꾼 시대가 담겨 있었다.


쉽지 않은 변화의 방향과 속도를 맞추기 위해 내 삶의 방향을 다시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일단 도전!' 하는 식으로 그냥 하지 말고,
세상의 변화에 내 몸을 맞추는 과정을 성실하게 치러내시길 바랍니다.
성실은 의미를 밝히고 끈기 있게 헌신하는 것입니다.
근면은 생각이 배제된 성실함이고요.
앞으로의 시대는 생각 없는 근면이 아닌 궁리하는 성실함이 필요합니다.
'그냥 하지 말라'라고 말씀드리는 이유입니다.

<그냥 하지 말라>, 송길영, p281, 북스톤


여행을 떠나기 전 우리는 여행지를 탐색하고, 그곳의 기후와 조건에 맞는 장비를 챙긴다. 새 해라는 미지로 떠나기 전 일단 멈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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