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뇌과학 이야기 #3] 뇌과학으로 말해보는 자유의지
2에서 9까지 숫자 중, 하나만 생각해보아라.
생각한 숫자에 9를 곱해보아라.
그리고 그 숫자의 십의 자리와 일의 자리를 더해보아라. (ex. 15 -> 1+5=6)
그 숫자에서 5를 빼보아라.
지금 생각하고 있는 숫자에 해당되는 알파벳을 생각해보아라. (ex. 1 = A, 2 = B, 3 = C, ...)
그 알파벳으로 시작하는 나라를 생각해보아라.
생각했는가? 아마 내 생각이 맞다면, 당신이 생각한 나라는 덴마크(Denmark)일 것이다.
이는 수학적 원리를 이용한 간단한 트릭이다. 한 자리 숫자에 9를 곱해 나오는 두 자리 숫자의 십의 자리와 일의 자리를 더하면 항상 9가 나온다. (예시. 2×9 = 18 -> 1+8 = 9; 7×9 = 63 -> 6+3 = 9) 여기에 5를 빼면, 사람들은 4를 생각하게 되고, 이어서 알파벳은 D를 생각하게 된다.
D로 시작하는 나라 중에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나라는 덴마크(Denmark)뿐이다. 간단한 수학적 규칙으로 인해 우리는 덴마크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 외의 나라는 우리에게 대체로 생소해서 잘 떠오르지 않는다. D로 시작하는 나라로는 Djibouti: 지부티, Dominican Republic: 도미니카 공화국, Democratic Republic of the Congo: 콩고 민주 공화국 등이 있다.)
자유의지가 없는 순간
방금 전, 당신이 생각한 덴마크는 자유로운 선택이었는가? 이에 대해서는 모두 아니라고 답할 것이다. 수학적 규칙으로 인해 누구라도 덴마크라는 한 가지 선택을 하도록 정해져 있었던 선택이기 때문이다. 외부의 규칙에 따라 강제적으로 정해진 선택에 대해서 우리는 자유롭다 말하지 않는다.
이전 글에서, 우리의 선택이 생각보다 주변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는 우리의 선택이 생각보다 자유롭지 않다는 뜻이다. 이번에는 그보다 더 나아간 주장을 해보고자 한다. 우리에게 자유라는 것은 없다고. 방금 전에 당신이 고른 덴마크처럼 우리가 하는 모든 선택은 이미 정해져 있었고 우리가 느끼는 자유의지는 모두 착각이라고 말이다.
뉴런이 전하는 신호
과학자들은 직접적으로 동물과 인간을 조종하는 여러 가지 방법을 만들어냈다. 뇌세포의 활성화를 조작해, 쥐가 상대를 공격하게 만들기도 하고 [1]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만들기도 했다. [2] 또한, 인간 두뇌에 경미한 전류를 흘려보내, 버튼을 누르고자 하는 욕망을 억제한 실험도 존재한다. [3]
이런 실험들이 가능한 이유는, 우리의 두뇌가 전기 신호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뇌의 기본 단위인 "뉴런"의 역할은 세포 끝에서 만들어진 생화학적 전기 신호를 반대쪽 끝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4] 우리가 마음속으로 하는 다양한 생각과 선택들은 이 뉴런이 전달하는 전기 신호를 통해 이루어진다.
전기 신호는 전기 극성을 띤 입자들의 움직임에 의해 만들어진다. 관찰해보면 이 입자들의 움직임에는 규칙이 있다. 같은 극성을 가진 입자는 서로 밀어내고, 다른 극성을 가진 입자는 서로 끌어당긴다. 입자가 가까울수록 더 강하게 밀어내거나 끌어당긴다. 심지어 물리학자들은 이런 입자들이 얼마나 강하게 서로를 끌어당기고 밀어내는지에 대한 수학적인 규칙을 발견했다. 더 나아가, 그 수식을 종합적으로 계산해, 전기 입자들이 모여 어떻게 그리고 어떤 전기 신호가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수학적인 물리 법칙까지 발견했다.
우리의 생각은 전기 신호를 통해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에, 전기 신호가 물리 법칙에 의해 만들어진다면 우리의 생각 또한 물리 법칙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전기 신호를 관장하는 물리 법칙은 분명 나에 의한 것이 아닌 외부의 규칙이다. 우주가 이렇게 형성되었기 때문에, 우주를 움직이는 물리 법칙이 그렇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존재하는 규칙이다. 따라서 우리의 생각이 물리적인 규칙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사실은, 뇌가 만들어내는 모든 선택이 외부적인 규칙(우주의 물리적 법칙)에 의한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다시 방금 전에 했던 덴마크 실험을 생각해보자. 우리가 덴마크를 자유로운 선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덴마크를 고른 것이 외부의 규칙에 정해진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는 모든 선택이 전기 신호를 관장하는 물리 법칙에 의해 정해지는 선택이라면 그 선택들은 외부의 규칙에 의해 정해진 것이고, 같은 논리로 우리의 모든 선택은 자유로운 선택이 아니다!
벤자민 리벳의 실험
조금 더 직접적인 예시를 들어보겠다. 자유의지의 개념을 직접적으로 공격했던 실험이 있다. 바로 신경생리학자 벤자민 리벳(Benjamin Libet)의 실험이다. 리벳은 피험자에게 버튼을 준 뒤, 피험자가 원하는 순간에 버튼을 누르도록 했다. 그리고 그 버튼을 누르려는 의지가 발생하는 순간에 벌어지는 뇌의 활동을 측정했다.
놀랍게도 리벳은 피험자가 버튼을 누르고자 하는 의지조차 가지기 전에 뇌가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5] 쉽게 말하면 피험자 본인이 버튼을 누르겠다고 생각하기도 전에, 뇌가 미리 반응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더 나아가, 2008년 존-딜런 헤인즈와 그 연구팀이 fMRI라는 뇌 신호 측정 장치를 이용하여 진행한 실험에 따르면, 무려 버튼을 누르겠다는 의지를 느끼기 10초 전에 뇌가 반응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으며 심지어 왼쪽 버튼과 오른쪽 버튼 중 어느 버튼을 누를지까지 일정 확률 이상으로 예측해내기까지 했다. [6]
이게 사실이라고 생각해보자. 만약 뇌를 측정하는 기술이 급진적으로 발달했고 과학자들이 그 기술로 우리의 뇌를 측정하고 있다면, 우리가 자리에서 일어나기로 마음도 먹기 전에 과학자들은 우리가 곧 자리에서 일어날 것을 미리 알 수 있고 점심 메뉴를 선택하기도 전에 내가 어떤 걸 먹을지 미리 알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게 가능한 세계에서, 우리는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는가?
우주의 규칙에 구속된 뇌
이러한 급진적인 생각에 회의적인 과학자들도 매우 많다. 더 나아가, 정말 리벳이 의지가 생기기 전 뇌의 신호를 측정한 것인지에 대해서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과학자들도 존재한다. 하지만 회의주의적 과학자들의 시각을 모두 받아들이더라도, 리벳 실험의 결론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분명 우리가 우리의 미래를 바꾸기 위해 의지를 가지고 선택을 하기 전에 뇌의 전기 신호가 선행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며, 리벳 실험이 우리의 선택은 뇌에서 발생하는 물리적 전기 신호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사실은 다시 한번 더 보여주었다는 것은 회의주의적인 과학자들도 동의하는 사실이다.
우리가 하는 사고와 선택, 행동들이 모두 물질적인 상호작용으로 인해 이루어진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우주를 이루는 물질들의 움직임에는 주체성이 없으며, 그들을 상호작용에는 일종의 규칙(물리법칙)이 존재할 뿐이다. 따라서, 우주의 상태가 한 번 정해지는 순간 그 후에 다가올 미래들도 이런 우주의 물리법칙에 의해 정해지게 된다. (결정론적 우주관의 기본적인 생각이다. 현재 양자역학의 도입에 따라 고전적인 결정론은 반박되었지만, 우주의 규칙에 무작위성이 더해진, 확률적 결정론의 형태로 이어진다. 따라서, 양자역학이 도입된 후에 우주는 어떤 미래가 올지 확률적으로 정해진다.)
그런데 우리 또한 우주의 일부이고 뇌는 물질적인 상호작용으로 작동하기에, 우리가 어떤 행동과 어떤 선택을 할지는 모두 물리법칙에 의해 정해지게 된다. 우리의 선택이 이미 우주에 의해 결정되어 있다면, 우리는 미리 우주가 프로그래밍한 선택들을 수행해 나가는 로봇이나 다름없다. 태어난 순간 이미 우리가 누구를 사랑할지, 아니 심지어 당신이 이 시점에 이 글을 읽을 것이라는 것도 정해져 있다면 우리는 과연 자유롭다고 할 수 있을까? 우주가 근본적으로 내재하고 있는 물리적 규칙에 의해 정해지는 우주의 미래에, 인간의 '의지'가 개입해 바꿀 수 있는 부분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생화학적 꼭두각시
신경 철학자 '샘 해리스 (Sam Harris)'는 그의 저서 『Free Will』에서 "과학적 결과들은 우리가 그저 생화학적 꼭두각시에 불과하다고 말해준다"라고 했다. [7] 우리는 그저 뇌에서 일어나는 생화학적 작용에 의해 작동하고 있는 기계일뿐이며, 인간이 가진 자유의지는 허상이고 오로지 자유롭다는 느끼는 자유 관념만 존재할 뿐이라고 말이다.
나 또한 인간에게는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종류의 자유의지는 없으며, 최소한 아직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자유의지에 대한 정의가 없다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자유의지 존재에 기반을 두고 있는 많은 도덕적 가치들에 대해서도 심층적인 재검토를 해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자유의지에 대한 논의는 더 큰 문제를 야기한다. 만약 우리에게 자유의지가 없고 우리의 선택이 모두 결정되어 있다면, 내가 지금 내리는 선택은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우리가 뭘 선택하든 미래는 이미 정해져 있는 거 아닌가? 심지어 이 상황에서 대체 우리는 왜 자유롭다고 느끼고 있을까? 다음 글에서는 이 자유의지 시리즈의 마지막 순서로, 우리가 내리는 선택의 의미와 우리가 느끼는 자유로운 느낌이 어떻게 발생했는지에 대해 논의해보겠다.
P.S.
자유의지 논쟁은 그 자체로 긴 역사를 가지며, 아직까지 논쟁이 끊이지 않는 주제이다. 많은 철학자와 과학자들은 자유의지가 존재한다고 주장하며, 또한 많은 학자들은 자유의지에 대한 명확한 대답을 피하려 한다. 여기서는 자유의지 반대론자로서의 의견만 제시했기에, 옹호 의견 또한 독자들에게 제시하려 한다. 인터넷에 '자유의지'를 검색하면 자유의지 존재를 옹호하는 주장을 많이 볼 수 있지만, 여기서는 그중 가장 효과적이고 간결하게 자유의지를 옹호했다 생각하는 철학자 '대니얼 데닛(Daniel Dennett)'의 두 영상을 소개하겠다.
https://www.youtube.com/watch?v=J69Baze9F50
https://www.youtube.com/watch?v=4ZgPfadpMJI
[1] Han, W., Tellez, L. A., Rangel Jr, M. J., Motta, S. C., Zhang, X., Perez, I. O., ... & de Araujo, I. E. (2017). Integrated control of predatory hunting by the central nucleus of the amygdala. Cell, 168(1-2), 311-324.
[2] Montgomery, K. L., Yeh, A. J., Ho, J. S., Tsao, V., Iyer, S. M., Grosenick, L., ... & Poon, A. S. (2015). Wirelessly powered, fully internal optogenetics for brain, spinal and peripheral circuits in mice. Nature methods, 12(10), 969.
[3] Fecteau, S., Pascual-Leone, A., Zald, D. H., Liguori, P., Théoret, H., Boggio, P. S., & Fregni, F. (2007). Activation of prefrontal cortex by transcranial direct current stimulation reduces appetite for risk during ambiguous decision making. Journal of Neuroscience, 27(23), 6212-6218.
[4] Bear, M. F., Connors, B. W., & Paradiso, M. A. (Eds.). (2007). Neuroscience (Vol. 2). Lippincott Williams & Wilkins.
[5] Libet, B., Gleason, C. A., Wright, E. W., & Pearl, D. K. (1993). Time of conscious intention to act in relation to onset of cerebral activity (readiness-potential). In Neurophysiology of Consciousness (pp. 249-268). Birkhäuser, Boston, MA.
[6] Soon, C. S., Brass, M., Heinze, H. J., & Haynes, J. D. (2008). Unconscious determinants of free decisions in the human brain. Nature neuroscience, 11(5), 543-545.
[7] Harris, S. (2012). Free will. Simon and Schu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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