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람 펴도 너는 절대 피지 마~ 베이붸'
무려 십오 년 전에 가요계를 휩쓴 '내로남불'곡의 가사이다. 이게 무슨 상놈의 소린가 싶은데 지금까지 회자되는 걸 보면 성공한 곡인가 싶기도 하다.
아이들한테 하지 말라면서 정작 교사 본인도 지키지 못하는 것들이 꽤 많다. 아니, 아~주 많다. 목록을 뽑아보자면 에이포 용지 한 장에 빼곡히 적어도 모자라다. 자기도 못 지키는 걸 이래라저래라 하는 내로남불 선생일 때가 많은 것이다.
내로남불 선생의 사례는 교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연필만큼이나 흔하게 찾을 수 있다. "자기 전에 핸드폰 하지 말고 일찍 자야지."라고 해놓고 본인은 밤마다 편의점 신상 리뷰 유튜브 시청에 빠져있다. 요즘 핸드폰 감금상자가 유행이라던데 진지하게 하나 구매해볼까 싶은 생각까지 든다. "친구한테 서운하면 괜히 툴툴거리지 말고 제대로 표현을 해!"라고 하면서 본인은 못한다. '아니, 나랑 단풍구경하러 북한산 가기로 해놓고 다른 친구랑 홀랑 다녀왔다고? 서운해!'라는 말하는 대신 '그래, 나만 또 진심이었지. 다음부터 네가 하는 말 흘려들을 거야, 흥!'이라며 혼자 거리 두기를 해버린다. "다른 사람 물건은 허락받고 써야지. 친한 사이일수록 예의를 지켜야 해."라고 해놓고 지난 주말에도 동생 옷을 몰래 입고 나갔다가 딱 걸렸다. "열세 살이면 자기 자리 청소는 알아서 해야 되는 거 아니냐!" 해놓고 교실의 내 책상 위엔 먼지가 수북이다. 교사 책상이 분필만큼 새하얀 색이어서 오늘 닦아도 내일 다시 먼지가 쌓인다는 핑계를 대 보지만 말이다.
나는 되고 너희는 안된다는 뻔뻔한 목록은 어쩐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그중에서도 매일 반복되는 것은 아이들에게는 학교에서 군것질하지 말라고 하면서 선생님은 몰래 간식을 까먹는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쉬는 시간에 교사의 눈을 피해 마이쮸를 나눠 먹으며 우정을 확인하기도 하고, 수업 시간에 마스크 속에 초콜릿을 넣고 오물거리다가 개코 선생님에게 압수당하기도 한다. 그렇게 모인 코딱지 묻은 간식들은 보통 하교할 때 돌려주는데 여러 번 걸리면 괘씸죄가 적용되어 선생님의 간식 주머니로 쏙 들어가 버린다.
어릴 적 부모님 차를 타고 여행을 갈 때면 당장 휴게소에 가서 먹을 걸 사주지 않으면 카시트라도 뜯어먹겠다고 협박하던 아이가 바로 나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지고 배고프다고 아우성치는 아이들을 보면 충분히 이해가 간다. 주말에 보고 온 엄마아빠기 또 보고 싶다. 그렇지만 상황이 공감이 간다고 교실에서 간식 먹는 걸 공식적으로 허용하기가 힘들다. 녹은 초콜릿, 들러붙는 마이쮸, 과자 부스러기 등으로 교실 바닥이 더러워질 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치사한 먹을 것 가지고 하는 싸움이 시작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누구는 마이쮸 주고 나는 왜 안 주냐, 나는 지난번에 줬는데 너는 나를 왜 안 챙겨주냐’하는 말들이 들리기 시작할 것이다. 간식 금지령을 내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래놓고 나는 쉬는 시간에 수상할 만큼 교사 연구실을 자주 드나든다. 아침에 학교에 도착하면 연구실 냉장고에 초콜릿, 바나나, 찐 고구마 등을 쟁여놓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아침 식사를 든든히 먹은 날이라면 삼교시 쉬는 시간인 열한 시 이십 분까지 물만 마시며 버티기도 한다. 그렇지만 대부분 이교시가 끝나는 열 시 반이면 홀린 듯 연구실로 달려간다. 쉬는 시간은 공식적으로 십 분이지만 이전 수업 마무리나 다음 수업 준비로 바쁠 때가 많아서 일분일초를 아껴 써야 한다. 화장실 다녀올 시간도 빠듯할 때가 많다. 늑장을 조금만 부리면 아이들이 슬금슬금 다가와 좋아하는 아이돌 컴백 소식을 전하거나 새로 산 인형 고리를 자랑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보면 연구실로 쉬러 갈 타이밍을 놓치기 십상이다.
첫 해에는 쉬는 시간에도 애들 얘기를 다 들어주고 앉아있다가 만성 변비를 얻었다. 텀블러에 물 뜨러 가는 것도 자주 잊어서 오전 내내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수업을 할 때가 많았다. 가끔 허기진 상태로 수업을 계속하다 보면 손끝이 덜덜 떨릴 때도 있었다. 만성 변비와 수분 부족에 시달리는 선생님은 열정 넘치기도, 상냥하기도 힘들다는 걸 온몸으로 실감했다. 이제는 쉬는 시간에 당충전과 물충전을 하는 것에 우선순위를 둔다. 내 컨디션부터 챙기는 게 먼저다.
교사 연구실은 교사들의 휴식, 회의 공간이기도 하고 학생 개별 상담이 필요할 때 사용하는 공간이다. 상담을 하려면 연구실에 남교사와 여학생, 여교사와 남학생이 단 둘이 있어야 하는 때도 있기 때문에 창문은 안이 잘 보이도록 투명 유리로 되어있다. 그래서 지나가는 학생들의 눈을 피해 간식을 먹으려면 의자를 벽 쪽에 바짝 붙여놓고 사각지대를 이용해야 한다. 사각지대에 앉아 창문 밖을 힐끔거리며 조마조마하게 바나나를 까먹는다. 바나나를 한 입 베어 물고 입 안에 기분 좋은 단맛이 퍼지고 나서야 크게 숨을 내쉰다. 그 찰나가 내게는 진짜 쉬는 시간이 된다. 아이들 눈치를 살피며 얼른 간식을 목구멍으로 넘기려고 애쓰고 있자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기도 하다. 몇몇 선생님들은 해장을 못했다면서 당당하게 냄새가 풀풀 나는 컵라면을 먹기도 한다. 나만 너무 애들 눈치를 보나 싶긴 하지만 지나가는 애들이랑 눈이 마주치면 괜히 신경 쓰이고 배고프다는 애들 다 먹일 자신도 없는데 어쩌겠나.
그 와중에 몰래 먹는 간식의 종류는 점점 다양해진다. 처음엔 낱개 포장되어 있는 과자를 하나씩 뜯어먹는 수준이었는데 그 과자가 모여 뱃살을 증식시키면서 변화를 주었다. 여름에는 포도나 방울토마토를 잔뜩 씻어다 놓고 겨울에는 찐 고구마랑 귤을 넉넉하게 준비해 놓았다. 바나나, 구운 계란은 항상 구비해 놓고 아몬드는 실온 보관이 가능해서 교실 서랍에 넣고 몰래 몇 알씩 씹어먹는다. 아이들이 나에게 다람쥐를 닮았다고 할 때마다 몰래 아몬드 씹어먹는 걸 들킨 것 같아 뜨끔하다. 그러다가 성적 처리 기간이나 학부모 상담기간 등 스트레스가 확 몰려오는 때면 뭐니 뭐니 해도 초콜릿이나 젤리를 잔뜩 입속에 털어 넣어야 진정이 된다. 건강한 간식들이 채워줄 수 없는 인공 단맛이 절실한 때다.
좀 더 짬이 차면 연구실에서 당당하게 간식을 즐기는 날이 올까? 내가 간식을 유독 많이 찾는 편인가? 나 어릴 땐 선생님들이 어떻게 지내셨던 걸까? 그분들도 벽에 붙어서 몰래 드셨던 걸까? 눈치가 빠른 어린이였던 나도 선생님이 몰래 숨어 간식을 먹고 있으리라고는 생각은 못했었는데 말이다(하긴 내가 선생님이 될 줄도 몰랐다). 올해는 텀블러에 몰래 미숫가루나 선식을 타서 들고 다녀볼까 싶다. 좀 더 맘 편히 허기를 달랠 수 있지 않을까? 텀블러 뚜껑을 열면 고소한 냄새가 풍겨서 티가 나려나? 동료 선생님 추천처럼 냉동 참치 주먹밥을 작게 만들어 하나씩 꺼내 먹어 볼까? 입에서 참치냄새가 나지 않으려나? 어쩐지 새 학기 준비 중에 간식 먹을 궁리를 제일 골똘히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내 착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