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다 클린스만 감독 때문이다.
호주와의 아시안컵 팔 강전을 응원하며 나는 동생에게 이미 옐로카드를 받았다. 손흥민이 프리킥 기회를 환상적인 골로 연결시켰을 때 내 이성도 환상의 나라로 떠나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으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대바아아아아아아악!!"
목구멍에서 새어 나온 괴성은 새벽 출근을 해야 하는 동생의 귓구멍을 강타했고 그녀는 다시 잠에 들지 못했다. 다음날 아침 다크서클이 가득한 얼굴로 내게 경고를 날렸더랬다. 그렇지만 무려 사 강전을 핸드폰 화면으로 숨죽여 보자니 영 성이 차지 않았다. 사 강전 타이틀에 걸맞게 소새끼 말새끼히며 맘껏 소리치고 싶은 마음이었다. 호프집에 갈까도 고민했다. 그곳에는 목에 핏줄을 세우는 동지들이 있지 않을까 하여. 그렇지만 자정이 넘어서 밖에 혼자 돌아다니는 게 나 같은 쫄보에게는 험난한 일이었다. 결국 다시 한번 묵언응원을 다짐하며 거실 텔레비전 앞에 앉았던 것이다.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상대는 초반 공격 기세가 강한 요르단이었다. 전반전이 영대영으로 끝났을 때 그래도 다행이다 싶었다. 후반전에 한 골 먹힐 때까지만 해도 제정신이 붙어있었다. 그런데 두 골을 먹힌 후부터는 나는 용가리처럼 불을 뿜기 시작했다. 우리 대표팀 감독 때문이었다.
"야아 아아아아아악! 네가 감독이냐? 웃음이 나와? 아주 실실 쪼개? 후반 끝나가는데 선수 교체 왜 안 하는데? 연장전 두 번 뛰느라 지친 거 안 보여?"
아차 싶었을 땐 이미 늦었다. 동생방에서 불길한 인기척이 들렸다. '쿵! 쿵!' 그녀가 씩씩거리며 거실로 나왔다.
"야아아아아아 네가 언니냐? 내가 조용히 안 할 거면 나가서 보라고 했어 안 했어? 나가!!!"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이번엔 레드카드였다. 클린스만에게 쏟아냈던 험한 말들은 동생의 입을 통해 그대로 나에게 돌아왔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속담이 오랜만에 떠올랐다. 주말 동안 혼자 분리수거, 밥상 차리기, 설거지 등을 참선하듯 해치웠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실수를 저질렀을 땐 조용히 몸을 움직이는 수밖에 없었다.
리더십 없는 감독 때문에 분한 기운이 가라앉는 데는 일주일도 모자랐다. 우리 대표팀에는 국제무대에서 날아다니는 용사들이 여럿 섞여있었다. 라인업으로 치면 어느 때보다 화려했다. 선수들이 국가대표팀 경기라고 몸을 사리는 태도를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시원하게 이긴 경기가 없었다. 뭔가 답답했다.
패인을 분석하는 다양한 유튜브 영상을 섭렵했다. 공통적으로 클린스만 감독에게 아무 ‘전술이 없다’고 했다. 그렇지. 전술이라는 게 있는 감독이었다면 팔짱 끼고 앉아서 조기축구 구경하는 편한 모습일 수 있었을까? 경기 후 인터뷰에서도 감독은 혼자 태평했고 실실거렸다. 어우 열받아! 주장 손흥민이나 다른 선수들이 죄인처럼 미안해하는 모습과 대비돼서 클린스만이 더 얄미웠다. 누군가가 꼴 보기 싫어서 잠이 안 온 일이 오랜만이었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자꾸 축구 얘기를 꺼내고 감독을 욕했다. 그런데 감독 욕을 하고 다니면서 어쩐지 개운하지가 않았다.
리더로서 전술이 없다 전술이 없다... 나도 우리 반 리더인데… 나는 전술이란 게 있나?
“우리 반 어린이날에 뭐 할까? 너 네하고 싶은 거 뭐 있어? 내가 최대한 지원해 줄게. 회의해 보자.”
“통일에 대한 선생님 의견이 궁금하다고? 글쎄~ 정해진 답은 없는 것 같아. 찬반 근거 알아보고 토론하면서 각자 생각해 볼까?”
“수학을 일교시에 해버리는 게 나아? 아니면 오자마자 수학공부 하는 게 더 힘든가? 참고해서 시간표 짜볼게. “
클린스만 덕분에 교육대학교에서 배웠던 교사의 리더십 유형이 떠올랐다. 정확한 용어는 기억이 안 나지만 통제자형, 방관형, 이것저것 알려주고 결정은 네가 해라형 등이 있었다. 우리 반 리더로서 나는 마지막 유형과 방임형 사이 어딘가를 헤매고 있는 것 같다. 짝 바꾸기, 학급행사, 학급규칙 등 학급 운영의 과정에서 아이들에게 최대한 결정권을 주려고 한다. ‘너희가 준비해 봐, 제안해 봐.’ 이런 태도일 때가 많다. 고학년 지도를 주로 했고 아이들의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지켜보고 지원해 주는 게 즐거웠기 때문이다. ‘나만 믿고 따라와!’하는 태도는 어쩐지 부담스러웠다.
육 학년 창업 동아리를 운영할 때 한 모둠에서 귀신의 집 사업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학교에서 귀신의 집이라니 창문 빛을 어떻게 다 막으려고? 안전 문제는 안 생기려나?’여러 걱정이 들었다. 그래도 신이 나서 해보겠다고 하니 비는 교실을 내어주고 필요한 준비물을 구해줬다. 아이들은 분리수거장에서 가져온 박스로 창문을 막고 빈틈에는 신문지를 여러 겹 잘라 붙였다. 방과 후에도 학교에 남아 집요하게 작업하더니 그럴싸한 귀신의 집을 만들어냈다. 결국 창업 페스티벌에서 가장 많은 수익금을 모은 인기팀이 되었다. 지도 교사로서 칭찬도 받았다. 마치 내가 포용적이고 개방적인 태도를 보여서 아이들 재능을 살려준 것 같은 성취감을 맛봤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내가 도운 부분이 얼마나 있었을까 싶다. 운 좋게 근사한 아이들을 만나서 맛본 작은 성공이었던 것 아닐까? 하고 싶은 거 맘껏 해보라는 태도가 교사의 나태함을 키우는 쪽으로 기운 건 아닐까? 나도 클린스만처럼 벤치에 앉아 팔짱 끼고 지켜보기만 한 건 아닐까? 그런 리더가 전문성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친구여. 아무래도 내가 이 구역의 클린스만일지도 몰라. 수학시간 말고는 애들한테 뭐가 답이라고 딱 정해주지도 않고. 뚜렷한 철학이나 방향이 있어서 카리스마 있게 이끌고 나가는 것도 아니고. 클린스만 욕먹는 게 남 일 같지가 않다.”
“에이~ 축구랑 교육이랑 같냐? 네가 월드컵 우승시켜야 되는 것도 아니고. 애들 의견 들어주려고 노력하는 거잖아.”
친구 말을 듣고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성과를 내야 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래도 찔린 이유가 있지 않을까. 큰 사고 없이 한 해를 보내면 다행이지 싶다가도 내 학급의 운영 철학이나 방향이 좀 더 견고했으면 하는 바람을 끼고 살기 때문일 거다. 교사로서 나만의 분명한 색깔이 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조바심이 항상 마음 한편에 남아 있다.
경제교육, AI교육, 그림책교육 등 뚜렷한 테마를 가지고 반을 이끌어나가는 동료나 선배 선생님들을 보면 부럽다. 손에 잡히는 뚜렷한 방향이 있는 것도, 그걸 향해 꾸준히 노력하는 모습도 멋지다. 나도 방학마다 음악교육, 연극교육, 토론교육 연수를 전전히며 다양한 분야를 살피고 맛보긴 했는데 꾸준히 이어나가고 있는 게 없다. 나만의 전술이 없다. 아직 나한테 어울리는 옷을 못 찾은 것뿐일까?
교직 3년 차. 어떤 교육 분야를 파고들고 싶은지, 배운 걸 어떻게 교실에 적용해야 하는지 아직 한참 헤매고 있다. 노를 이리저리 저어보아도 태평양 한가운데 떠 있는 것 같은 막막함은 매한가지다. 교사로서 내가, 우리 반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노력을 안 한 건 아니지만 어쨌든 결과가 그렇다. 그냥 별 사고 없이 한 해 무사히 지나가면 된다는 마음으로 지내도 되는걸까. 이런 내가 클린스만을 신나게 욕할 수 있나.
역시 뒷담화는 좋을 게 없다. 골대 맞고 튀어나오는 공처럼 내게 다시 돌아와 타격감을 준다. 미처 피하지 못한 종아리가 아직 얼얼하다. 어쩌면 피하지 않는 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