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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람티 Feb 24. 2024

내가 클린스만이라니


이게 다 클린스만 감독 때문이다.


호주와의 아시안컵 8강전을 응원하며 나는 동생에게 이미 옐로 카드를 받았다. 손흥민이 프리킥 기회를 환상적인 골로 연결시켰을 때 내 이성도 환상의 나라로 떠나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으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대바아아아아아아악!!"


나의 괴성은 새벽 출근을 해야 하는 동생의 귓구멍을 강타했고 그녀는 다시 잠에 들지 못했다. 동생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소리를 못 지르는 게 답답하기도 해서 4강전은 호프집에 가서 볼까도 고민했었다. 그런데 12시 넘어서 밖에 혼자 돌아다니는 게 나 같은 쫄보에게는 귀찮고도 험난한 일이었다. 또, 방에서 핸드폰 화면으로 보려니 영 성이 차지 않았다. 결국 나는 다시 한번 묵언응원을 다짐하며 4강전이 열리는 날 본가의 거실 텔레비전 앞에 앉았다.


상대는 초반 공격 기세가 강한 요르단이었다. 전반전이 0:0으로 끝났을 때 그래도 다행이다 싶었다. 후반전에 한 골 먹힐 때까지만 해도 제정신이 붙어있었다. 그런데 두 골을 먹힌 이후부터는 나는 용가리처럼 불을 뿜기 시작했다. 클린스만 감독 때문이었다.


"야 네가 감독이냐? 웃음이 나와? 아주 실실 쪼개? 후반 끝나가는데 선수 교체 왜 안 하는데? 애들 연장전 두 번 뛰느라 지친 거 안 보여? 장난하나 이런 xxx야!!"


아차 싶었을 땐 이미 늦었다. 동생방에서 불길한 인기척이 들렸다. '쿵! 쿵!'그녀가 씩씩거리며 거실로 나왔다.


"야 네가 언니냐? 내가 조용히 안 할 거면 나가서 보라고 했어 안 했어? 내일 너 출근 안 하면 다야? 나가!!!"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이번엔 레드카드였다. 내가 클린스만에게 쏟아냈던 험한 말들은 동생의 입을 통해 그대로 나에게 돌아왔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속담이 오랜만에 떠올랐다. 4강전 이후로 삼일 정도는 혼자 본가의 분리수거, 밥상 차리기, 설거지 등을 참선하듯 해치웠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실수를 저질렀을 땐 조용히 몸을 움직여야 한다.



4강전이 끝나고 분한 기운이 가라앉는 데는 며칠이 걸렸다. 우리 대표팀에는 국제무대에서 날아다니는 용사들이 여럿 섞여있었다. 라인업으로 치면 어느 때보다 화려했다. 선수들이 국가대표님 경기라고 몸 사리는 태도를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시원하게 이긴 경기가 없었다. 뭔가 답답했다.


패인을 분석하는 다양한 유튜브 영상을 섭렵했다. 공통적으로 클린스만 감독에게 아무 전술이 없다고 했다. 그렇지 그렇지. 전술이라는 게 있는 감독이었다면 벤치에서 팔짱 끼고 앉아서 동네 조기축구 구경하듯 편해 보일 수 있었을까? 경기 후 인터뷰에서도 감독은 혼자 태평했고 실실거렸다. 어우 열받아! 주장 손흥민이나 다른 선수들이 죄인처럼 미안해하는 모습과 대비돼서 클린스만이 더 얄미웠다. 누군가가 꼴 보기 싫어서 잠이 안 온 일이 오랜만이었다.



그런데 클린스만에 대한 비난의 이유들을 살펴볼수록 점점 개운하지가 않았다.


리더로서 전술이 없다 전술이 없다... 이거... 나 아닌가?


한 반을 이끌어가는 리더가 선생님이라면 나는 전술이라는 게 있나?


“어린이날에 뭐 할까? 너네하고 싶은 거 뭐 있어? 내가 최대한 지원해 줄게. 회의해 봐.”


“통일에 대한 내 의견은 어떻냐고? 글쎄~ 답은 너희가 스스로 만들어봐야 할 것 같은데. 우리 찬반 근거 찾아보고 토론해 보자!”


“졸업 기념으로 우리 반 뭐 할까? 추억 정리도 하고 같이 재밌게 놀 수 있는 거 뭐 없을까?”


클린스만 덕분에(?) 교육대학교에서 배웠던 교사의 리더십 유형이 떠올랐다. 정확한 용어는 모르겠으나 정답제시형, 방관형, 이것저것 알려주고 결정은 네가 해라형 등이 있었다. 내 스타일은 마지막 유형과 방임형 사이 어딘가를 헤매고 있는 것 같다. 포용적이고 개방적인 태도를 취하겠다며 오히려 무책임한 건 아닌지 고민이 된다. 클린스만처럼 팔짱 끼고 지켜보기만 한 건 아니었을까? 그런 리더가 전문성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아무래도 내가 이 구역의 클린스만인 것 같아. 수학 말고는 애들한테 이게 답이라고 딱 정해주지도 않고. 카리스마 있게 끌고 나가는 것도 잘 없고. 클린스만 욕먹는 게 남 일 같지가 않다.”


“에이~ 축구랑 교육이랑 같냐? 네가 월드컵 우승시켜야 되는 것도 아니고. 애들 의견 들어주려고 노력하는 거잖아.”



친구 말을 듣고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성과를 내야 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래도 뜬금없이 스포츠뉴스를 보다가 찔린 이유가 있지 않을까. 큰 사고 없이 한 해를 보내면 다행이지 싶다가도 학급 운영 철학이나 방향이 좀 더 견고했으면 하는 바람을 끼고 살기 때문일 거다. 나만의 색깔이 있어야 하지 않나 싶은 결핍이 항상 있는 것 같다.



경제교육, AI교육, 그림책교육 등 뚜렷한 테마를 가지고 반을 이끌어나가는 동료들을 보면 부럽고 대단해 보인다. 손에 잡히는 방향이 있는 것이 부럽고 그걸 향해 꾸준히 노력하는 모습이 멋지다. 그래서 방학 때마다 내게 맞는 방향을 찾아보려고 노오력했던 것 같다. 노래 부르기, 연극교육, 토론교육 등 다양한 분야를 찔러보듯 살피고 맛보긴 했는데 꾸준히 실천하고 있는 게 없다. 아직 나한테 어울리는 짝을 못 만난 걸까?


교직 3년 차. 어떤 교육 분야를 파고들고 싶은지, 배운 걸 어떻게 교실에 적용해야 하는지 나는 아직 한참 헤매고 있다. 노를 이리저리 저어보아도 태평양 한가운데 떠 있는 막막함은 매한가지다. 노력을 안 한 건 아니지만 어쨌든 결과가 그렇다. 흠 내가 클린스만을 신나게 욕해도 되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그 사람처럼 뻔뻔하지 못하다. 결핍을 느끼고 자주 고민한다. 축구 경기가 끝나고 감독이 인터뷰를 하는 것처럼 내가 졸업식이 끝나고 인터뷰를 했다면 '아 제가 아직 짬이 많이 부족합니다. 한다고 해봤는데 쉽지 않네요. 그래도 믿고 따라와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의기소침하게 답했겠지.


  뻔뻔하지 못한 게 나한테 독이 되는지 도움이 되는지도 모르겠다. ‘노력이 중요한 게 아니야. 그래서 뭐가 남았는데!’ 하고 나를 닦달한다. 아이들을 다그치는 건 그렇게 피하려고 하면서 스스로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다. 이건 착한 게 아니라 못난 것 같다. 숨 쉴 공간을 만들어줘야 바람도 들고 웃음소리도 들지. 그럼 아이들한테도 자연스럽게 콩고물이 떨어지지 않을까?


'얘들아, 다치지 말고 너네끼리 알아서 잘해봐!' 하고 벤치에 다리 꼬고 앉아있으면 어떠려나? 커피 한 잔 하면서 숨 좀 돌리며 지내면 큰 일 나려나?


클린스만의 4강전 패배 직후 인터뷰처럼 '아니, 이 정도면 괜찮지 않아? 헤이 맨 왜들 그렇게 빡빡하게 굴어?’라며 넘어가 보면 어떠려나. ‘다 비켜~ 건들지 마~ 내가 이 구역의 클린스만이다!!!’ 좀 막 나가보면 안 되려나.



흠 그럼 나는 ‘이런 클린스만 같은 선생!’이라는 말에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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