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놀래기, Bluestreak cleaner wrasse
'청소놀래기'
이름부터 청소를 잘할 것 같다. 맞다 얘네들은 다른 물고기를 청소해 주는 물고기다.
이름을 몰랐을 때는 그냥 파랗고 작은 이쁜 물고기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곰치 머리 위에서 얼쩡거리며 뭔가를 뜯어먹는 걸 보고 곰강님께 뭔지 물어보니 청소놀래기라고 했다.
둘의 몸짓이 신기해서 얘들을 빤히 보고 있으면 곰치와 청소놀래기가 하던 일을 멈추고 경계한다. 목욕을 하는 와중에 공격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해칠 것 같지 않으면 다시 목욕을 재개한다. 꼼꼼하게 입과 턱과 등에 있는 기생충과 각질을 먹고 톡톡 건드려 마사지도 해준다.(물고기도 마사지를 즐긴다. 상어도 그루퍼도 곰치도 다이버가 만져주면 오랫동안 고양이처럼 치댄다. 단 친한 다이버들에게만. 물림 주의.)
똑똑하게도 곰치나 그루퍼 같은 경우에 자신을 청소해 주는 물고기가 자신에게 목욕을 시켜 주는 도중에 다른 물고기에게 공격받을 것 같으면 입을 살포시 닫아준다. 그리고 입을 살짝 벌려 나가게 해 준다.
청소물고기는 청소놀래기뿐만 아니라 나비고기, 깃대돔, 새우 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 자신의 깜냥에 맞는 물고기를 찾아서 목욕을 시켜주는데 작은 물고기는 작은 청소물고기가 담당하고 큰 물고기는 좀 더 큰 청소물고기가 담당한다. 기생충이 너무 크면 작은 청소물고기가 먹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청소물고기들은 고객물고기 몸에 있는 점막을 뜯어먹고 싶어 하기도 하지만(이게 훨씬 맛있으니) 그걸 먹어버리면 고객이 아파서 달아나기 때문에 인내하고 먹지 않으려고 한다. 암컷 청소놀래기가 고객의 점막을 먹으면 수컷 청소놀래기가 암컷을 혼내는 장면도 포착된 경우가 있다. 이렇게 되면 고객이 자신들의 청소구역에 찾아오지 않기 때문에 서로 잘못된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청소 놀래기가 있는 산호초에서는 생물종이 다양해지고, 청소 놀래기를 없애면 물고기들이 이 산호초를 굳이 찾지 않아 생물종이 줄어든다는 실험도 진행했다.(이런 걸 연구하는 사람들은 대체...)
물론 고객물고기도 배가 고프면 얘네들을 먹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청소물고기를 먹어버리면 다른 청소 물고기들이 자신을 위험한 포식자 물고기라 생각해서 도망가기 때문에 얘네들도 참는다. (청소물고기의 기억력은 1년~3년이며 자신의 고객이 누구인지 기억하고 있다) 고객 물고기의 몸이 청소되지 않으면 기생충이 자신의 몸을 뜯어먹을 수 있고, 죽은 각질을 갖고 살아야 한다. 실제로 기생충이 있는 물고기는 짝짓기에서도 선호되지 않는 대상으로 전락한다. 건강하지 않은 게 눈에 보이니 짝이 되는 것을 꺼린다.
이처럼 고객물고기와 청소물고기는 서로 약속하고 '공생 관계'를 맺는 것이다.
그럼 인간의 공생관계는 어떤가? 요즘은 내가 살고 있는 이 도시에서 사람들이 '공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몇 달 전 새로 사귄 지인이 도시 사람들은 인사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파트 입구에서, 엘리베이터에서 고개를 숙이면 '왜 인사하지?'라는 표정으로 쳐다본다는 것이다. 오늘 또 다른 지인이 말했다. 여기 사람들은 도대체 사람이 인사를 해도 받아주지 않는다고.
같은 공간에서 머물러 함께 살 사람들을 알고 사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 집에 불이 났을 때, 강도가 들어왔을 때 옆집 사람이 도와줄 거라는 믿음이 있으면 갖고 있는 불안이 어느 정도는 감소할 수 있다. 생존과 안전의 욕구가 인간의 제1 욕구이기에 이게 흔들리면 전체의 삶도 흔들린다.
하지만 이놈의 신도시에서는 이주민들이 걱정만 안고 살 곳을 옮겨와 다들 무뚝뚝한 얼굴로, 방어적으로 타인을 대한다. 이렇게 되면 가장 필요한 것이 '돈'이 되고 매뉴얼로서의 '법'이 자신을 지켜주리라 믿게 된다. 법은 대화가 안 될 때나 필요한 건데 여기 사람들은 개인적인 사건에도 소송을 밥먹듯이 일삼는다. 타인과 대화를 할 수 있다 생각하지 않고, 할 줄도 모르기 때문이다. 나의 안전과 생존을 도와주고 지켜주는 것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니다.
책 '행복의 기원'에서는 행복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사회적인 영역을 지켜나가고 확장하는 것이 행복의 열쇠라고 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내향적인 사람에 비해 외향적인 사람들이 행복할 확률이 아주 초콤 더 높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비슷하게 '행복의 조건'에서도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건 결국 옆에 있는 몇 명의 긴밀한 사람과의 안정적인 관계라고 한다.
인간은 공생해야 만족감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는 존재다. 물리적으로 심리적으로 주변의 사람들과 원활하게 관계 맺고 돕고 살아가는 것이 행복의 조건이다. 거창하게 행복까지는 아니어도 나의 불만족과 불안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주변에 대한 어느 정도의 관심과 호의가 필요하다.
공생을 위해서 '옆집 사람의 때를 구석구석 밀어주기 캠페인'정도는 아니더라도(정말 소송당할 수 있다.) 요즘 아파트에서 하고 있는 '인사하고 지내요'캠페인이라도 함께 하면 좋을 텐데.
메아리 없는 인사에 지친 지인 1과 지인 2 그리고 나 이렇게 세 명이 각자의 아파트에서 인사하다 보면 좀 더 나아질까
그래도 오늘도 희망을 갖고 같은 공간에 사는 사람들에게 '안녕하세요' 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