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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앙드레 Aug 29. 2022

로스트비프 -금요일 밤에 열리는 가정 미식회(2)

랜덤 푸드 제너레이션 

‘핑크 엘레펀트? 어디서 들은 거야? 이거 공군 암호인데? -


조나단 파킨슨 (영국 공군 전역 , 현 통신회사 직원)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며 식탁에 앉은 우리는 존이 썰어주는 고기를 기다리며 

오늘 있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다. 

아직 영어가 서툰 나를 배려해 그들은 아주 느리고 정확한 발음과 악센트를 사용하여 이야기를 나누었고 최대한 두리뭉실한 묘사보다는 단어 위주로 이야기를 이어 갔다.


커다랗고 거무 튀튀한 로스트비프를 존이 솜씨 좋게 저며내기 시작하였다. 

한 꺼풀 한 꺼풀 고기가 결을 이루며 떨어질 때 핑크빛 육즙이 가득한 속살이 꽃이 피어오르듯 촉촉한 모습으로 그릇에 쌓였다. 우리들은 집게로 촉촉하고 고소한 냄새가 가득한 고기를 원하는 만큼 접시 위에 올렸다.


그리고는 자리에 돌아와 아직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야채들을 고기 옆에 담아 두었다, 익은 콩과 당근의 냄새가 고기 냄새와 어울려져 정말 먹음직스러운 냄새를 만들어 주었다

나는 메쉬 포테이토를 담고 있는 헤더를 기다리며 오늘도 야채를 적게 담아 강제적으로 더블사이즈의 야채를 받고 괴로워하는 조슈아의 모습을 감상하였다.


헤더는 나에게 매쉬 포테이토가 담긴 그릇을 넘겨주며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물어보았고 나는 커다랗게 매쉬 포테이토를  접시에 담으며 수퍼익스트리믈리판타스틱이라고 말하였다.


존은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오늘 집에 돌아오면서 있었던 들판 이야기를 꺼내며 이야기를 주도하였고

캐서린은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이번 사건은 개인의 주도 하에 일어난 일이니 ‘테링톤 스트릿 탈주 미수 사건’으로 

명명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루크는 요크셔푸딩을 3개 접시에 담으면서 뒷마당에 더 이상 사람을 묻을 때가 없다고 하였다. 존은 입으로 손가락을 가리키며 쉿!이라고 말하고는 아직 한 명 밖에 묻지 않았다고  하면서 장난스럽게 눈썹을 치켜올리며 나에게 윙크하였다. 


나는 풍성하게 담긴 내 접시 위에 그레이비소스를 부어 내리며 내 접시가 완성됨을 선언하였고 후추통을 들어 접시 위에 차카차카 소리가 나게 뿌려 내 저녁 위에  후추의  축복이 흐르게 하였다.

핑크빛으로 물든 로스트비프를 포크로 누르면 육즙으로 적셔진 듯 고기가 진한 고기 국물을 뿜어내며 식욕을 자극하였다. 나는 이 은혜로운 한 점을 시식하였다.


입안에서 고기의 지방과 육질의 부드러움이 엉키면서 고소함과  육즙이 홍수처럼 범람하였다. 이로 부드러운 고기를 씹을 때마다 풍미는 밀물처럼 들어와 다시 한번 내 입 안을 황홀하게 만들어 주었다.

정말 감탄이 나오는 고기의 맛이었다.


나는 고기의 맛을 모두 음미하고 난 후 만족스러운 상태에서 또 다른 변주를 위해 접시 위를 탐색하였다.

스팀 된 야채와 충분히 진득한 그레이비가 얹어 있는 모습은 옅은 파스텔톤 수채화에 강한 터치가 부드럽게 가미된 그림을 보는 듯했다. 


충분히 부드러워 칼을 댈 필요가 없는 야채들을 포크로 떠서 최대한 그레이비소스가 유실되지 않게 입으로 모셔가는 것이 두 번째 식사의 포인트였다.


입으로 들어선 야채들은 모두 채집이라는 입장권을 보여주었고 팁으로 그레이비소스의 진한 맛까지 주어서 나는 그들을 최고의 서비스로 모셔가며 입안에서 음미하기 시작하였다. 입안에서 당근의 달큼함, 콩의 고소함, 옥수수의 감칠맛 하나하나 놓칠 수 없는 즐거움이었다.


야채들과의 만남이 끝난 후 당연히 메쉬 포테이토에 손이 안 갈 수가 없다.


루크가 얼마나 힘 좋게 으깨였는지 온전한 감자 조각은 전혀 찾을 수 없는 정말 최상의 매쉬포테이토였다. 

부드러운 메쉬 포테이토의 언덕을 지나다 보면 어느새 버터의 풍미와 크림의 신선하고 고소한 우유맛이 포근하게 느껴졌다. 감자의 담백한 맛은 그 포근한 이불을 덮고 진하고 풍미가 가득한 부드러움을 선사하였다.


나는 입에 한 움큼 메쉬 포테이토를 넣고는 반짝이는 눈으로 루크를 바라본 다음 

엄지를 척! 하고 들여 보였다. 

루크는 별일 아닌 일이라는 듯 어깨를 으쓱하였지만 그는 내 엄지 척 횟수를 새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후부터는 가족들과의 이야기 학교 이야기 등등을 이야기하며 1시간 반 동안의 식사가 이어진다.

바보 같은 표정을 지으며 귀를 잡아당기고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는 조슈아의 입담에

나는 웃으면서 요크셔푸딩을 입에 와그작 넣었다. 짭조름 한 맛이 일품이었다. 


성대한 만찬이 끝났고, 캐서린은 자신의 컵을 나이프로 땡땡~! 쳤다.

‘오늘은 생긴 지 얼마 안 된 전통인 “닥터 후의 밤”입니다~! 

숙녀분들께서는 시간 때에 맞춰 거실로 모여주세요!’ 


오늘의 저녁 설거지는 기쁜 마음으로 봉사할 것을  자처한 나와 야채를 남겨 설거지에 당첨이 된 죠수아였다.


가족들은 모두 자기가 먹은 그릇을 싱크대에 넣어주었다 물론

다정하게 설거지를 해줘서 고마워! 도 잊지 않았다.

내가 닦으면 조슈아는 헹구는 역할분담을 나눴다. 

남은 음식은 플라스틱 통에 담아 내일 저녁에 먹을 수 있도록 남겨 두었다. 


‘오이 엔드류, 내일 행크가 망원경을 가져와서 같이 과학 숙제할 건데 같이 할래?”

키가 190이 넘는 조슈아는 나를 내려다보며 말하였다.

‘정말 좋은 생각이야, 내일 밤 뒷마당에서 할 거야?


‘응응 달을 관찰할 예정이야, 이번 주제가 달에 대한 건데 운이 좋으면 다른 별들도 볼 수 있을 거 같아.’

우리 둘은 킥킥 대면서 설거지의 지루한 시간을  망원경 이야기와 게임 이야기로 이어갔고 식기 세척기에 마지막 접시를 꺼내 마른 수건으로 물기를 제거한 우리는 방으로 올라가 ‘닥터 후 타임’ 전까지 스매시 브라더스를 즐기기로 하였다. 


주말이 다가오는 평범한 가정의 가정식. 


외롭고  거친 유학생활 안에서 내가 진심으로 느꼈던 따듯한 온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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