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거피시 triggerfish
곰강님이 말했다. '바다에서는 아무것도 만지면 안 돼요. 독성이 있으니까. 물고기들은 인간이 건드리지 않는 이상 먼저 다가오진 않으니까 겁먹진 않아도 됩니다. 단 산란기의 ooo을 빼고는'
산란기의 ooo란 무엇일까요?
정답은 '트리거 피시(trigger fish)'
산란기의 트리거 피시는 저~~~엉말 무서운 존재다.
우리 팀의 노련한 다이버 Y님도 물려서 슈트에 구멍이 나고 피가 줄줄 났을 정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주의를 기울여도?!) 금세 다가와 꽉 물고 놔주지 않는다.
트리거 피시에 물린 사례라고 검색하면 열대 바다를 즐기던 많은 사람들이 '핀을 물렸다', '다리를 물렸다', '물리진 않았는데 엄청 따라오더라', '바닷속의 깡패다', '상어보다 무서운 존재'다 이런 공포에 질린 반응들을 보인다. 그럴만하다. 얘는 얼굴도 무섭게 생겼고 공격성도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색이 알록달록하고, 주둥이 위에 있는 검은 줄이 콧수염처럼 생긴 타이탄트리거 피시(멋진 콧수염 때문에 머스타치 트리거 피시라고도 부른다)는 산란기(4~6월)에 유독 공격적이다. 알을 낳은 자신의 모래 둥지 근처에 사람이 오면, 다른 종류의 물고기가 오면 전부 다 물어뜯기 때문이다.
'titan'은 그 큰 몸집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고 트리거의 'trigger'는 방아쇠를 뜻하는데, 사진에 보이는 첫 번째 등지느러미가 공격을 할 때는 저렇게 스윽 방아쇠처럼 올라온다. '나 열받음', '나 흥분함'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래서 바다에서 이렇게 등 지느러미가 세워진 채로 희번뜩 하게 나를 바라보는 타이탄 트리거를 보면 줄행랑을 쳐야 한다. 트리거 피시의 이빨은 매우 강해서 아무거나 다 씹어먹는다. 산호, 약한 조개, 문어, 작은 물고기, 나의 슈트, 도망가려고 휘젓는 핀까지.
근데 저런 이빨과 방아쇠 지느러미를 봤다고 무작정 아무데나 도망쳐서는 안 된다. 타이탄 트리거 피시의 영역 반경에서 벗어나야 쫓아오지 않는다. 그럼 어디로 가야 할까?
1) 이 녀석을 봐서 너무 무서우니 급상승을 한다.
2)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간다.
3) 나는 더 잠수를 잘하는 생명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수심 깊은 곳으로 내려간다
정답은 2)이다.
1) 일단 급상승은 위험하다. 절대 패닉이 와선 안 된다.(말이야 쉽다) 그러다 감압병 걸릴라. 10미터 정도면 그래도 치명적이진 않을 텐데 20미터권에서 타이탄 트리거피시를 봤다고 로켓처럼 솟아오르면 물린 것보다 더 위험한 결과를 초래한다. 그리고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쫒아오기 쉽다. 거기가 행동반경이기 때문이다. 타이탄 트리거피시로부터 원추형으로는 다 자기 영역이다.
그림의 다이버처럼 낮고 차분하게 방어적으로(차분하게가 되려나) 수평으로 빠져나간다.
물려도 안 죽는다. 독이 있는 이빨이 아니어서 피가 좀 나고 살만 뜯기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오 저기 흥분한 트리거 피시가 내게 맹렬하게 다가오나 보다 이따 나가서 썰 풀어야지' 하고 침착함을 유지하면서 옆으로 피하거나 아래로 내려가는 게 상책.
아래로 내려가는 3)이 답이 되기 힘든 이유는 얘네가 모래더미 근처에 알을 낳아서 그 근처에서 영역을 지키는 건데 바닥이 이미 보이는 거라 더 내려갈 곳이 없어 힘들다.
이렇게 무서운 생명체가 사는 열대 바다를 어떻게 가냐고 하겠지만 산란기의 몇 개월 정도만 그런 거고, 쟤네 사는데 근처를 안 가면 되니까 현지 가이드를 잘 쫓아다니면(가이드들이 미리 물려서 트리거들이 있는 곳을 안다) 물릴일은 드물다(드문가?)
산란기의 시기가 지나면 타이탄 트리거도 다이버들을 만날 때 그리 크게 경계하지 않는다. 위협적으로만 다가가지 않으면 서로 쳐다보고 만다. 그냥 존재 자체가 무서워서 다이버들이 멀리 도망 갈 뿐 엄청나게 위협적인 존재는 아닌 것이다.
트리거 피시는 종류도 20종이 넘는다. 공격적인 아이도 있고 아닌 아이도 있다.
'물고기도 관상이 있다. 순한 놈과 공격적인 놈들은 얼굴이 다르다' 라고.. 책 '물고기 박사가 들려주는 신기한 바다이야기(명정구)'의 초반에 등장하는 말이 있었는데 읽고는 음 너무 나가신 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저 핑크테일 트리거 피시를 보면 또 맞는 말인 것 같다. 타이탄 트리거 피시가 희번뜩하게 쳐다보는 것과 핑크테일 트리거 피시가 선량하게 쳐다보는(?) 눈을 보면 이게 공격자의 얼굴인지 그냥 유영자의 눈빛인지를 알 것 같기 때문이다.
여름의 열대 바다 다이빙을 할 땐(몇 번 해보진 않았으나) 저 멀리 두리번거리고 있는 타이탄 트리거 피시가 참으로 무섭긴 하지만 얘네들을 보고 바다의 폭군이다. 깡패다.라고 말하는 건 조금 불편하다.
모래더미에 소중하게 알을 낳고, 알에게 잘 자라라고 물 뿜고(알에게 산소를 많이 공급하기 위해 입으로 물을 뿜는다) 언젠가 소중한 알이 태어나길 바라는 이 아이들 근처에 갑자기 검고 큰 개체가 나타나서 첨벙거리고, 물보라와 모래 바다를 일으키고, 호흡기 소리를 쉭쉭 내면 트리거 피시입장에서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겠는가.
우리는 '놀러'가지만 얘네는 그 덕에 '생존과 종족보존'에 위협을 받기에 당연히 나올 수 있는 반응이 아닌가.
쾌락 vs 생존 뭐 이런 대결이라고 하면 당연히 중요한건 '생존'이다.
누군가의 트리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서 우리 인간들도 서로의 영역을 지키는 것처럼 트리거 피시가 트리거를 세우지 않도록 여름 바다에서는 좀 더 주의를 기울여 핀질을 하는게 좋을 것 같다는 결론.(트리거피시를 만나도 좋으니 핀질하러 바다로 가고싶다. 또르륵.)
출처
[트리거 피쉬] 바다속의 깡패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 해수어 정보 ] 피카소 트리거 Picasso triggerfish -Rhinecanthus aculeatus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코랄 피쉬] 트리거피쉬 (Triggerfish - 쥐치복)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