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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곡도 Jul 02. 2024

언제볼지 몰라 어디있는지 몰라 mola mola 개복치

개복치, sunfish, mola-mola

'오늘은 볼 수 있나요?'

'몰라.'

'몰라몰라를 보기 위해 우리 함께 수신호를 해봅시다.'


애타게 손짓을 하면 마치 개복치 신이 우리에게 올 것처럼 우리는 크리스털 베이(인도네시아의 발리- 누사페니다에 있는 개복치 포인트 이름이다)에 띄워놓은 배 위에서 주먹을 쥐고 엄지와 새끼손가락 펴고 같은 방향으로 손가락을 까딱까딱거렸다. 다섯 명의 다이버가 엄숙하고 진지한 얼굴로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입수를 했다.

이렇게 엄지와 새끼손가락을 같은 방향으로 까닥까닥하면 개복치라는 뜻이다. 개복치가 헤엄치는 모양을 본 딴 수신호이다.

바닷속은 추웠다. 추운 온도는 아닌데 체감상 그랬다. 26도 정도. 온도가 높으면 개복치가 오지 않는다. 23~25도 정도가 개복치가 나타나는 온도이다. 그래서 26도는 개복치가 나타나기엔 조금 높다고 했다. 개복치를 찾으려고 가이드는 며칠 째 매의 눈으로 외해를 쳐다보고 있었고 다른 다이버들은 산호 옆에서 작은 물고기들을 보며 큰 움직임 없이 다이빙을 하는데 20분을 비슷한 곳만 슬슬 움직이니 몸이 떨렸다. 아오 춥다. 아 정말 안 오는 걸까?


저기 옆에 개복치만큼은 아니지만 조금 커다란 생물체가 보였다.


개복치 대신 곰(강님)과 사진 찍기

물속에 곰이 있구먼.


이렇게 장난을 치면서 그렇게 삼일 간 총 여섯 번을 들어갔으나 개복치 보는 것은


대. 실. 패.


'다음에 또 오라는 뜻인가 보다'라고 서로 위안하며 첫 개복치 탐사는 그렇게 끝이 났다. 물론 만타가오리도 보고 복어도 보고 거북이랑 사진도 찍고 등등등 많은 물고기들과 놀긴 했지만 여름에 발리를 가는 다이버들의 진짜 이유, 개복치를 만나지 못해 못내 아쉬웠다.




개복치는 모양이 굉장히 희한하게 생긴 물고기이다.

꼬리지느러미가 없어서(?) 물고기를 반토막 낸 것 같은 모양이다.

크게 자란다면 세로로 4m 가로로 3m, 그리고 무게가 2300kg까지 나간다고 하는 어마어마하게 큰 물고기.

우리나라에서는 복어과라고 '복치'+ 모양이 좀 이래서 그런지 낮춰 부르는 말 '개', 를 합쳐서 '개복치'라 하고 외국어로는 몰라 몰라 mola mola(라틴어로 맷돌을 의미하는 단어)라고 한다.


3억 개의 알을 낳는다. 체외수정을 한다. 부모가 알을 키우는 게 아니라 그냥 물에다 확 풀어버리기 때문에 여기저기 물고기들이 알들을 먹어버려서 살아남을 개복치들은 이 중에 열 마리 정도다.(3억 마리가 다 부화돼서 성체가 되면 바다가 커다란 개복치 세상이 될 것이다 ㄷ ㄷ)


바닷속 600미터까지 수직 운동을 한다. 그래서 올라와서 노는 아이들을 보면 신기하고 고마울 정도다. 하지만 개복치는 햇빛을 굉장히 좋아해서 ocean sunfish라는 이름도 가지고 있다.


sunfish. 죽은 게 아니라 일광욕을 하는 것이다.

일광욕을 하는 첫 번째 이유는 따뜻해서이다. 저렇게 따땃하게 햇볕을 받으며 몸의 온도를 올리고 적당히 따뜻해지면 또 밑으로 가라앉는다. 두 번째 이유는 기생충을 제거하기 위해서이다. 개복치는 엄청 큰 기생충(무려 30cm 정도?)을 달고 다닐 수 있는데 이렇게 누워있으면 갈매기가 와서 기생충을 잡아먹는다. 일종의 공생이라 할 수 있다. 개복치가 새 부리에 쪼이면 어떡하나 걱정하겠지만 개복치는 피부 두께가 7cm 정도이다. 그래서 갈매기는 기생충만 냠냠 먹고 퇴장한다.

큰 기생충 말고도 작은 기생충이 엄청나게 살아서(세어보니 40종류 정도 있다고 한다) 물속에서 보면 개복치 주변에는 각질 제거와 기생충 먹기를 위한 청소물고기들이 항상 따라다닌다.

깃대돔과 나비고기가 개복치의 목욕을 시켜주고 있다. 맛집이 등장해서 기뻐하는 모습으로 보인다.

몇 년 전 '살아남아라 개복치!'라는 게임이 나와서 개복치가 유명해졌고 이 게임 덕분에(?) 개복치가 심약하여 잘 죽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성체가 되면 그렇게 잘 죽을 일이 없다.(상어나 바다사자 등 포식자를 만나면 당연히 죽겠지만) 다른 물고기와 비교해서 스트레스에 엄청 취약한지는 잘 모르겠다는 게 학계의 이야기다. 아마 저렇게 두둥 하고 누워있는 게 죽은 것처럼 보여서 그런가 싶다.

개복치 게임. 돌연사하는 이유가 말도 안 되게 많다.


개복치는 맛이 있을까? 누가 먹을까? 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먹는다. 드라마 무빙에서 류승룡이 개복치를 먹는 장면이 나온다.

드라마 무빙의 한 장면, 포항에서는 개복치, 상어, 고래 고기를 판다.

개복치는 맛이 없다고 한다. 무색, 무미, 무취의 '없을 ' 맛이 없음이다. 그냥 탱글탱글 씹는 맛으로 먹는다고 하고 콜라겐이 많아서 피부가 좋아지고 싶은 사람은 먹으면 좋다는데.. 굳이?(tmi 맛이 없는 건 상어고기도 마찬가지이다. 상어 지느러미는 무미 무취하여 괜히 고급음식으로 대접하고, 몸통은 조금만 지나도 암모니아냄새(가오리랑 비슷한)가 나서 잘 안 먹는다.(물론 삭힌 상어 요리를 먹는 추운 나라도 있다.) 그래서 샥스핀을 위해서 상어를 잡는 사람들은 맛없는 고기를 해체할 필요도 없으니 지느러미만 베어내고 상어를 그냥 바다에 버려버린다.(정말 나쁜 인간들이다))

상어 지느러미를 베고 다시 상어를 바다에 버린 모습. 이렇게 되면 상어들은 헤엄치지 못해 숨도 못 쉬고 굶어 죽는다.


다시 개복치 얘기로 돌아가서..


작년 여름, 개복치를 보고 싶어서 간 건 아니었으나(만나고 싶다고 해도 못 만나는 대단한 존재니) 발리가 좋아서 여행을 떠났다. 발리로 갔기 때문에 다이빙을 하게 됐고, 다이빙을 하게 됐으니 누사페니다의 크리스털베이는 필수 코스로 잡았고, 그러다 보니 다시 개복치를 찾기 위해 바다를 헤매고 다녔다.(답정 개복치?!) 그날은 파도가 높았는지, 체해서 그랬는지, 아니면 오래 못 자서 그런지 너무 나쁜 컨디션으로 배를 타서 배 위에서 무려 세 번이나 토를 하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가이드는 또 외해를 두리번거리며 개복치를 찾았고 나는 어질어질 추워하며 이대로 다이빙하다가는 다시는 안 하고 싶을 수도 있겠다.. 고 생각했을 때 옆 팀 사람들이 일제히 손가락을 가리키고 있었다.


음? 왜?


저기 저 멀리서 개복치님이 나타난 것이다. 20m 정도 떨어진 곳에 개복치님이 헤엄치고 있었다. 개복치는 우리를 본 체도 하지 않고 우아하게 위아래 지느러미를 같은 방향으로 밀면서 저기 멀리로 날아갔다. 눈물이 찔끔 났다. 이걸 보려고 내가 여기까지 온 거구나. 토를 세 번을 하고 멀미를 그렇게나 했던 게 다 이유가 있었구나. 이렇게 5년 전부터 기다렸던 개복치를 이제야 만나는구나.

마음으로 보면 보인다. 저건 분명히 개복치였다. 나는 분명히 봤다 개복치맞다. 개복치이다. 개복치를 봤다.

지나가버린 개복치를 바라보며 도깨비에서 유인나가 이동욱에게 했던 대사가 생각났다.


 '기다림은 길고 만남은 짧네요'


오랫동안 기다렸고 보고 싶었고 같이 헤엄치고 싶었던 개복치를 이렇게 짧게 만나니 저 대사가 저절로 머릿속에서 아른거렸다.


그러다 인생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기다림은 길고 만남은 짧은 것. 이렇게 좋은 순간들은 '찰나'에 끝난다는 것. 이미 불교에서 여러 번 말했었다. 인생이란 하룻밤 꿈이며 번개 같고 이슬 같고 물거품 같은 것이라고.


붙잡고 싶어도 붙잡을 수 없는 순간의 아름다움이여, 나의 청춘이여, 이미 외해로 나가버린 개복치여.


덜덜 떨며 개복치를 기다릴 때, 소중한 사람과 데이트를 할 때, 시험이 끝나고 해방되길 바랄 때, 평양 냉면을 먹으려고 줄을 설 때 기다림은 길고 만남은 짧다. 그래서 그 순간이 훨씬 더 소중하다. 순간이 영원하길 바라지만 순간은 영원할 수 없다. 그래서 순간이 영원이 되기 해서는 그 순간순간을 영원처럼 느끼고 살아가야 한다. 그럼 영원을 사는 것이다.


매일의 나는 어리석어 그 순간을 아쉬워하고 잡고 싶어 하지만 다시 마음을 먹어본다. 순간순간을 영원의 조각으로 집어넣고 오늘을 또 살아가야지 하고.


내일의 또 다른 개복치를 기다리면서.







출처

https://blog.naver.com/bravesky88/222899264370

https://www.ajunews.com/view/20141124133739527

도서 거의 모든 것의 바다(김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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