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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자 K 시리즈 후기

by 은구비

브런치는 독자들도 모두 작가니까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도 재미있을 것 같아서 후기를 써보려고 합니다!


이 시리즈는 진료실이 배경이지만, 의학적인 정보를 되도록 담지 않고 인간 군상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고 했습니다. 등장인물들은 흔히 겪을 수 있는 우울 증상 외에는 정신과적 증상이 별로 없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쉽게 마주칠 수 있는 주변의 타인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지요.


첫 번째 <비밀을 지켜야 할 때>의 스토리를 처음 착안했던 건, 배우자의 외도를 겪은 사람들이 진료실로 오지만, 자신이 외도를 저지른 것이 괴로워서 오는 사람은 좀처럼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불륜 관계에 있는 사람과 헤어진 것이 힘들어서 오는 경우는 상당수 있었어요. 그렇게 이야기의 첫 장면이 떠올랐어요.

주위에 보여주었을 때 이야기가 '리얼하다'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저는 사실 좀 현실적이지 못한 구석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왜냐하면 주인공을 밉상이기만 한 게 아니라 어느 정도는 좋아할 수도 있는 인물로 그리고 싶다 보니 전형보다 더 지적인 느낌으로 그렸거든요. 주인공의 말을 되도록 공감될 만한 내용으로 고르려고 했는데, 정말 이런 사람이 할만한 생각일까 고민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는 전체적으로 완결된 이야기로 느껴져서 이제는 더 고쳐보고 싶은 생각이 그리 들지 않아요.


<낮은 자리에 서기>는 사회의 밑바닥에 있다고 느끼는 사람이 의욕을 가질 방법을 궁금해하다가 시작된 이야기입니다. 어떤 주제를 탐구하고 싶을 때 그 주제로 소설을 써보는 것도 한 방법이니까요. 주인공은 불운한 유년기를 보내다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외모로 호의를 얻고 기분이 나아집니다. 하지만 그마저도 없어진 지금, 배우자에게 배신을 당하고 경제적으로는 사기를 당하여 지독한 절망 상태에 빠집니다. 좀처럼 희망을 보기 어려운 상황이라서, 꿈이나 종교적 신념 같은 것을 생각해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이 단편이 너무 여러 가지를 담아내려고 했던 것이 아닌가 아쉬움이 좀 남아요. 특히 끝부분을 다시 고민해서 고쳐보고 싶어요.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법>고통스러운 죽음과 그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심리를 다루려고 했습니다. 아무 부족함 없이 살았던 주인공에게도 죽음은 고통스럽고, 죽음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K는 사후세계를 암시하는 신비한 사건을 기대하고 또 실망합니다. 하편은 이렇게 저렇게 써봐도 다 마음에 안 들어서 여러 차례 크게 바꾸었어요. 그럼에도 여전히 하편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네요. 지금 버전의 이야기를 완성하고 나서야, 고통스럽지 않은 죽음을 찾고 싶다면, 신비한 사건보다는 현실적으로 감동적인 종결, 작별을 찾아보는 게 좋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어요.

원래 글을 쓸 때 시각적인 묘사를 별로 안하는 편이었는데, 이 이야기를 쓸 때 시각적 묘사를 하면서 전달이 더 잘 되고 분위기 전환에 도움이 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 습작하다 이런 느낌을 받을 때 또 새로운 단편을 써보고 싶어지지 않나요? 이 방식을 활용해서 써보면 읽기에 더 낫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면서 말이에요.


<친절한 보호자> 편은 실화를 토대로 한 것이어서 다른 편보다 더 짧은 기간 생각하고 써내려갔어요. 정신건강의학과는 특히 비밀보장의 의무가 중요하기 때문에, 실재하는 환자의 이야기는 아무리 알아보지 못하게 변형을 하더라도 부담이 될 것 같아요. 이 이야기는 환자 보호자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좀더 가벼운 마음으로 각색을 했어요. 그래도 좀더 각색을 해야하지 않을까, 만약 그 보호자가 본다면 알아볼 수 있지 않을까 불안한 마음이 있습니다.


이 시리즈를 수정해서 올려보면서, 앞으로는 한 단편에서 하나의 주제에 더 집중해 써보겠다거나, 읽는 즐거움을 위해 장면을 적절히 배치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새롭게 했어요. 브런치로 글을 쓰면서 독자 입장을 좀더 생각해보게 된 덕택입니다.


치료자 K 시리즈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원래 K 시리즈 한두 편을 더 써보려고 했지만, 이야기가 내 마음대로 떠오르는 게 아니잖아요. 이제 다른 단편들을 올려보려고 합니다. 물론, 다른 단편을 쓰려고 했더니만 뜻하지 않게 K 이야기가 떠올라서 다시 등장할지도 모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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