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가까운 통영으로 여행을 갔다.
통영으로 여행을 갔다.
멀지도 않고 주말 이틀 동안의 짧은 여행을 나는 왜 떠나는 걸까?
집에선 일상 루틴의 일탈에 무거운 압박감이 느껴진다. 매일 일어나는 기상시간, 밥 먹는 시간, 공부를 시작하고 끝나는 시간까지. 내 생활의 행동들이 정해진 시간에 이루어지지 않으면 나를 향하는 원망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하루의 끝, 일상의 어긋남에 대한 실망감은 나 자신에게 더욱 아픈 채찍질을 하게 만들었다.
'내가 좀 더 열심히 했었어야 했어, 그때 쉬면 안 됐어, 나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어.'
그만하고 싶었다. 내가 나를 원망하고 미워하는 과정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고 싶었다. 쉬어도 된다는 근거를 나 자신에게 만들어 주고 싶었다. 여행이라 제목 붙인 이번 주말은 일상 루틴에 조금 벗어나도 자유롭다. 눈이 떠지면 일어나 씻고 배가 고파질 때쯤 식당을 찾아가는, 누군가에게는 해이한 일상을 살아도 아무 문제없다.
게다가 마음 맞는 친구들과 함께 의견을 나누고 목적지가 같은 어디론가 향하는 과정까지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투닥거려도 함께 길을 걷고, 삐죽거려도 실없는 농담 한 번에 깔깔 웃어버리는, 아무런 의미 없는 과정 까지도.
나는 여행 계획을 구체적으로 짜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걸 최근에 와서야 깨닫게 되었다. 웬만한 것에 '싫음'이라는 감정을 느끼지 않았기 때문에 내 취향이란 것을 찾는 과정 자체를 생략해 버린 적이 많다. 나에 대해 생각할 시간과 기회의 여유가 생기면서부터 내 생각과 행동에 대한 이유를 찾으려 노력했다.
나는 흐르듯 여행지에 묻어가는 그 과정 자체를 즐기는 사람이었다. 오랜 시간 줄을 기다려 맛집에서 한 끼를 맛보는 것보다 한적한 여행지의 골목길을 걸으며 사 먹는 길거리 간식이 더 마음 깊이 남았다. 북적거리는 유명 여행지에서 남기는 사진 한 장보다 한적한 공원에서 친구들과 나눈 이야기의 조각들이 나에게 더더욱 소중했다. 풍경을 눈에 익히며 내 머릿속을 맴도는 생각들에는 도시에 대한 애정이 깃들어졌다.
이번 여행도 오롯이 예전에 방문했던 책방에 다시 한번 가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여행지를 결정했다. 마을의 작은 골목길, 게스트하우스를 개조해서 만든 책방 안에는 내가 살아가고 싶은 삶을 담은 이야기들로 가득했다. 마을을 벗 삼아 자신들의 이야기를 책 속에 담아내는 '봄날의 책방'. 나와 잘 맞는 책을 찾고 고르며 구입을 결정하는 그 과정에서 오는 안정감이 너무 그리웠다. 그리고 이번 여행에서 사 온 책 한 권이 또다시 일주일을 살아갈 용기를 만들어 주었다.
이 책 한 권이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줄 거란 생각은 애초에 하지 않았다. 그저 앞으로의 한 발짝에 용기를 주는 존재쯤 되지 않을까 싶다. 그 작은 용기가 나에게는 필요했다.
집으로 돌아와 따듯한 물에 깨끗이 샤워를 했다. 여행에서 입었던 빨랫감들을 빨래통에 넣고 챙겨갔던 짐들을 풀어내며 배낭을 정리했다. 독서실에 들고 다녔던 책가방이 여행가방이 되었다 다시 책가방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평소의 그 고민 가득한 책가방이 아니었다. 나의 앞으로에 대한 기대감과 앞으로 내가 해낼 일 들에 대한 벅참이 가득 담겨 있는 기분이다.
여행 끝, 친구들에게 했던 말처럼 나 역시도 앞으로 나아가 보려고 한다. ‘진짜 열심히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