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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람티 Feb 21. 2024

이래서 뱃살이 찌나 보다



"엥? 샘 우시는데?"

"샘! 왜 울어요?"

"야, 분위기 파악 좀 해. 쉿!"


 선생님이 어깨를 들썩이며 우는 소리를 내는 걸 들어본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어깨를 실컷 들썩이며 내가 세상에서 가장 서럽다고 온몸으로 표현하는 그런 울음 말이다. 중학교 일 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종례 시간에 눈물을 보인 적이 있었다. 주의 집중을 안 하는 학생들에게 화를 내다가 감정이 복받치셨던 날이었다. 성적으로 학생들을 달리 대하고 기분에 따라 욱하는 모습을 많이 보였었다. 선생님이 우는 모습을 보고 미안하거나 안쓰러운 마음보단 '자기 혼자 화내다가 왜 저러지?' 하는 생각이었다. 빨리 집에나 보내줬으면 싶었던 것 같다. (이랬던 삐딱한 학생이 어쩌다 선생님이 되었을까...) 그 후에는 선생님이 우는 모습을 본 기억이 없다. 그래서인지 내게 선생님의 눈물은 꼴 보기 싫고 부담스러운 기억으로 남아있었다.


 선생님이 되고 나서 아이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어린 시절의 나처럼 삐딱한 학생이 있다면 나의 우는 모습이 꼴 보기 싫을 테니까. 무엇보다도 내 감정의 파도가 아이들에게 전달되지 않았으면 했다. 한 사람의 감정이 반 전체 분위기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조절할 줄 아는 것이 근사한 모습이라고 믿었다. 워낙 눈물이 많아서 유튜브 감동 영상이나 드라마를 보면서 질질 짜고 아침에 붕어 눈이 될 때가 많았다. 그렇지만 삼 년 차가 되었어도 아직 교실에서 긴장 상태로 지내는 것이 다짐을 지키는데 도움이 됐다. 


 입도 하나고, 눈도 두 개뿐인데 스물네 명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동시에 살피려고 했다. 아이들의 표정 변화를 금방 눈치채는 성가신 능력을 가진 나였다. 다 살필 있을 줄 알았고 그래야 한다고 믿었다. 쉬는 시간은 아이들의 것이었다. 다음 수업을 준비해야 했고, 쉬는 시간이 되어서야 또렷해지는 친구 관계를 관찰하느라 내 맘은 쉬지 못했다. 눈물이 비집고 새어 나올 틈이 없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집에 가는 길엔 '점심으로 뭐 먹었더라?' 떠올리는데 한참이 걸렸다. 집에 도착하고 세수를 하고 얼굴에 로션을 바르며 거울을 바라볼 때가 되어서야 처음 나를 만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금요일 밤이 되어서야 혼자 집에서 소리 내어 울곤 했다. 토요일 아침엔 얼굴이 두꺼비처럼 부어도 괜찮으니 금요일 밤이 제격이었다. 지내고 있는 건물에 방이 다닥다닥 붙어있어서 앞뒤옆집 사람들은 꽤 사연 있는 이웃이 살고 있는 줄 알았을 것이다. 


  교실에서도 눈물댐이 졸졸 샐 때가 있긴 했다. 처음 졸업시키는 육 학년 아이들과 마지막 포옹을 할 때나 어린이날에 학부모님들이 아이들에게 써주신 편지를 읽을 때 그랬다. 눈두덩이가 부풀고 눈알은 벌게서 오징어 눈깔이 되었다. 그렇지만 단언컨대 교실에서의 나의 울음은 소리 없는 '또르르'눈물이었지 요란스러운 '꺼윽꺼윽'의 눈물은 아니었단 말이다. 댐이 폭발하기 전에 방류를 적절히 하며 버틴 시간들이었다. 그렇게 사수했던 눈물댐이 오늘 아이들 앞에서 무너지고 말았다.


  우리 반은 매주 금요일에 동그랗게 모여 앉아 한 주를 돌아보는 학급 대화 시간을 가진다. 이번 주에는 학부모를 초청해서 연극과 사물놀이 공연을 하는 큰 행사가 있었다. 두 달 동안 공연을 준비하면서 우여곡절이 많았다. 아이들끼리 자잘한 다툼도 생기고 준비도 생각처럼 흘러가지 않아 잔소리 폭격기가 됐었다. 다행히 우리 반 공연 반응이 좋아서 학급 대화도 평화롭게 마무리되는 듯했다. 그때였다.


"저 선생님이랑 애들한테 하고 싶은 말 따로 편지로 썼는데 읽어도 돼요?"

"갑자기 무슨 편지?"

"이번에 공연 준비하면서 선생님이랑 애들한테 고마운 게 많아서 써왔어요."

"뭐야~ 좋지~ 당연하지~!"


 학급 대화를 마무리되어 갈 즈음 연아가 수줍게 손을 들고 편지 써온 걸 읽고 싶다고 했다. 연아는 작고 매운 아이였다. 체구도 작고 얼굴도 뽀송뽀송해서 친구들이 동생처럼 대했지만 하고 싶은 일에 열정적이고 하고 싶은 말은 시원하게 전달하는 화끈함이 있었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나도, 다른 아이들도 술렁였다. 국어 시간에 편지 써보라고 하면 '몇 줄 써야 돼요?'를 시전 하며 투덜거리는 열세 살 아닌가. 자발적인 편지 낭독은 흔하지 않은 적극적인 행위였다. 연아는 몇 번이나 침을 삼키더니 먼저 내게 쓴 편지를 읽겠다고 했다.


 "선생님 저 연아에요." 연아가 입을 떼기 시작할 때부터 나는 앞을 제대로 쳐다보지 보지 못했다. 편지에 무슨 내용이 적혀 있는지, 얼마나 감동적인 문장이었는지는 상관없었던 것 같다. 이미 온 목청으로 울 준비가 되어있었다. 아이들이 선생님 고생하는 건 알아주지 않는 게 당연한 거라고 스스로를 달래 가며 지난 두 달을 버텼다. 주말을 바쳐 연극 더빙 파일을 만들고, 아이들에게 언성을 높인 날이면 반성문 같은 일기를 쓰며 스스로를 나무랐다. '내 컨디션 때문에 아이들한테 불똥이 튀면 안 돼.', '평정심을 유지해야 해.' 이런 초인적인 주문을 내게 걸고 있었나 보다. 괜찮을 리 없었다. 나는 소심한 데다가 칭찬도, 인정도 받고 싶은 아주 평범한 사람인데 선생님이 되었다고 해서 간장 종지 같은 내 그릇이 바로 세숫대야처럼 넓어질 수는 없는 거였다.


 편지 낭독 시작과 동시에 애들 앞에서 보이고 싶지 않았던 '꺼윽꺼윽'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심신이 지쳤던 내게 연아의 편지는 눈물 댐에 던져진 다이너마이트 같았다. 무슨 말을 하려다 또 울음이 나와서 숨을 크게 들이쉬기를 몇 번 반복했다. 아이들은 그 모습을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내가 그랬던 것처럼 저 선생님 왜 저러나 싶었을까? 안쓰러웠을까? 당황했을까? 미안했을까? 잠시 그런 생각이 스쳤지만 그렇다고 눈물이 멈추지는 않았다. 그런데 어쩐지 나는 눈물댐을 터뜨리고 더 용감해져서 이런 말도 해버렸다.


"나 발표회 준비하면서 많이 힘들었나 봐. 너희한테 고생했다는 말이 듣고 싶었던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이런 약한 마음을 그대로 꺼낸 적이 없었나 보다. 아이들은 어쩔 줄 몰라 수군수군대기도 하고 자기도 편지를 쓰려고 했었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다행히 분위기가 '저 선생 왜 저래'의 느낌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뭐 그랬다고 해도 할 수 없다. 괜히 내 주변을 맴돌며 내 상태를 살피는 몇 명의 아이들 말고는 평소처럼 자리 주변 청소를 하고 집에 갈 준비를 했다. 댐은 터졌고 거센 물살이 휘몰아치는 것은 잠깐이었다. '이래도 되는구나.', '별 일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앞으로 교실에서 좀 더 내려놓고 솔직해질 수 있을 것 같은 용감한 마음이 솟았다. 나를 둘러싸고 있던 답답한 껍질을 하나 벗어버렸는데 오히려 알맹이는 더 크고 단단해진 듯했다. 애벌레가 허물을 벗고 진화하는 느낌이 이런 걸까?


 포켓몬 만화를 보면 뜬금없는 때 다음 단계로 진화하기도 하더라. 그렇게도 피하려고 노력했던 울음보를 터뜨리고 나서야 진화한 애벌레 선생님이 되었다. 한 단계 허물을 벗어봤자 아직 나는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애벌레이지만, 새로운 아이들을 만나도 올해보다는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고 덜 긴장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나중엔 더 큰 애벌레도 되고 번데기도 되어서 나비가 될 날도 오겠지. 가볍고 우아하게 날갯짓하며 아이들이라는 꽃밭 사이를 누빌 수 있겠지. 


  애벌레가 허물을 벗으면 몸집이 점점 커지고 무게도 많이 나간다고 들었다. 그래서 요즘 부쩍 뱃살이 찌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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