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지내고 있다. 잘 지내고 있다. 저녁 약속이 있을 때도 있지만 가끔이다. 혼자 밥 해 먹고 치우고 청소하고 잔다. 꽤 평화롭다. 저녁 메뉴 선택권이 온전히 나에게 있어서 식탐이 많은 나는 매일 행복한 고민에 빠진다. 달달한 오리엔탈 드레싱이 아니라 시큼한 발사믹 드레싱이 내 입맛과 더 어울린다는 것도 알았다. 보송하게 마른 빨랫감을 차곡차곡 개어 정리하는 쾌감을 즐긴다. 집에만 눌러있겠다고 다짐한 지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주변 신상 카페를 찾아가는 변덕을 부린다. 재활용이나 음식물 쓰레기는 내가 버리고 싶을 때 버리고, 만사가 귀찮을 땐 방바닥에 머리카락이 소외양간 지푸라기처럼 수북이 쌓여도 못 본 척한다. 밤 열 시가 넘어 뿌링클 치킨이랑 떡볶이를 시켜 먹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다. 가끔 심심하면 배철수 아저씨 라디오나 이금희 아나운서 라디오를 틀어놓고 디제이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킥킥거리기도, 훌쩍거리기도 하고, 근처 공원에 나가 남의 반려견 구경을 실컷 하며 힐링하기도 한다.
그런데 꼭 하루 한 두 번씩은 별 일은 아닌데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릴 때가 있다. 아침에 서두르다가 옷장 모서리에 새끼발가락 찧은 이야기, 꿈에서 뜬금없이 이름도 기억 안나는 초등학교 동창이 나온 이야기, 아파트 후문에 수요일 저녁마다 닭꼬치 푸드트럭이 오기 시작했는데 다 먹어봤더니 간장양념맛이 진리라는 이야기 등이다. 본가에서 지낼 땐 벌떡 일어나 다른 방으로 달려가서 가족들에게 짹짹댔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다. 혼자 사는 자유와 맞바꾼 대가이다. 이런 걸로 매번 누군가에게 전화하기엔 심히 소소한 느낌이다. 씻고 머리를 말리면 금세 기억 속에서도 날아가버릴 것만 같은 가벼운 이야기들이니까. 그런데 그러다 보면 작고 소중한 일상의 이야기들이 훠이훠이 휘발되어 버릴 때가 많다. 아쉬움을 글쓰기로 달래보기도 하지만 아침마다 출근해서 만나는 반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이야기들이 새어나간다. 혼자 사는 독거 선생은 이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아침 조회 시간에 늘어놓기 시작했다. 아침 여덟 시 오십 분, 그날 아침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야기들로 말문을 연다.
“아, 어제 또 야식 먹었어. 샘 얼굴 퉁퉁 부었지?”
"또요? 지난주에 야식 끊는다고 어플 지운다고 했잖아요!"
"그게~ 배달의 민족은 지웠는데~ 쿠팡이츠는 남아있어 가지고... 무려 배달비가 무료라니까?"
"아휴, 뭐 시켰는데요?"
"뿌링클 치킨! 월경 때 꼭 당긴단 말이야. 그래도 떡볶이는 배달 안 시키고 편의점 가서 싼 걸로 사 왔다고! 맛있게 먹긴 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까 속이 안 좋아서 결국 쿠팡 이츠 어플도 지웠어..."
"샘 다음 주에 또 배달 어플 다시 깔고 시켜 먹는다에 한 표!"
"아니거든? 이번에는 진짜 야식 끊을 거거든?"
보통 전~혀 위로가 안 되는 반응이 돌아오고 오히려 아이들한테 잔소리를 듣기도 한다. 그렇지만 나는 다음날도 아무도 묻지 않은 이야기를 꿋꿋하게 시작한다.
“대박 소식 알려줄까? 샘 고등학교 동창이 '나는 솔로' 프로그램 나온다?”
“그게 뭐예요?”
“야 너 그거 안보냐? 그거 엄청 유명한 예능이야. 저 엄마랑 그거 보는데! 샘 친구 이름이 뭐예요?”
"비밀인데~ 안 알려 줄 건데~"
"아깝다! 샘 진짜 나이 알아낼 수 있었는데. “
자랑하고 싶은 일이 생겨도 마찬가지다.
“선생님 이번에 아버지 타시던 차 물려받기로 했다!”
“올~ 차 뭔데요? 샘 차가 없었어요?”
“응 없었어. 소나타인데 오래된 거야 한 십오 년 됐을걸?”
"헉, 가다가 멈추는 거 아니에요?"
“뭐 어때. 생긴 게 어디야! 사진 보여줄까? “
“네! 보여주세요!”
점점 아이들이 내 얘기를 '들어준다'는 느낌이 든다. 저녁 메뉴 얘기, 운동하다가 발목 다친 이야기, 주말에 만난 친구 얘기까지. 혼자 사는 선생님의 푸념을 너희는 강제로 앉아 듣고 있을 수밖에 없겠구나. 가여운 것들! 애들이 얘기를 얼마나 깊게 듣겠냐마는 그래도 보통 지루해하는 표정 없이 눈이 똥그래져서 아무 말이나 한마디씩 하는 게 귀엽다. 솔직하고 밝은 기운으로 맞받아 쳐주는 게 좋다. 가끔 자기도 그 영화 봤다거나 그 공원 놀러 가봤다면서 만담으로 이어져서 일교시 수업 시간을 십분 이상 잡아먹기도 한다. 이젠 익숙해져서 그러려니 하고 일교시는 여유롭게 수업을 짠다. 아이들은 짜내어 반응하지도, 너무 심각해지지도, 나를 가르치려 들지도 않는다. 아침에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출근 모드로 전환을 한다. 가끔 혼자 축축하게 안고 있던 마음이 아이들에게 털어놓고 나면 보송보송해질 때도 있다. 한결 가벼워진다. 출근하기 너무 싫었던 날도 어찌어찌 시작이 된다. 수다를 너무 좀 떨었다 싶으면 그제야 일교시 교과서를 펼 엄두가 난다. 어쩌면 나는 아이들의 기운을 빨아먹고 일하는 독거 선생이자 마녀일지도 모르겠다.
일찍 취직해서 다니던 회사 영업팀을 그만두고 다시 수능을 쳐서 교육대학교에 들어갔다. 큰맘 먹고 새로 진로를 확 바꿀 땐 내 하루를 돌아봤을 때 남는 게 있으면 했다. 열심히 일한 결과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면 좋겠다는 거창한 포부도 있었다. 언어치료, 노인 복지, 특수교육 등 여러 분야를 알아봤다. 사회 흐름상 노인복지 분야가 가장 전망이 좋아 보였지만 마음이 가는 대로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었다. 저출산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시대착오적이 결정이었다. 그렇지만 회사를 다니며 속을 모르겠는 어른들 사이에서 지쳐버렸던 터라 아이들 가까이 있으면 맑은 기운을 받겠지 싶었다. 그 에너지를 빌려 다시 힘을 내고 싶다는 시꺼먼 속셈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어느 정도 목표를 달성한 셈이다. 교사로서 느끼는 책임감이 매일 출근길 어깨를 무겁게 하고 속을 모르겠는 아이들도 종종 있지만 회사 다닐 때보다 훨씬 자주 웃는 것만은 확실하다. 아이들의 아재 개그가 어이없어서 웃고, 친구들끼리 급식을 서너 번씩 더 타먹으며 우정을 쌓는 모습이 귀여워서 피식한다. 과학 시간에 사람한테 뼈가 없으면 어떨까 표현해 보라고 했더니 바닥에 문어처럼 붙어서 혀까지 축 늘어뜨리고 있는 꼴이 우스꽝스러워서 다 같이 깔깔거린다.
아이들에게 큰걸 바라지 않는다. 나를 오래 기억해 주길 바라지도 않고, 칭송해 주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오늘도 무탈하게, 누구 하나 마음 크게 다치지 않고 지내면 좋겠다. 시시껄렁한 이야기나 하면서 그렇게 무사히 일 년이 지나면 좋겠다. 늘어놓을 이야기도 매일 생긴다. 아침에 서두르다 계란프라이를 바닥에 떨어뜨려서 속상하다고 징징대야지. 동네 마트에서 귤 세일을 하길래 한 바구니 샀더니 아래 깔린 귤들이 못 먹을 정도로 물러있어서 반은 버렸다고 고자질하고. 근처 공원에서 이번 주말에 축제를 하니까 꼭 가보라고 알려주고 싶다. 학교 앞 편의점에 갔는데 운 좋게도 요즘 구하기 힘든 먹태깡 과자를 득템 했다는 자랑도 실컷~ 쭉~ 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