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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곡도 Sep 22. 2024

이렇게 주둥이가 긴 물고기라니, 트럼펫 피시

주벅대치, 트럼펫 피시 Trumpetfish

'물고기'라고 하면 머릿속에 떠올리는 물고기의 형상이 있다. 머리, 지느러미, 꼬리로 나뉘어 유선형의 모양새를 갖춘 모습이다. 금붕어, 흰동가리, 상어, 타이탄 트리거 등등 수많은 물고기 모양을 생각했을 때 나에게 물고기의 이데아는 아래 그림과 같았다.

내가 생각하는 물고기의 전형적인 모습

하지만 이 물고기는 정말 웃기고 이상하게 생겼다. 바다에서 트럼펫피시를 처음 마주치고 저게 물고기였다는 것에 한 번 놀라고, 희한한 생김새에 두 번 놀랐다. 꼬리를 보면 날개 같기도 하고, 주둥이를 보면 길쭉한 것이 말 같이 생기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 물고기는 바로 '트럼펫피시'이다.


트럼펫피시


이 물고기가 트럼펫피시라 불리는 이유는 주둥이를 벌려 먹이를 먹는 모양이 악기 트럼펫의 나팔모양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비슷한가? 저 입을 보고 트럼펫을 연상시켰다니, 나는 거기까지 도저히 생각이 미치지 않는다. 처음에 이 물고기를 본 사람은 아마 트럼펫 연주자이거나 트럼펫을 만드는 사람이거나 트럼펫을 팔았던 사람임에 틀림없다.


(좌)트럼펫피시가 먹이를 먹는 모습 (우)악기 트럼펫


트럼펫피시는 모양도 특이하지만 다른 물고기처럼 몰려다니거나 자주 헤엄을 치며 돌아다니지 않는다. 산호 근처에 머물러서 홀로 호버링 하며 가만히 있는 것을 즐긴다. 다이빙을 하다가 트럼펫피시를 마주치고 이후에 뒤를 돌아보면 계속 같은 장소에 있는 경우가 있어서 자꾸만 쳐다보게 된다.




트럼펫피시의 독특함을 알게 된 건 크리스의 다이빙 미션 덕분이었다. 크리스는 몰디브 Live a Board 총책임자이자 우리 팀의 가이드였는데, 물고기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바다를 아끼는 진성다이버였다. 보통 다이빙 가이드들은 물속이 직장이기 때문에 다이빙을 아무리 좋아해도 바닷속에 오래 있는 것을 즐기지 않는다. 정해진 다이빙 시간 안에서 빨리 올라오는 것을 선호한다. 일반적으로 다이빙을 할 때 팀원 중에 한 사람이라도 공기가 부족한 것 같으면 시간을 다 채우지 않아도 가이드가 인솔해서 모든 팀원과 함께 올라온다. 그것이 안전을 위한 것이기도 하고 10분이라도 일찍 물 위로 올라와야 쉼을 더 오래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크리스는 달랐다. 팀원 중 한 사람이 50 bar가 남았다고 하면 상승하자고 하기는커녕 옆 팀을 가리키며 저 쪽 가이드랑 같이 수면으로 올라가라고 지시했다. 우리 팀은 다른 팀과 다르게 1시간을 꽉꽉 채워 다이빙을 했고 이건 다이빙이 아니라 노동이라고 여기며 온몸에 진이 빠져서 리프트에 올랐다. 크리스가 우리에게 다이빙을 하고 또 하고 또 해서 질리게 하려는 속셈이라고 말하며 크리스를 쫓아다녔다. 크리스는 상어나 거북이를 찾으면 우리보다 신나 했고 물속 생물과 노는 것을 정말 좋아했다. 한 번은 크리스가 만타가오리에 대해 강의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수다쟁이 크리스의 설명이 아무리 해도 끝나지 않아 만타에 대해 제발 그만 알려달라고 다이버들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 크리스의 미션이 있었다.


만타가오리를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크리스


'이번 다이빙에서는 노란 스내퍼 무리에서 트럼펫 피시를 찾아보세요. 그리고 나팔모양의 수신호를 해서 서로 알려줍시다' 영어로 말했기 때문에 아마 반말이었을 거고, 저 말보다 더욱 긴 말들이 이어졌겠지만 어쨌든 이번 미션은 '스내퍼 무리 속의 트럼펫피시 찾기'였다. 월리를 찾아라를 하는 마음으로 눈을 부릅뜨고 다이빙을 시작했다. 노란 스내퍼 무리가 보였다. 정식 학명은 bluestripe snapper. 노란 바탕에 파란 줄이 있는 스내퍼 속에 정말로 트럼펫 피시가 있었다. 뿌뿌뿌~ 나팔 부는 모습을 손으로 보여주며 크리스를 불렀다. 여기 트럼펫 피시가 있어요! 짝짝짝 크리스가 물속에서 웃으며 손뼉을 쳤다.


bluestripe snapper
bluestripe snapper


왜 트럼펫 피시는 자기 친구들과 놀지 않고 스내퍼와 함께 다니는 것인가? 미운 트럼펫피시 새끼인가? 스내퍼무리가 트럼펫 피시의 알을 발견하고 어떻게든 키워내려고 애를 쓴 것인가? 저 트럼펫피시는 정글북의 모글리같이 오션북의 트러미였던건가?(이름이 구리다) 어쨌든 트럼펫피시가 자신이 스내퍼인양 무리와 함께 붙어서 졸졸 따라다니는 모습이 너무 귀엽고 웃겼다.


동심은 저리로 치워버리고, 물고기의 행동의 이유를 두 가지로 분석하면 거의 맞아떨어진다.


먹이활동을 하거나 생식활동을 하거나.


트럼펫피시는 는 긴 주둥이로 작은 물고기들을 흡수해서 먹는 육식성 물고기이다. 작은 물고기들은 트럼펫 피시가 지나가면 포식자임을 알고 후다닥 숨어버린다. 그래서 몸뚱이가 길어 슬픈 트럼펫 피시가 선택한 사냥 전략은 '몸을 숨기고 냄새를 교란시키기'이다. 스내퍼들은 플랑크톤과 갑각류, 산호의 조류 등을 먹는 초식에 가까운(하지만 초식은 아닌) 먹이 활동을 한다. 따라서 작은 물고기들은 스내퍼들을 봐도 숨지는 않는다. 트럼펫 피시는 색이 비슷한 스내퍼 속에 숨어서 작은 물고기들이 방심한 틈을 타서 빠르게 사냥을 하는 것이다. 우리 눈에는 월리를 찾아라처럼 어려운 물고기 찾기는 아니지만 물고기들은 가끔씩 저런 모습에 속을 수밖에 없나 보다. 찾아보니 트럼펫 피시는 스내퍼 무리들 뿐만 아니라 덩치가 큰 초식 물고기 근처를 같이 다니기도 한다.


초식성 어류와 함께 다니는 트럼펫피시 왼 Slender Grouper, 오 Masked rabbitfish

 

초식성 어류와 함께 다니는 트럼펫피시 왼 터스크피시, 오 파랑비늘돔


어떤 학자들은 트럼펫피시와 초식성 어류가 서로 공생하는 게 아니라 트럼펫 피시가 홀로 이득을 취한다고 결론을 내렸다고 하고, 또 다른 학자들은 트럼펫피시가 몸이 길고 커서 같이 다니는 초식성 어류가 안심하고 유영할 수 있기에 서로 도움이 된다고도 한다. 어쨌든 다른 종의 물고기와 함께 살면서 도움을 받고 자신의 약점을 커버하는 것이다.




다이빙을 하면서 가장 크게 깨달은 것은 세상에 '스테레오타입'이란 없다는 것이다. '물고기의 이데아'라니. 아직도 플라톤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꼰대 같은 나. 물고기의 이데아, 사람의 이데아, 고양이의 이데아, 가족의 이데아. 이데아를 아직도 떠올리는가!


물고기들은 다양하고 복잡한 삶을 영위한다. 성별이 달라지기도 하고 있던 집을 버리고 새 집에 옮겨 살기도 하고 다른 물고기랑 연합해서 사냥도 하고 큰 물고기의 몸에 붙은 기생충을 먹이 삼아 살기도 하고 몇백 킬로 떨어진 곳에 알을 낳고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오기도 한다. 트럼펫피시처럼 다른 물고기를 통해 사냥을 하기도 하듯 정해진 것은 없다. 여러 모양으로 자신의 삶에서 최선을 다하며 산다.


웃기고 이상한 모양의 물고기도, 그런 삶의 형태도 없다. 정하지 말아야지. 비교하지 말아야지.


물고기의 이데아를 버리고 또 다른 새로운 피시들을 찾아 나서야겠다. 장황하게 쓰고 나니 마무리를 하는 게 상당히 어렵다.


그래서 다음 물고기는 '파이어 다트 피시 fire dart fish'다. to be continued..



 






출처

[리프 피쉬] 트럼펫 피쉬 (Trumpet fish, 주벅대치)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Simple Fish Svg Free - 297+ File Include SVG PNG EPS DXF (svg-craft-50.blogspot.com)

fishipedia.fr/fr/poissons/aulostomus-chinensis

이름으로 본 바다생물 <41> 트럼펫·플루트·코르넷피시 : 부산의 대표 정론지, 국제신문 (kookje.co.kr) 

 Xaime Beiro(@xbeiro) • Instagram

“실례 좀 하겠습니다”…큰 물고기 뒤에 숨어 사냥하는 '주벅대치' : 네이버 포스트 (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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