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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구비 Oct 26. 2024

[단편소설]죽음을 받아들이는 방법(2)

K는 섬망이 있는 치매 환자의 날을 보내고 있었다. 왠지 이렇게 유독 비슷한 환자가 몰리는 날이 있다.   환자는 소리를 지르다가 갑자기 콧줄과 수액 라인을 뽑아버렸고, 다리에 붕대를 두른 환자는 침상에서 나가겠다고 침대 난간을 탕탕 쳤다. 그는 점점 무질서해지며 어둠으로 꺼져가는 정신을 대증치료로 되돌려 보려고 노력하면서,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 일인가 자문했다. 그러다 이내, 엷은 의식이라도 부여잡을 수밖에 없는 것은 심연이 뒤에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자답했다.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는 마지막 환자인 81세 남자 환자가 있는 61 병동에 도착했다. 담당 간호사에게 환자 상태가 어떠냐고 물어보자 그의 가운 이름표 부분을 흘끗 보는 것이 느껴졌다. 이 환자를 협진하러 오는 의사가 한두 명이 아닐 텐데 너무 막연 질문이었다. 그는 서둘러 밤에 잘 자는지 돌보는데 어려움이 없는지 덧붙여서 질문했다.

"잠은 잘 못 주무시는데 소리 지르거나 난폭하지는 않아요. 그런데 혼자 중얼중얼 말하고 계세요. 뭐 하세요 물어보니까 할미랑 이야기하고 있대요. 여긴 보호자는 없는 병동인 거 아시죠?"

상태가 그리 심각하지 않게 들렸다. 맞은편 다인실에 들어가니 노인이 상체를 비스듬히 올려서 기댄 채 졸고 있었다. 피부가 버석거리는 건조한 낙엽을 떠올리게 다. K가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눈을 뜨더니 움푹 파인 눈으로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코에 산소가 공급되는 초록색 관을 끼고 있었지만 말하는데 지장은 없었다.

"김수남 님, 여기가 어딘지 아시겠어요?"

"여기가 어디긴, 병원 아니여?" 

노인은 '우리 집'이나 '시장', '공장'처럼 흔한 오답을 대지 않았. 

"맞아요, 잘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요즘 밤에는 꿈과 현실이 잘 분간이 안 되는 상태예요. 폐렴이 낫고 잠을 잘 주무시게 되면 좋아지실 거예요."

"나 어젯밤 기억은 다 나. 밤에 할미가 나를 데리러 왔나 봐. 이제 살 만큼 살았어."

"무슨 소리예요, 다른 지병도 없고 건강하신데, 금방 다 나아서 퇴원하실 거예요."

K는 그만 돌아서려다가 확인차 한 번 더 질문을 던졌다.

"밤에 할머니가 보였어요?"

노인은 고개를 까딱하며 반응했지만 자발적으로 이야기해주지 않아 일일이 K가 물어보아야 했다.

입원하고부터 이따금씩 자기 근처에 있는 부인이 보였다. 젊었을 적 모습을 하고 있는 그녀는 살아있는 사람과 잘 구별이 되지 않았다. 병실의 문가나 침상을 가리는 커튼 옆, 수액이 걸려 있는 이동형 폴대 옆에 서 있다가 사라졌. 가까이 다가가서 말을 걸어 보았지만 그에게 아무런 답도 해주지 않았다. 그래도 노인은 부인이 눈에 띄면 자꾸만 말을 게 되었다.

"보고 싶을 때는 꿈에도 한 번 안 나타나더니 이제사 나타나데. 내가 죽을 때가 됐나 봐."

죽을 때가 됐다는 말을 연신 하면서도 노인은 얼굴을 찌푸리지 않았다. K는 궁금증이 일었지만 더 이상 질문을 했다가는 노인이 숨차할까 봐 그만 물러났다.  


며칠 뒤에 협진 환자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나 차트를 열어보던 중, 그는 김수남 환자가 중환자실로 옮겨진 것을 발견했다. 주치의는 보호자인 딸로부터 심폐소생술 거부 서약서를 받았다고 기록해 놓았다. 노인이 끝내 이번 폐렴을 이겨내지 못하고 곧 세상을 떠날 운명이었다. K는 사별한 배우자가 보였다는 이야기가 불현듯 생각났고, 노인의 환각이 치매나 섬망에서 나타나는 것과는 좀 달랐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죽음을 앞둔 이에게 각별한 사이였던 망자가 나타난다 것은, 오래된 이야기였지만 여전히 마음을 홀리는 데가 있었다.  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라고 하자 보란 듯이 신비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만 같았다.


샛문으로 나와 보니 흐린 가을날이었다. 공원 진입로 보도에 인부들이 모여 타일을 걷어내고 있다가, 되돌아가려는 K에게 손짓을 했다. 그는 인사하는 듯 어정쩡하게 몸을  굽히고 경계석 위로 지나갔다. 숲에 들어서니 어둡고 조용했다. 낙엽과 단풍나무 씨앗이 빗물을 머금고 흩어져 숲길바닥에 들러붙어 있었다. 더위로 불쾌한 시기가 지나자마자 스산해졌다. 김수남 환자 이야기를 생각하니 더 서늘한 느낌을 받았다. 처음에는 '뇌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영혼'과 같은 옛날이야기에 반발심이 들었지만, 어느새 K는 그 낡은 이론을 옹호하며 현상을 설명하려고 시도하고 있었다. 어떤 문화권에서든지 대부분 영혼이라는 개념이 있고 유아기부터 영혼이라는 개념을 쉽게 이해한다는 것이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삶을 시작하는 시기와 마치는 시기가 힘들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었다. 그래서 어쩌면, 영혼이란 게 있다면, 신체에 결합하는 것과 분리되는 과정이 힘든 것 아닐까 K는 의심해 보았다. 그 때문에 우리가 이 세상에 오고 나서 한동안을 기억하지 못하는 유아 기억 상실증이 있고 떠나기 전에는 치매가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또 며칠을, 엘리베이터에서 한 환자의 인사를 받기 전까지, K는 틈만 나면 시선이 점점 아래로 향하면서 엉뚱한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는 노인들이 섬망을 겪는 것과 비슷하게 어린 시절 잠에 들기 전 환각을 경험했었다. 한동안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밤에 불을 끈 뒤 이상한 존재들을 보았고 특히 아플 때 많이 보았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것이 정말 환각이었을까, 왜 동생이 아플 때도 보였을까. 선생님, 하고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다행히 기억이 나는 환자로, 자녀가 없어서 그런지 여전히 소녀같이 조심스럽고 부드럽게 말하는 중년 여성이었다. 어머니가 노환으로 돌아가실 즈음 많이 힘들어하여 매일 울고 공황발작을 했었다.

"저희 아버지가 폐렴에 걸리셨어서 입원했다가 퇴원하는 길이에요."

옆을 보니 모자를 쓰고 환자복을 벗은 모습이었지만, 바로 그 김수남 환자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K가 흠칫 놀라서 노인에게도 인사하자,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를 왜 보았는지 딸이 궁금해했다.

"늬 엄마가 자꾸 보이니까 불렀나 보지."

"정말, 엄마가 보였어? 어떤 모습이었어?"

 그녀는 얼굴이 밝아져서 아버지에게 물었고 부녀 간의 대화가 활기를 띠었다. 1층 로비에서 회전문을 향해 걸어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K는 미안한 느낌을 받았다. 건강해진 김수남 환자를 보고 놀라기만 한 것이 아니라 실망하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바보 같은 기대를 했어. 사람들이 제보하는 신비한 일들에 대한 이야기는 결국 이렇게 거짓으로 끝나는 게 많잖아. 그런데도 사람들은 또 새로운 제보에 기대를 걸게 된단 말이야."

"그래도 이번에는 비참하고 고통스럽지 않은 끝을 본 거 아닐까?"

"아니, 끝이 아니잖아, 그분은 아직 정정하게 살아계신 걸."

그는 잠시 생각했다가 다시 아내에게 말했다.

"그렇지만 왠지 그 노인 분은 편안하게 세상을 떠나실 것 같긴 해."

그리고 어쩌면 G 역시, 섬망 속에서 조금은 편안하게 떠났을지도 모른다 생각했다. 그가 평생 몸 담은 의학계에서 나온 신약이 자신을 살려낼 것이라는 희망은 강력한 위안이 되었을 것 같았다.  

K는 여전히 죽음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고 그 생각만 하면 무거운 느낌을 받았다. 다른 영역에서 과학을 비교적 신뢰했음에도 죽음에 관한 한 과학적 설명을 받아들이기 두려웠다. 신비한 풍문은 허점이 많았음에도 진실이길 바라는 마음을 떨쳐내기 어려웠다. 그렇지만 그에게 실제로 죽음이 임박했을 때 정신이 그렇게 괴롭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것, 그 기대가 작은 위로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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