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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람티 Mar 06. 2024

귀여워, 귀여워, 귀여워


"선생님, 요새 학교에서 시간이 너무 빨리 가요."


"그래? 다행이다 성민아~ 재밌나 보다."


"네. 3학년 때보다 빨라요. 아빠가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고 했는데 무슨 말인지 이제 알겠어요."


풋! 하고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 말을 하는 성민이 표정이 사뭇 진지해서 귀여웠기 때문이다. 이제 3일 밖에 안 지났지만 성민이가 적응을 잘 하고 있는 것 같아서 안심이 되기도 했다. 비타민 주사를 맞으면 이런 느낌일까? 굵고 짧게 하루의 피로가 풀리는 것 같았다.



새 학기가 되어 4학년 아이들과 지내고 있다. 연이어 6학년 담임을 하다가 4학년으로 내려오면서 큰 기대는 없었다. 그저 좀 쉬고 싶었다. 1년 내내 쉴 틈 없이 졸업사진, 졸업 여행, 졸업식, 중학교 배정 업무가 밀려드는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우리 반 아이들을 처음 만난 월요일, 내게 궁금한 점을 색종이에 적은 후 비행기를 만들어서 날려달라고 했다. 선생님 소개 피피티를 만들 시간이 부족해서(귀찮아서) 써본 방법이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비행기를 접는 것도, 나에게 날리는 것도 꽤 많이 좋아해서 오히려 당황스러웠다. '아니 이걸 이렇게 즐거워한다고?'


'선생님은 고향이 어디예요?'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뭐예요?'

'MBTI가 뭐예요?'

'좋아하는 동물은 뭐예요?'



질문들도 상당히 말랑말랑했다. 좋아하는 음식이 뭐냐는 질문을 적은 아이가 7명은 되었다. 아주 가볍고 기분 좋게 답할 수 있는 질문들이었다. 선생님이 곤란할 수 있는 질문은 하지 말라고 미리 당부하긴 했지만 이렇게나 무해할 줄이야. 같은 상황에서 6학년이라면 내 나이나 연애와 관련된 질문을 어떻게든 돌려 물어봤을 터였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달걀 프라이고 좋아하는 음식을 자주 쉽게 먹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답했다. 그랬더니 성준이가 손을 번쩍 들고는 달걀 프라이를 맛있게 먹는 팁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있잖아요. 달걀 프라이 할 때 소금 뿌리잖아요. 그걸 중간에 뿌리지 말고 맨  마지막에 뿌리면 훨씬 맛있어요. TV에 나와서 제가 해봤어요."


그 방법은 몰랐다고, 벌써 달걀 프라이를 혼자 해먹을 수 있냐고 호들갑을 떨며 반응해 줬더니 성준이 어깨가 금방 으쓱해지는 게 보였다.



어제 급식시간에는 치킨너겟과 머스터드소스가 듬뿍 발린 샐러드가 같이 나왔다. 나는 샐러드를 좋아해서 듬뿍 받아 소처럼 우적우적 씹어 먹었다. 바로 앞에 앉은 진서가 그게 그렇게 맛있냐고 묻더니 평소에 먹지 않는다는 샐러드에 입을 대기 시작했다. 심지어 샐러드가 이렇게 맛있는 거였냐며 더 받아먹었다.'아니 나를 이렇게까지 따라 한다고? 내가 이렇게 영향력을 줄 수 있다고?'



꼴랑 3일 지났기에 조심스럽지만, 아직은 예쁜 모습만 보일 때라지만, 열한 살은 열세 살보다 꽤 많이 귀엽다. 그리고 나는 귀여운 것에 가장 약하기 때문에 조만간 이 아이들에게 홀랑 넘어갈 예정이다. 6학년이랑 지낼 땐 친구 같은 편안함이 나랑 맞는 것 같았는데 4학년이 더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벌써 든다. 내년엔 좀 더 용기를 내어 2학년으로 내려가 볼까 하는 설레발도 치고 있다.


사진첩을 자꾸 열어 오늘 찍은 아이들 사진을 자세히 살펴본다. 카메라를 가져다 대면 서로 찍어달라고 방방 튀어 오르는 모습이 아직도 낯설다. 낯선데 귀엽다.


이제 3년 차밖에 안 됐는데 벌써 무기력해지나 싶어서 걱정하며 맞이한 새학기였다. 만난 지 3일차에 내 앞에서 개다리춤을 추는 귀요미들과 함께라면 걱정 따위 바로 개나 줘버려도 되지 않을까? 올봄에 나 다시 설레도 되는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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