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피팅 서비스로 제대로 보기.

by libre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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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러닝을 시작할 때는 내 발이 아치가 높은지 낮은지,

발볼이 넓은지 좁은지, 앞부분을 먼저 딛고 달리는지 발꿈치부터 딛는지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 신발장에 있던 가장 편한 운동화를 꺼내신고 달린 게 시작이었으니까.

달리는 거리가 늘어나고 시간이 길어지면서 몸에 통증이 느껴졌다.

어떤 날은 허벅지 안쪽이 당겨서 끙끙거리고, 또 다른 날은 무릎 안쪽과 바깥쪽이

아파서 절뚝거리기도 했다. 발바닥, 발목 순서대로 기다렸다는 듯 아픔이 찾아왔다.

살면서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아주 세세한 신체 부분들이 돌아가면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처음 사용하는 근육들이니까 고통이 따르는 건 당연하다고 여겼다.

아픈 부분이 많아질수록 근육이 단련되는 거라고 뿌듯해한 날들도 있었다.

그러다가 달리기 관련 채널에서 러너에게 맞지 않거나 오래 신은 러닝화는

부상과 통증을 유발하고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오히려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영상을 보게 됐다.

혹시 잘못된 고집과 지식으로 스스로 몸을 망치고 있는 건 아닌지 덜컥 겁이 났다.

여러 정보를 찾아보다가 슈피팅 서비스가 있다는 걸 발견했다.

예약하고 방문하면 자신의 발을 정확하게 측정해 주고 거기에 맞는 러닝화를 추천해 준다는

거였다. 추천해 준 신발이 마음에 든다면 바로 구매도 할 수 있다고 했다.

처음 들어본 서비스. 할머니가 되어서도 건강하게 달리는 게 목표이기에 올바른 방법으로

달리는 게 가장 중요했다. 설렘을 가득 담은 채로 예약 버튼을 눌렀다.


석촌역에 자리하고 있던 슈피팅 서비스 전문점.

발을 측정하기 전에 간단한 질문에 답했다. 보통 얼마나 달리는지

슈피팅 서비스 목적이 러닝화인지 워킹화인지, 원래 신었던 러닝화와 평소에 궁금했던

러닝화는 무엇인지. 10km를 몇 분 정도로 달리는지. 하나씩 대답하면서 신기했다.

'내가 러닝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이런 공간에 대해 알 수 있었을까?'

오래 달린 거리와 페이스를 이야기하는데 이런 소재로 누군가와 대화 나눈다는 걸 보니

내 해상도가 조금은 밝아진 게 분명했다.

발 모양도 측정하고 직접 달리며 러닝 하는 동안 내 발이 어디서부터 착지하고

자세는 어떤지 전문가 분이 봐주셨다. 발 길이부터 구조까지 꼼꼼하게.

덕분에 매일 같이 했기에 잘 알고 있다고 믿었던 내 발을 다시 보게 됐다.

아치가 높은 편이며 포어드 풋으로 달리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달리고 나면 발가락들이 검게 변하거나 빠지는 경우도 있었는데 발사이즈를 잘못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발톱에 무리가 간 거다. 발길이는 원래 알고 있었던 사이즈 보다 5cm 더 컸고

양발의 길이도 달랐다. 발사이즈는 당연히 제대로 알고 있다고 믿었는데 조금 충격이었다.

써코니, 아식스, 브룩스 등 다양한 브랜드에 신발을 신어보고 직접 머신 위에서 달리며

잘 맞는지 테스트했다. 살짝 쫀쫀하면서도 쿠션이 있고 가벼웠던 호카 마하 시리즈가

발에 촥 감겼다. 고민할 필요도 없이 이 친구가 새로운 러닝 메이트가 되어야 했다.

슈피팅 서비스가 끝난 후 집으로 돌아와 바로 호카 마하를 신고 달리러 나갔다.

달리는데 웃음이 계속해서 비집고 나왔다. '와. 이 탄성과 가벼움 뭐지?'

통통 튀는 듯 하지만 과하지 않고 포어풋인 내 주법에 맞게 앞부분에 쿠션이 있어서 보호해 줬다.

심박수는 체크하지도 않고 진짜 신나서 질주했다.

가볍게 10km를 달렸고 페이스도 5분 20초대로. 만족스러웠다.

웃은 통기성 좋은 게 최고고 신발은 그냥 아무거나 신으면 된다고 믿었던

나만의 러닝 철학이 달라졌다.

대회를 위한 게 아니더라도 나와 잘 맞는 러닝화는 새로운 기록과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준다는 것.

큰 기대 없이 예약한 서비스였는데 결과는 정말 만족스러워서 러닝 생활에 전환점이 됐다.

태어날 때부터 함께 했던 내 양 쪽 발들이 갑자기 고맙고 대단하게 보였다.

항상 그 자리에 있기에 당연하게 여겼고 잘 알고 있다고 큰소리쳤는데

사실은 제대로 알고 있지 않았다. '원래 그래', '당연히 내가 잘 알지'이런 말들이

얼마나 오만한지 이렇게 잘 보여주는 경우가 또 있을까?

언어와 사고로 사물이든 사람이든 결론 지어버리면 변화 가능성도 차단하게 된다.

무조건 새로운 건 해보고 봐야 한다. 능력이 업그레이드될 수도 있고

새로운 세계를 만나게 된다.


당분간은 이 친구와 동네를 열심히, 신나게 달려 다닐 예정이다.

물론 더 나와 잘 맞는 친구를 발견한다면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차곡차곡 나만의 데이터를 쌓아갈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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