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람티 Feb 17. 2024

알아도 쓸모없는 다정한 질문

영준이와 빼빼로


"요즘 자주 먹는 과자가 뭐예요?"

“붕어빵은 팥이 좋아요? 슈크림이 좋아요?”


  이런 질문들은 퍽 다정하다. 편의점 주인이나 붕어빵 장수가 아니라면 묻는 이에게 생기는 이득이 없지 않은가. 그저 그 사람의 취향이 궁금해서 던지는 단내 나는 질문을, 나는 얼마나 주고받으며 살고 있을까.



“선생님은 무슨 빼빼로 좋아해요?”

“음... 오리지널맛? 아니야. 난 누드빼빼로가 제일 좋아! 넌 뭐 좋아하는데?”

“저는 아몬드 맛이요. 고소해서요.”


 시작은 빼빼로였다. 훅 들어온 질문에 나는 촉촉한 초코칩보다 촉촉해진 마음을 부채질해야 했다. 질문의 주인공은 급식실 옆자리에 앉아있던 영준이었다. 월화수목금 오일 중 삼일은 지각하는 아이, 수학 시간만 되면 화장실에 들락날락하는 아이, 다른 사람이랑 눈을 안 마주치려고 앞머리를 기르는 건가 싶은 아이, 새 학기 미술 시간에 학교를 폭파하는 그림을 그린 아이, 그리고 내게 먼저 말을 걸어온 적은 없지만 자꾸 내 곁을 맴도는 듯한 아이. 그런 영준이가 먼저 과자 취향을 물어본 것이니 이런 호들갑을 떨만하지 않을까.


 영준이는 육 학년인데 구구단도 잘 못 외웠다. 그런 아이가 분수의 곱셈을 배운다고 앉아있으면 바보가 되는 기분이 아닐까 싶었다. 육 학년은 일주일에 네 시간이나 수학 공부를 해야 하는데 말이다. 방과 후에 남겨서 아이들 사이에 가장 인기 많은 간식인 하리보 젤리를 쥐어주며 어르고 달래며 가르쳐보아도 잘 안 됐다. 숙제를 아주 조금 내주어도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이 들지 않아 힘들어했다. 고작 한 두쪽을 왜 안 풀어올까 싶어 처음에는 따지듯 물었더니 집에 있는 시간을 대부분 헤드폰을 끼고 방에서 게임하는데 보낸다고 했다. 공사장에서 일하시는 아버지가 매일 술을 먹고 들어오시고, 일이 없을 땐 집에서 잠만 주무신다고 했다. 매일 부모님이 싸우는 소리가 듣기 싫어서 생긴 습관이라는 것이었다. 가장 편하게 쉬어야 하는 집에서 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영준이의 뒷모습을 상상해 봤다. 나랑 이야기할 때도 묻는 말에만 겨우 대답하는 이 아이는 벌써 삶을 버티고 있는 걸까. 점점 공부 잔소리는 잘 안 하게 됐다. 학교에서라도 헤드셋은 빼고 웃고 떠들었으면 했다. 그게 먼저일 것 같았다.


  대신 영준이에게 요새 무슨 게임을 누구랑 하는지, 어떤 노래를 듣는지 묻기 시작했다. 처음엔 아이의 대답이 시원찮았다. "롤 해요." "마이클 잭슨 노래요." 대화가 뚝뚝 끊겼다. 한편으로는 특별한 관심이 오히려 아이에게 독이 될까 봐 조심스럽기도 했다. 스물다섯 명 모두와 이런 질문을 주고받고 기억할 수는 없는 거였다. 영준이가 특별 관리 대상이라는 듯한 생각을 다른 아이들이 하지 않았으면 했다. 생각이 많아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내가 참 무력하게 느껴졌다. 그런 영준이가 처음 던진 지극히 사적인 질문이 어찌나 반가웠는지... 빼빼로 취향을 묻는 질문으로 내 마음에 돌을 던진 영준이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숟가락을 들었다. 주책맞은 내 눈시울이 식판에 담긴 콩나물국만큼이나 따땃해졌다는 건 새까맣게 몰랐을 것이다. 나는 괜히 국물 맛이 시원하다며 숟가락 가득 국물을 떠서 애꿎은 목구멍에 뿌려댔다.


  내가 몇 살인지, 결혼은 했는지, 학교 다닐 때 반에서 몇 등을 했는지 묻는 아이들은 많다. 나는 백 살이고, 모태솔로고, 공부 잘해야 선생님 될 수 있다고 별생각 없이 대답한다. 그런데 빼빼로 질문으로부터 쏟아지기 시작한 영준이의 질문은 어딘가 결이 달랐다. 하루에 한 번 정도는 쉬는 시간에 내게 찾아와 주말에는 뭘 하고 쉬는지, 자전거를 탈 줄 아는지, 어떤 영화를 좋아하는지 등의 질문이었다. 알아도 쓸모없는 질문들. 그렇지만 나와 가까워지고 싶어서 던지는 다정한 질문들. 이건 마치 소개팅에서 나누는 대화처럼 어딘가 설레는 구석이 있었다. 어떤 질문보다 성심성의껏 답해주고 싶은 마음은 넘쳐나는데 쉽지 않았다. 이 년 차 선생님은 쉬는 시간에도 다음 시간 수업 준비물 확인하랴, 싸운 애들 화해시키랴, 교무실에서 걸려오는 전화받으랴 항상 과부하가 걸려있었다(지금도 크게 달라진 것 같진 않다). 스스로 내 답변이 흡족하하지 않아서 속상하면서도 영준이가 순수하게 다른 사람의 취향과 마음을 궁금해할 줄 아는 녀석인 것 같아서 마음이 놓였다. 질문에 가득 묻은 단내가 이 아이를 빛나게 하고 좋은 사람들을 주변에 머무르게 할 테지. 살아가는 동안에 큰 힘이 되어주겠구나 싶었다. 내가 아무 조건 없이 영준이의 무한한 안녕을 바라게 된 것처럼.


  영준이가 졸업한 지 두 해가 지났다. 졸업 후에도 일 년에 서너 번씩 내 교실을 찾는다. 아니, 찾아와 준다. 어떻게 알았는지 당충전이 필요한 날에 등장해서 흠뻑 시럽을 뿌려준다. 얼마 전 내 생일에는 모카케이크 한 판 들고 찾아와 주었다. 생일 축하를 해주러 왔단다. 반 아이들끼리 작은 몸다툼이 있어서 생일이고 뭐고 집에 가서 얼른 드러눕고 싶은 날이었다. 칠 월 칠일. 한 번 들으면 기억에 쏙 박히는 날에 태어나긴 했지만 선생님 생일을 두 해가 지나도록 기억해 주다니! 나는 또 한 번 뜨뜻해진 눈시울을 겨우 식히며 파란 종이 상자를 받아 들었다. '고맙다'는 말로 다 표현이 안 되어 답답했다. 노래도 부르고 촛불도 끄고 케이크를 잘라 나누어먹었다. 모카 케이크가 원래 이렇게 기분 좋은 단맛이 났던가. 파리바케트 케이크가 맛없다는 건 오만과 편견이었나. "선생님, 속 썩이는 애들 없어요?", "사 학년이 좋아요 육 학년이 좋아요?", "요즘도 주말에 자전거 타세요?" 영준이의 질문은 여전했다. 여전해서 다행이었다. 당 스파이크가 건강에 그렇게 해롭다던데 모카케이크에 영준이까지 더해져 당 수치가 초과되었으니 괘씸한 제자이려나.


 영준이에게 배운 ‘알아도 쓸모없는 다정한 질문’들을 지금 함께하는 아이들에게도 써먹어보자고 다시 한번 다짐했다. 무슨 학원을 다니는지 보다 무슨 과자를 좋아하는지 먼저 물어봐야지. 꿈이 뭔가 하는 거창한 질문보단 라면에 계란을 푸는 걸 좋아하는지 그냥 먹는 걸 좋아하는지 물어봐야지. 그럼 그 아이들도 내가 영준이를 사랑하는 만큼 나를 사랑하게 될까? 이런 얄팍한 속셈을 숨기면서 말이다.


이전 01화 샘이 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