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어 다트 피시 fire dartfish (파이어 고비)
H언니가 산호 옆에서 파이어 다트피시를 봤냐고 물었다. 난 당연히! 못 봤다고 했다. 다이빙 초보는 작은 물고기는 잘 보지 못한다. 잘 보인다고 해도 물고기가 다 거기서 거기로 보여서 구분도 잘 못한다. 이름도 모르기 때문에 물 위로 올라오면 무엇을 봤는지 특정할 수도 없다. 기억할 수 있는 건 내 눈앞에 있는 나의 강사님과 버디정도?
같은 바다를 봐도 능숙한 다이버는 누디, 게, 새우, 말미잘, 산호, 니모, 안티아스, 라이언피시를 보지만
초보 다이버는 강사님 핀, 강사님 공기통, 강사님 엉덩이, 강사님 엉덩이 쪽에 슈트 찢어진 부분, 강사님이 손으로 가리켜서 제발 보라고 하는 큰 거북이 정도를 볼 수 있다.
'파이어 다트 피시가 어떻게 생겼는데요'
H언니가 찍은 사진을 보여줬다. 다이빙 횟수가 500탱이 넘은 언니의 사진에는 빨간 그라데이션이 꼬리까지 퍼져있는 파이어 다트피시가 예쁘게 찍혀있었다.
파이어 다트피시는 이름 그대로 붉은색이 불타는 것 같아 파이어라는 이름이 붙고, 다트처럼 빠르게 헤엄치다 숨어서 다트피시라고 한다고 했다. 이름을 듣고 보니 모양새도 약간 다트처럼 생겼다. H언니가 덧붙여 말했다.
'난 파이어 다트피시가 정말 좋아. 걔네는 부부인데 늘 같이 다니는 거 엄청 귀여워. 평생 같은 짝이랑만 산다고 하더라'
평생 같은 짝과 함께 사는 파이어 다트피시는 물고기계의 원앙인 것이다. 이 친구들은 대단한 의리를 가진 물고기였다. 백년해로. 아니 이 물고기의 수명은 7년 정도니까 칠년해로를 하는 것이 아닌가. 이들은 (다른 물고기에게 먹히지만 않는다면) 죽기 전까지 같이 다니며 먹이를 찾아서 함께 먹고, 둘이서만 번식을 하고, 천적이 오면 알려주고, 같은 곳에서 지내는 금슬 좋은 물고기이다. 한 마리가 죽고 나면 다른 파트너를 찾아 나서긴 한다. 혼자서 지내기엔 너무 연약하고 작은 개체이기에 공생을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파이어 다트피시를 인식하고 나서는 그다음 다이빙에서부터 이 물고기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찾기 힘들거라 생각했는데 아주 잘 보였다. 여기저기 쌍으로 다니기도 하고, 여러 마리가 모여 있기도 하고 어쩌다 한 마리만 존재하기도 했다. 한 마리만 보이면 궁금했다. 너의 짝은 죽은 걸까 아니면 멀리 먹이를 찾으러 나간 걸까 하고.
그러다 언젠가부터 파이어 다트피시가 보이면 시가 떠올랐다
먹이 찾는 다트피시 암수서로 정답구나
외로워라 이 내 몸은 뉘와 함께 돌아갈고
고루하고 진부해라! 나의 창의력은 왜 이 정도인가! 떠올려도 황조가 패러디라니. 노란 새가 아니라 빨간 물고기니까 '홍어가'정도 되겠다.
한참 연애에 실패하고 다이빙에 몰두할 무렵이어서 그랬는지 다트피시를 볼 때마다 홍어가가 흘러나왔다. 뭐 이런 어이없는 경우가 있나 싶어 물속에서도 피식거리다 마스크에 물이 몇 번이나 들어갔다. 물고기를 보며 외로움을 느꼈다. 쟤네도 짝이 있는데 난 왜 이럴까. 소개팅은 몇 번을 더 해야 하나. 내 성격이 이상한 건가. 이러다 언젠가 짝이 나타나기는 할까.
발리에서 신혼여행을 하면서 갓 어드밴스를 딴 남편과 다이빙을 했다. 파이어 다트피시 두 마리가 산호 옆을 지키고 있었다. 몸도 제대로 못 가누는 남편에게 물속에서 손으로 버디 표시를 하며 가리켰다. '저 물고기 두 마리 좀 봐'.
옆에서 발차기를 하며 모래 폭풍을 일으키고 있던 남편은 당연히! 다트피시를 보지 못했다. 가이드의 핀과 가이드의 공기통과 가이드의 탐침봉만 보고 있었으니.
꾀꼬리 같은 저 다트피시를 봐도 더 이상 머릿속에 홍어가는 흘러나오지 않았다.
다만 저 버둥거리는 남편과 모든 걸 같이 보고싶어졌다.
파이어 다트피시와
만타가오리와
니모와
고래상어와
뱃피시와
그리고 강사님의 엉덩이가 찢어진 슈트까지도.
(이 글은 남편의 동의 하에 작성되었습니다. 이제는 남편은 중성부력을 (아주 약간) 조절하고 다트피시를 볼 수 있습니다. 남편의 항의를 수용하여 이 문장을 추가하는 바입니다.)
사진 제공 : Fire Dartfish - 사실 및 사진 | 시언씬 (seaunseen.com), 곰 스쿠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