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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구비 Nov 12. 2024

[단편소설] 친절한 보호자

* '친절한 보호자' 편은 실화를 바탕으로 각색한 이야기입니다.




K는 이사 준비를 하다가 낡은 편지 상자를 발견하고는 정리를 미룬 채 편지를 읽었다. 대체로 입가에 미소를 띠게 되는 글들로, 역시 편지는 감사를 표현하기에 좋은 선물이었. 그중에는 환자 M의 여동생이 써주었던 편지도 있었다.

"오빠가 앞으로 대학병원을 떠나 잘 지낼 수 있을까 불안한 마음도 듭니다. 이 만큼 좋아진 데는 담당 교수님 뿐 아니라 주치의 선생님의 노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아요. 그동안 오빠를 잘 치료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예의 바르고 적절해 보이는 편지였다. 너무 관습적인 수사를 반복하지 않고 진심이 담긴 듯했다. 하지만 K는 이 편지를 읽고 M과 그의 여동생을 회상하니 마음이 어두워졌다.


M은 교통사고로 뇌 손상을 입어서 지능이 저하된 40대 남자 환자였다. 머리뼈를 재건하기 어려웠는지 이마에 가까운 왼쪽 면이 움푹 파여 있었고, 수술하고 스테이플러로 봉합했던 자국인 짧은 까만 선이 지퍼처럼 늘어서 있었다. 흐리멍덩한 큰 눈은 눈 맞춤이 잘 되지 않고, 벌린 입으로는 말 대신 어, 어, 하는 신음소리와 침이 조금 흘러나왔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흔치 않게 면담이 거의 불가능한 환자였다. 함께 온 간병인이 M이 할 수 없는 답변을 대신해 주었다. M은 병전에 일용직을 전전했고, 한 번도 결혼한 적이 없었고, 지금은 여동생이 보호자 역할을 해주고 있다고 했다.    


사고 후 M은 일 년 넘게 재활병원에 입원해 있었지만, 여전히 잠을 잘 못 자고 때때로 난폭한 행동을 해서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왔다. 정신건강의학과  약물 복용을 시작하니 어느 정도는 효과가 있어 보였다. 그렇지만 치료를 통해 잠을 자고 기분이 차분해지더라똑똑해질 수는 없는 문제였다. 식사하고 화장실 가는 것까지 모든 일상생활을 간병인이 챙겨야 하는 건 여전했다. 그녀는 다른 간병인들과 달리 주말에도 쉬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주말 당직 근무 때문에 들렀던 K가 간병인에게 휴일에 대해 물어보았더니 이렇게 답했다.

"선생님, 혼자 집에 있느니 일하는 게 나아요. 저는 시집와서 남편한테 돈봉투 한 번 받아본 적이 없어요. 이젠 남편 행방도 몰라요. 아들은 다 커서 나가 살요. 참 박복한 팔자죠? 그런데 이 사람도 참 안 됐어. 나 아니면 봐줄 보호자도 아무도 없으니."

그녀의 남편과 달리 M은 자동차 보험에서 간병비를 보내주는 남자였다. 그녀는 색칠 공부 책과 한글 쓰기 책, 퍼즐 같은 것을 사 와서 M에게 가르쳐 주면서 즐거워 보였다. 뭐든지 느리고 서툰 M을 답답해하지 않고 아이한테 하듯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사식을 넣어주는 이가 없어서 병원 밥만 먹는 게 안쓰럽다고, 간병인은 병원 로비에 있는 베이커리의 빵을 사다가 M에게 주곤 했다. 샌드위치나 크로크 무슈, 찹쌀 도넛 같은 빵을 파는 곳이었는데 값이 적 않았다.  

 K가 병원을 돌아다니 5층 야외정원이나 현관 분수 근처로 산책을 다니는 둘이 자주 보였다. M이 혼자 걷지 못하니 간병인이 팔짱을 꽉 끼고 붙어서 천천히 걷고 있었다. 보통의 간병인이라면 보행기를 잡게 하고 하루 한두 번 산책을 했을 것이다.


두 달이 지나 도움이 될 만한 약물의 종류와 용량이 거의 결정되었다. K는 M이 이만 요양병원으로 전원하기를 바랐지만, M의 보호자 역할을 하고 있는 여동생은 좋아졌다는 소식에 알겠다는 말만 하고 나타나지 않았다. 왜인지 입원시킨 교수님도 퇴원에 대해 말이 없어 M은 대학병원에 흔치 않은 장기 입원 환자가 되었다.

그사이 M은 죽을 고비를 한 번 넘겼다. 간식으로 자주 빵을 먹다가 한 번은 도넛이 목에 걸려서 질식할 뻔했던 것이다 - 원체 뇌손상이 있는 데다가 특정 약을 복용하고 있어서 사레들릴 위험이 높은 환자였다. K가 콜을 받고 정신없이 달려가보니 마침 병동에 있던 내과 전공의가 응급 처치를 한 뒤라 M은 괜찮아 보였다. 위급했던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M은 눈을 부릅뜨고 가만히 앉아 있고, 그 옆에서 간병인이 자기 탓이라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K는 망설이다가 조심해야 할 음식에 대해 당부하고 돌아섰다. 병실에서 함께 지내던 환자와 보호자들이 그녀를 토닥이며 위로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섯 달이 가까워올 무렵에서야 M의 여동생과 손해사정사가 찾아와 K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처음 보는 M의 여동생은 평범한 주부 같은 차림새였다. 허리를 조이는 끈이 달린 점퍼, 운동화와 구두 중간쯤 되어 보이는 신발, 단발머리, 맨얼굴에 가깝게 엷게 화장한 얼굴. 그녀는 미소를 띠고 공손하게 말했다.

"그사이 많이 안정이 됐네요. 제가 너무 병원에 못 와봤죠, 죄송해요. 어머니도 팔순이셔서 돌봐드려야 하는데 첫째 오빠도 돌아가셔서 집안을 돌볼 사람이 저 밖에 없거든요."

매사 불만 많고 항의하는 캐릭터와는 거리가  보호자였다. 대개 부모나 자녀가 보호자일 때보다 형제자매가 보호자일 때 병원에 자주  들른다,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들은 이제 사고 난 지 2년이 지나서 자동차 보험사와 합의를 하려고 한다며, 후유장해진단서와 향후치료비 추정서를 써달라고 한 뒤 돌아갔다. 전공의 2년차인 K는 처음으로 써보는 종류의 진단서였다. 손해사정사가 주고 간 폴더를 열어보니 후유장해 등급에 관한 자료와 견본 진단서까지 풍부하게 자료가 정리되어 있었다.


일주일 뒤에 M의 여동생이 다시 찾아왔다. 진단서와 함께 의무기록도 제출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K는 마침 찾아온 그녀와 면담하여 누락된 부분을 보완하고 구색을 맞추었다. 가족력에 대해 조사했을 때, M의 가족 중 정신건강의학과 치료 이력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M의 형에게도 큰 교통사고가 있었고 수술 뒤 와병상태로 몇 년 있다가 사망했다는 것이 특이했다. 면담을 마치고 여동생이 편지 봉투를 건네서 K가 열어보니 편지와 50만 원이 들어있었다. 그가 돈을 돌려주자 M의 여동생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진단서 잘 써달라는 게 아니고 정말 고마워서 드린 건데, 받아 주시면 좋겠어요."

때마침 K가 진단서 완성을 눈앞에 둔 시점이었다.


M은 평생 시설에서 간병인을 두고 생활해야 할 것이었기 때문에 향후 치료비가 수 억 원 대로 높게 추정되었다. 정신과뿐 아니라 신경외과, 정형외과 등에서도 받았을 테고, 치료비만 배상을 받는 게 아니므로 합의금으로 십수억은 족히 나왔을 것이다. 요양병원으로 전원 하기로 날을 하루 앞두고, 여동생은 M을 데리고 나가겠다고 외출을 신청했다. 합의금을 받을 때 환자가 할 수 없으면 직계혈족인 부모 혹은 자녀가 서명을 한다. K가 보기에 그동안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외출이 위험해 보였고, 어차피 M이 이해 능력이 없으니 어머니를 모시고 가기를 권했다.

"어머니가 아직도 오빠가 사고 난 걸 모르세요. 안 그래도 치매끼가 있어 정신이 오락가락하는데 더 충격받으실까 봐 안 돼요."

그녀는 간병인을 병원에 두고 혼자 M을 데리고 나갔다 왔다. 그날 저녁 병동 간호진들에게 음료와 빵을 돌려서, K도 회진하다가 샌드위치를 얻어먹었다. 외출 다녀오는 길에 외부 베이커리에서 샀더라더 저렴하고 맛있었을 걸, 병원 로비에서 사 오다니 K는 아깝다고 생각했다.


다음날 K는 M과 간병인하고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안녕히 가세요. 앞으로도 M님 잘 부탁드릴게요."

"어휴, 우리 주치의 선생님 이제 못 봐서 어째요. 그 병원이 안 좋으면 다시 여기 오자고 할게요."  

간병인은 유니폼 같은 티셔츠를 벗고 셔츠에 스카프를 매었다. 오랜만에 생긴 일상의 변화에 다소 상기된 듯 보였다. M은 여전히 말이 없었고 K를 빤히 쳐다보기만 할 뿐 고개를 까딱이지도 않았다. 간병인이 같은 병실 보호자 도움을 받아서 보자기로 싼 짐들을 먼저 날랐다. 말끔해진 침상을 뒤로하고 휠체어에 앉아 가던 뒷모습이 M의 마지막이었다.


1년이 지나서 K는 우연찮게 외래 진료실에서 여동생을 만났다.  날 M 담당 교수의 휴가 때문에 K가 대신 진료를 담당했고, 그녀는 보호자로서 대리처방을 받으러 왔다. 그녀는 K를 보고 환하게 웃었다.

"선생님 오랜만에 뵈어서 너무 반가워요. 입원했을 때 진짜 감사했어요."

"궁금했는데 이렇게 소식 들을 기회가 생겨서 좋네요. M은 요양병원에서 지내고 있어요? 매번 같이 오시기가 힘드시죠?"

"아니에요, 지금은 어머니랑 같이 산지 좀 됐어요."

"네? 그때 그 간병사님도 같이요?"

"요양병원 퇴원하면서 헤어졌어요. 그분 참 좋으셨죠? 그분한테도 얼마나 감사했는지요."

K는 놀랐고, 큰 체구에 걸음이 불안정한 그를 노년 여성이 부축해 다니는 것을 상상하기도 어려웠다. 여동생에게 M과 같은 환자는 간병인을 두고 입원해서 지내는 게 좋다고 이야기했지만 귀담아듣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녀는 거듭 너무 반가웠다,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돌아갔다. K는 그제야 그때 보험사와 합의를 하지 않았어야 M이 최선의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는  깨달았다.


편지를 읽고 나서, K는 한때 가깝게 지냈던 대학병원의 외래 간호사에게 연락을 해 보았다. 외래 간호사는 그사이 연구 간호사가 되어 있었지만 여전히 정신건강의학과에서 근무 중이었다. M의 소식이 궁금하다고 물어보니 간호사는 그를 기억하지 못했는데, 유별난 환자나 보호자도 아니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의무기록을 검색해 보고 1년 전부터 M이 외래에 오지 않는다 했다가, 다시 코로나내과에 입원했다가 사망한 것 같다고 알려주었다. 그때 K는 문득 M의 형이 생각났다. M의 형과 똑같이 M 역시 교통사고 후 와병하다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들 가족의 우연하고 기구한 운명 탓이 맞는 것일, 그는 그 친절했던 여동생을 떠올리며 편지를 다시 읽어보았다. 여전히 진실해 보이는 문장이었음에도 어딘지 모르게 꺼림직한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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