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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람티 Feb 17. 2024

알아도 쓸모없는 다정한 질문

영준이와 빼빼로


“무슨 과자 좋아해요?”


“붕어빵은 팥이 좋아요? 슈크림이 좋아요?”


  이런 질문은 퍽 다정하다. 과자회사 연구원이나 붕어빵 장수가 아니라면 묻는 이에게 생기는 이득이 없지 않나. 그저 그 사람이 궁금해서 던지는 이런 단내 나는 질문은 나는 얼마나 주고받으며 살고 있을까.

​​


“선생님은 무슨 빼빼로 좋아해요?”


“나? 빼빼로? 음... 오리지널 빼빼로? 아니야 누드가 제일 좋아! 넌 뭐 좋아하는데?”


“저는 아몬드요. 고소해요”



 시작은 빼빼로였다. 갑자기 훅 질문에 나는 촉촉한 초코칩만큼이나 촉촉해진 마음을 부채질해야 했다.

  질문의 주인공은 급식실에서 내 옆자리에 앉아있던 영준이었다.


5일 중 3일은 지각하는 아이,


수학 시간만 되면 화장실에 몇 번씩 들락날락하는 아이,


일부러 다른 사람이랑 눈을 안 마주치려고 덥수룩하게 앞머리를 기르는 건가 싶은 아이,


3월 첫 미술 시간에 학교를 폭파하는 그림을 그렸던 아이,


쉬는 시간에 내 주변을 자꾸 맴돌기만 하는 아이.



  그런 영준이가 내게 먼저 과자 취향을 물어본 것이니 호들갑을 떨만하지 않을까.​


  영준이는 6학년인데 구구단도 잘 못 외웠다. 따로 붙잡아서 가르쳐도 보고 몰래 초콜릿을 쥐어줘도 소용없었다. 집에 가서 게임만 한다고 했다. 아버지가 자주 술을 먹고 들어오시면 부모님이 싸우는 소리가 듣기 싫어서 헤드셋을 항상 끼고 있다는 거였다. 나랑 이야기할 때도 묻는 말에만 겨우 답하는 이 아이는 벌써 삶을 버티고 있는가 싶어서 얼마 지나지 않아 공부 잔소리는 그만두게 됐다.(구구단을 외게 하려는 건 정말 내 집착이었을까)​


  대신 요새 무슨 게임을, 누구랑 하는지, 어떤 노래를 듣는지 이 것 저 것 묻기 시작했다. 영준이의 대답은 항상 시원찮았다. 대화가 뚝뚝 끊겼다. 한편으로는 특별한 관심이 오히려 아이에게 독이 될까 봐 조심스럽기도 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내가 참 무력하게 느껴졌다.​


  그런 영준이가 처음 던진 지극히 사적인 질문이 어찌나 반가웠는지… 빼빼로 질문으로 나를 촉촉하게 만들고 나서는 영준이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급식을 먹었다. 주책맞은 내 눈시울이 앞에 놓인 식판에 담긴 콩나물국만큼이나 따땃해졌다. 나는 괜히 국물이  맛있다며 숟가락 가득 퍼서 애꿎은 목구멍에 뿌려댔다.

  내가 몇 살인지, 결혼은 했는지, 남자친구는 있는지 묻는 아이들은 많다. 나는 백 살이고, 모태솔로라고 별생각 없이 대답한다. 그런데 빼빼로 질문으로부터 쏟아지기 시작한 영준이의 질문은 어딘가 결이 달랐다. 내가 주말에는 뭘 하고 쉬는지, 자전거를 탈 줄 아는지, 마이클 잭슨 노래를 얼마나 아는지(영준이는 미국에서 잠시 살다왔다) 등의 질문이었다. 그러니까 꼭 소개팅에서 나누는 대화처럼 어딘가 설레는 구석이 있었다. 영준이가 순수하게 다른 사람의 취향과 마음을 궁금해할 줄 아는 녀석인 것 같아서 한편으로는 안심이 됐다.


  질문에 가득 묻은 단내가 이 아이를 빛나게 하고 좋은 사람들을 주변에 머무르게 할 테지. 살아가는 동안에 이 아이에게 큰 힘이 되어주겠구나 싶었다. 지금 내가 아무 조건 없이 그 아이의 무한한 안녕을 바라게 된 것처럼.


  영준이에게 배운 ‘알아도 쓸모없는 다정한 질문’들은 내년에 새로 만날 아이들에게 써먹을 참이다. 무슨 과목을 좋아하는지보다 무슨 과자를 좋아하는지 먼저 물어봐야지. 꿈이 뭔가 하는 거창한 질문보단 라면에 계란을 푸는 걸 좋아하는지, 꼬들면을 좋아하는지 물어봐야지. 그럼 그 아이들도 내가 영준이를 사랑하는 만큼 나를 사랑하게 될까? 이런 얄팍한 속셈을 숨기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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