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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곡도 Jun 22. 2024

흰동가리, 니모를 찾았다.

"니모를 찾았다."


2019년부터 다이빙을 했지만 애니메이션의 니모 무늬를 한 아네모네 피시는 볼 수가 없었다. 첫 열대 바다에서는 몰라서 못 봤을 것이고 니모의 알록달록한 무늬를 인식하고 나서는 코로나 때문에 해외로 가지 못하고 차가운 바다만 주야장천 돌아다녀서 보지 못했다.


2023년 필리핀 사방 바다에서 처음으로 니모를 발견했다.


니모를 찾아서 2003
필리핀 사방에서의 니모, 애니메이션의 니모 무늬와 비슷하다.

이 친구는 이름이 많다. 애니메이션이 유명해지고 나서는 다들 '니모'라고 두 글자로 줄여 편하게 부르는데 공식 명칭은 아네모네피시(anemone fish) - 클라운 피시(clown fish), 흰동가리이다. 이들은 자리돔과로 분류되는데 한자리에 머물러서 '자리'돔이라고 한다. 니모도 한 말미잘에서만 살기 때문에 한 번 본 아이를 또 보고 싶으면 돌아서 보러 가도 계속 볼 수 있다.


1. 아네모네피시 : 말미잘을 sea anemone(바다의 아네모네 - 하늘하늘거리는 말미잘이 아네모네 꽃처럼 이뻐서 그런가 보다. 말미잘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고)라고 하는데, 니모가 말미잘에 붙어살기 때문에 아네모네 피시라고 한다.

말미잘의 하늘거리는 촉수에는 자포가 있어 작은 물고기를 독살시킬 수 있다. (참고로 말미잘은 바다꽃 같지만 동물이다.) 그래서 저 촉수를 뻗어 물고기를 사냥하는 무시무시한 면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니모는 말미잘의 독성에 대한 면역력이 있어 자신의 은신처로 삼고 함께 살아간다.(니모뿐만 아니라 특정한 갑각류와 샛별돔도 면역력이 있어 말미잘의 도움을 받는다)

니모는 말미잘에게 다른 물고기를 유인하여 먹잇감을 제공하고, 말미잘은 은신처를 제공하는 '공생관계'인 것이다.


2. 클라운 피시(clown fish) : 니모의 무늬가 주황색 흰색의 무늬로 덮여 있어 마치 광대 같다고 하여 광대물고기라고도 한다. 처음에 크라운피시라고 잘못 알아듣고, 저 무늬 모양이 왕관모양이어서 그런가? 하는 생각도 했었다.(이런 영알못 같으니)


광대의 알록달록한 옷과 니모가 비슷한가?

3. 흰동가리 : 참으로 구수한 이름이다. 흰색 줄이 있어서 흰동가리이다. 나는 이 이름이 제일 맘에 든다. 물고기 이름에 우리나라 이름이 있다는 건 우리나라에서도 그 물고기가 서식한다는 뜻이다. 동가리라는 말이 붙은 물고기 이름 중에는 육동가리, 아홉동가리가 있다.(하지만 이들은 다른 종류의 물고기들이다.) 제주도에서 주로 봤었다.

흑갈색 줄이 여섯개여서 육동가리
검은줄이 아홉개여서 아홉동가리 출처 : 입질의 추억

우리의 니모는 말미잘에 붙어사는 것 말고도 엄청난 능력이 있는데 그건 바로 '성전환'능력이다. 기본적으로 한 말미잘에는 한 가족(?)이 산다. 모계중심의 사회로 암컷 하나, 그리고 수컷 여럿, 아가 니모들이 사는데 불의의 사고로 암컷이 죽으면 수컷 중에 가장 큰 개체가 암컷으로 성전환을 한다. 수컷 중에서 누가 누가 제일 큰지 서로 눈치를 보다가 넘버 1 수컷이 쨔잔 하고 변신을 하면 1-2주가 걸려 암컷으로 변화한다.


물고기의 세계에서는 성전환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리본일도 자라면서 성별을 바꾸고(수컷->암컷), 앵무고기(암컷->수컷), 나폴레옹피시(암컷->수컷)도 마찬가지이다. 상황이 되면 그렇게 바뀌도록 유전자가 만들어진 것이다.

리본을 닮은 장어, 리본일
앵무새의 입을 닮은 앵무고기. 출처: 국제신문


우리 인간들만 유독 성별이 단지 두 개라고 생각하면서 다른 성을 가진 사람들을 공격한다. 생물학적으로 인간도 성기를 두 개 가지고 태어날 수도 있고 생물학적인 성과 자신이 인식하는 성이 당연히 다를 수 있다. 이것을 두 개로 규정하는 자체가 못 배우고 어리석은 일이다.


도덕 교과서에 '양성평등'이라는 단어가 있어 이를 '성평등'으로 바꾸려는 세상의 노력과 학자들의 움직임이 있었다. 더 이상 성은 두 개가 아님이 과학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밝혀진 일이기에 당연히 바뀔 거라고 생각했는데 웃기는 일이 일어났다. 새 교육과정 공청회에서 이를 반대하는 무리들이 엄청나게 저항을 한 것이다. 마이크를 잡고, 소리를 지르고, 성평등이라는 단어를 가져온 교수를 욕하고, 아이들이 에이즈에 걸릴 거라며 눈물의 호소를 했다.


결론은? 우리 인간은 남과 여 두 개의 성 밖에 없는 것으로 판명이 났다. ‘양성평등’이라는 단어가 교과서에 기존의 서술대로 기재되기로 한 것이다.


세상을 둘로 보는 자들에게 '이 세상은 두 개로 나눠진 게 아니에요. 세 개, 네 개, 백개가 넘는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어요.'라고 하면 그걸 받아들이는 순간 세상이 무너지나 보다.

물고기의 세계만 봐도 이렇게나 다채로운데.



어라 여기에 니모가 있네.


아빠 면회를 갔다가 성모병원에서 수족관을 발견했다. 해수어는 잘 안 기르는데 여기는 특이하게 온갖 해수어들이 20종은 족히 있어 보였다. 노랗고 작은 니모가 살랑 살랑 다니는 게 보였다. 오호

성모병원의 수족관
왼쪽애 아주 작은 손가락 크기의 니모가 있다.

말미잘은 어디 있나, 가족은 어디 있나 찾아보았다.

저기 나뒹굴고 있는 플라스틱 가짜 산호가 있다. 아 그 위에 말미잘도 있구나.

뒤집어진 채 관상용 구실도 못하는 가짜 산호


말미잘은 진짜일까 가짜일까

말미잘은 잘 못 키우면 독성을 내뿜으며 죽기 때문에 수족관에 웬만해선 두지 않는다. 관리가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니모를 키우면서 말미잘은 넣지 않는 수족관들이 꽤 있다. 성모병원은 진짜 말미잘을 넣은 것일까. 가짜 말미잘을 넣은 것일까 근데 왜 니모는 가지 않는 걸까? 다른 물고기가 있어서인가..?


'니모를 찾아서'가 인기를 얻고 난 이후부터 수많은 니모들의 삶은 굉장히 힘들어졌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이 물고기를 가까이에서 보고 싶은 사람들이 바다에서 잡아서 나만의 수족관에서 키우기 시작했던 것이다. 니모의 본성을 거세하고 혼자서 가족도 없이 말미잘도 없이 먹이 활동도 하지 못하고(주는 밥만 먹으며)사는 삶이 유명세와 함께 지속됐다.


저 자연적 삶이 거세된 수족관을 보면서 생각했다.

여기저기서 모인 물고기들이 숙식은 제공을 받지만 물고기답게 살지 못하는 게 병원이랑 비슷하구나. 하고

여기에 온 환자들도 치료를 위해 여기저기서 모여 숙식은 제공받지만 인간적으로 살지는 못하니까.

수족관은 병원의 이런 모습의 그로테스크한 행위예술의 일종로 표현한 것인가.(그때의 기분이 너무 센치해서 이런 생각이 났을 수도 있다. 성모병원은 몇 년간 꽤 많은 돈을 기부받아 아픈 어린이들에게 물고기를 보여주며 꿈과 희망을 불어넣기 위해 이 수족관을 만들었다.)


네 달이 지나고, 아빠의 호스피스 전원에 동의하기 위해 성모병원을 갔다.

수족관에서 니모를 다시 찾았으나 니모는 보이지 않았다.

역시 힘들었던 건가.


영양을 주입받으며 살아가는 삶과 자연스럽게 사는 삶 무엇이 더 좋은 삶이었을까.


마음이 매우 무거웠다.



티비에서 또 다른 니모를 찾았다.

비쩍 마른 하얀 사자 니모.


실내동물원에서 지내던 백사자. 출처 : 연합뉴스

최근에 백사자가 대구의 폐관된 동물원에 있다가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는 뉴스를 봤다. 태어난 지 1년 만에 지하 실내사육장에 갇혀 7년 동안 지내다가 다른 동물원으로 구조(?)된 것이다. 사자를 실내사육장에 키우다니 정말 미친 거 아닌가.

사자는 아마 답답하다는 느낌도 못 느꼈을 것이다. 세상이 이렇게 넓은지, 햇볕과 바람과 비의 존재도 아예 몰랐을 테니까.


다이빙을 하면서 예전에 느끼지 못한 감정들을 많이 느꼈다. 넓디넓은 바다를 누비는 물고기를 보면서 진짜 자유가 뭔지 생각한다.

예전엔 아쿠아리움을 보면 그저 예쁘고 신기하기만 했는데 이제는 저 좁은 곳에서 유영하는 가오리와 상어가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


왜 자연스럽게 내버려 두지 못하는 것일까

자연스럽게 살고, 자연스럽게 두면 되는 것을


제 틀에 가두고 규정하고 소유하려 하는 인간들은 정말 바보다.  



아직 인간은 바다의 5% 도 채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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