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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태도

by 라엘북스


교회 독서모임을 준비하다가 뜻밖의 질문을 받았다.


“왜 하필 진화론자가 쓴 책을 선정해서 읽나요? 신앙에 도움이 되는 고전과 같은 책들을 읽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 순간 내 안에 커다란 벽으로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책 자체는 진화론과 전혀 상관없는, 인간이 배우고 성장하는 길에 대해 성찰하는 책이었는데, 저자의 배경이 ‘진화론자’라는 이유만으로, 책 전체가 기독교 신앙에 반하는 사상으로 덮여 있을 것이라고 단정하는 태도 앞에서, 매우 무기력함을 느꼈다.


독서모임의 목적이 무엇일까? 일방적인 강의를 하는 공간이 아니다. 정답을 가르치기 위한 교실이 아니다. 오히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이 모여, 책을 매개로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다. 나와 다른 생각을 듣고,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관점을 배우며, 그 과정 속에서 내 생각도 다듬어지는 자리다. 그런데 이 모임이 단지 “신앙에 도움이 되는 책만 읽는 곳”으로 축소된다면, 토론은 사라지고 일방적인 결론만 남게 될 것이다. 그 순간부터 모임은 더 이상 살아있는 배움의 장이 아니라, 자기 목소리만 울려 퍼지는 에코 챔버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동시에 한편으로는 기쁘기도 했다. 이게 뭔 소리인가 싶겠지만, 교회야말로 극과 극이 만나도 하나가 될 수 있는 곳인데, 하나가 된다는 것은 다른 것이 있어야 하나가 되어갈 수 있지 않겠는가? 그래서 오히려 다른 생각이 있다는 자체는 기쁨으로 다가왔다.


사실 성경 속에도 세상 부조리에 절망하며 탄식하는 시인의 목소리, 하나님께 이유를 따지고 드는 욥과 같은 목소리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러기에 근본주의적 태도에 대한 경계가 필요하다. 근본주의는 ‘성경만이 진리다’라는 확신에서 출발했지만, 종종 그 확신을 방패 삼아 다른 모든 사상과 목소리를 닫아버린다. 성경에 근거하여 듣고 묻고 숙고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독서란, 세상을 만나는 일이다. 세상을 만든 분이 하나님이시라면, 세상을 향해 열린 독서 또한 신앙의 길일 수 있다. 물론 모든 사상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배제와 두려움으로 독서를 막는 것은, 진리의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아니라 오히려 불신을 드러내는 태도일지 모른다.


신앙은 두려움으로 자신을 지키는 울타리가 아니라,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향해 열려 있는 문이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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