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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늦된 사람 May 05. 2022

오늘은 어린이날 100주년

손님 대접

오늘은 어린이날 100주년.

방정환 선생이 이 땅에 처음 어린이날을 외칠 때, 그의 곁에는 굶주리고 작은 손으로 노동해야 하는 어린이들은 목적이며 이유였고, 동지였다.


매년 열리던 '어린이날 큰잔치'가 코로나로 중단되었다가 2년 만에 다시 열린다. 아이는 엄마 아빠 없이 친구들과 다녀오겠다며 물 한 통을 챙겨 넣은 보조 가방을 메고 신나게 집을 나섰다.


2022년의 어린이날, 지금의 시대 과제를 묻는다.

아동노동이 당연하던 사회를 뚫고 지나와 여기에 이른 지금. 아동 인권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현재에 있지만

과연 그러한지 나에게 물어본다.


코로나로 많은 어른의 삶이 피폐해졌다. 나 역시, 소상공인 자영업자로 살아온 지난 시기는 근근이 버티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피폐한 어른의 삶은 스스로를 돌볼 수 없고 누군가에게 의탁해야 하는 어린이를 포함한 노약자의 삶을 위협했다. 이 위협은 때로는 생명을 앗아가는 극단적인 결과로 나타났다. 정태춘 선생이 90년대 부른 민중가요 속 이야기가 코로나 시기에 다시 일어나는 비극을 우리 모두 목격했다. 그뿐인가. 자신을 보호하고 방어할 최소한의 힘과 수단이 없는 이들은 조금 더 힘센 자들(부모를 비롯한 어른들)의 부정적인 감정과 분노에 무방비 상태로 늘 노출되어 있다. 가장 손쉽게 화를 내고, 함부로 대하는 상대ㅡ내 자식. 내 기분과 감정에 따라 멋대로 할 수 있는 대상에게 아무렇게나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처넣듯 나의 분노, 불안, 좌절 등의 부정적 감정을 내 옆의 노약자에게 쏟아낸다. 코로나로 가정폭력과 아동학대가 증가했다는 것은 인간이고 싶은 우리 모두의 비극적인 날것의 현실이다.


비록 시대와 역사가 우리를 망쳐놓았더라도(파친코)

우리는 인간이고 싶은 우리의 삶을 계속 이어나가야 한다.

어느 땅에는 폭격기가 떨어지고, 어느 땅에는 어려서 범죄의 표적이 되고, 또 어느 땅에서는 내 자식이라는 이유로 부모가 생사여탈권을 가진다.


오늘 어린이날 100주년.

나는 잠시 눈을 감아 전쟁과 기아 속에 놓인 얼굴 모르는 어린이들의 안녕을 기원한다.

나는 나보다 약하다는 이유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모든 범죄행위가 이제는 엄히 처벌되길 바란다.

나는 내 집의 어린이를 내 소유물로 여기지 않고, 내 집을

 방문한 손님으로 대접한다는 초심을 다시 다져본다.


온세상  어린이가 하하호호 웃는 웃음소리가 달나라까지 울려 퍼지는 그날이 오면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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