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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람티 Feb 21. 2024

이래서 뱃살이 찌나보다

허물벗기



학창 시절에 선생님이 끅끅거리고 우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중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종례 시간에 눈물을 보인 적이 있었다. 왜 이렇게 말을 안 듣냐며 화를 내다가 감정에 복받쳐서 우셨던 것 같다. 성적으로 학생들을 차별하고 신경질적이었는데 그래놓고 말을 잘 듣길 바랐던 걸까. 왜 갑자기 울고 난리지? 하는 생각이었다. 빨리 집에나 보내줬으면 싶었던 것 같다. (이랬던 삐딱한 학생이 어쩌다 선생님이 되었을까...) 그 후에는 선생님이 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래서인지 내게 선생님이 운다는 건 뭔가 꼴 보기 싫은 기억으로 남아있었다.


선생님이 되고 나서 애들 앞에서 안 울려고 노력(은)했다. 이제 3년 차이지만 아직 학교에서 대부분 긴장 상태인 것이 그 다짐을 지키는데 도움이 됐다. 나는 1명인데 24명 아이들을 살피고 관리해야 하는 일은 꽤 무거운 감정노동이었다. 눈물이 비집고 새어 나올 틈이 잘 없었다. 그래도 가끔 막아둔 눈물댐이 줄줄 샐 때가 있었다. 예를 들면 어린이날 학부모님께 부탁해서 받은 깜짝 편지를 아이들에게 읽어줄 때, 졸업식에서 마지막 포옹을 할 때였다. 눈두덩이가 탱탱해지고 눈알은 벌게서 그야말로 생선눈깔이 되곤 했다. 그렇지만 단언컨대 나의 울음은 소리 없는 '또르르'눈물이었지 요란스러운 '끅끅'의 눈물은 아니었... 다!!! 댐이 폭발하기 전에 방류를 적절히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사수했던 눈물댐이 오늘 아이들 앞에서 무너지고 말았다.


우리 반은 매주 금요일에 그 주의 고마운 일, 서운한 일 등을 돌아가며 이야기하는 학급 대화 시간을 가진다. 이번 주에는 학부모를 초청해서 2달 동안 준비한 사물놀이, 연극 공연을 하는 큰 행사가 있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학급 대화 시간에 대부분 발표회에 대해 이야기했다. 공연을 준비하면서 팀원끼리 다툰 적이 많았다. 나도 일은 많은데 애들이(당연히) 생각처럼 따라와 주지 않아 잔소리 폭격기가 됐었다. 다행히 공연이 성공적으로 끝나서 아이들은 뿌듯해했고 서로 고마웠다고 하며 평화롭게 마무리되는 듯했다. 그때였다.


"저 선생님이랑 애들한테 하고 싶은 말 편지로 썼는데 읽어도 돼요?"


"엥 편지? 오 좋지~ 당연하지~!"


연아가 수줍게 손을 들고 편지 써온 걸 읽고 싶다고 했다. 처음 있는 상황에 나도 아이들도 술렁였다. 국어 시간에 편지 써보라고 하면 '몇 줄 써야 돼요?'를 시전 하며 투덜거리는 6학년 아닌가. 자발적인 편지 낭독은  상당히 본격적인 행위였다. 연아는 잠시 침을 꿀꺽 삼키더니 먼저 내게 쓴 편지를 읽겠다고 했다.


연아가 편지를 읽기 시작할 때부터 나는 연아를 제대로 쳐다보지 보지 못했다. 거기에 무슨 내용이 적혀 있는지는 크게 상관없었던 것 같다. 나는 이미 울 준비가 되어있었다.


아이들이 선생님 고생하는 건 알아주지 않는 게 당연한 거라고 주문을 걸며 지난 2달을 보냈다. 주말을 바쳐 연극 녹음 더빙 파일을 만들고, 아이들에게 언성을 높인 날이면 반성문 같은 일기를 쓰며 스스로를 나무랐다. 초인간적인 주문을 내게 자꾸 걸고 있었나 보다. 그러니 괜찮을 리 없었다. 나는 소심하고 칭찬도 받고 싶고 인정도 받고 싶은 아주 평범한 사람인데 선생님이 되었다고 해서 간장 종지 같은 내 그릇이 세숫대야가 되었을 리가 있나.


기가 막힌 명문장은 없었지만 편지 낭독과 동시에 나는 애들 앞에서 '끅끅'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발표회를 준비하며 심신이 지쳤던 내게 연아의 편지는 눈물 댐에 던져진 다이너마이트 같았다. 아이들은 엉엉 우는 내 모습을 보고 어땠을까? 내가 그랬던 것처럼 왜 저러나 싶었을까? 안쓰러웠을까? 당황했을까? 미안했을까? 잠시 그런 생각이 스쳤지만 그렇다고 눈물이 멈추지는 않았다. 그런데 어쩐지 나는 눈물댐을 터뜨리고 더 용감해져서 이런 말도 뱉어버렸다.


" 선생님도 연극 준비하면서 많이 힘들었나 봐. 고생했다는 말이 듣고 싶었던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이런 약한 마음을 그대로 드러낸 적이 별로 없었나 보다. 아이들은 어쩔 줄 몰라 수군수군대기도 하고 자기가 편지를 먼저 썼어야 했는데 늦었다며 괜히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다행히 '저 선생 왜 저래'의 느낌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뭐 그랬다고 해도 할 수 없다. 일단 내 마음이 참 시원했다. 앞으로 애들 앞에서 좀 더 내려놓고 덜 긴장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애벌레가 허물을 벗고 진화하는 느낌이 이런 걸까.


포켓몬 만화를 보면 진화는 뜬금없는 때 되기도 하던데 나도 그랬나 보다. 그렇게도 피하고 싶었던 '끅끅'울음을 터뜨리면서 나는 진화한 애벌레 선생님이 되었다. 내년에 새로운 아이들을 만나도 작년보다는 덜 긴장할 수 있을 것 같은 묘한 느낌이 든다. 애벌레는 허물을 벗으면 몸집이 점점 커진다고 들었다. 그래서 요새 뱃살이 찌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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