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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d Aug 10. 2022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30대 이야기

박상영 《믿음에 대하여》를 읽고

평소 유튜브로 현실 괴담을 자주 듣는다. 이러한 콘텐츠는 주로 시청자 사연을 재가공해 만들어지는데, 〈그것이 알고싶다〉에 나올 법한 직·간접 범죄 피해 경험담이 주를 이룬다. 듣다 보면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압축해 보는 듯 서늘해지면서도 자꾸 듣게 된다. 그 이유를 찾지 못하다가 《믿음에 대하여》를 읽으며 실마리를 얻었다. 바로 '일상에서 충분히 겪을 법한 비극에서 오는 몰입감'이다.


작가는 4명의 30대 남자 주인공을 통해 현실을 촘촘하게 직조했다. 4명이 퀴어라는 점을 논외로 하더라도 이들이 접한 현실은 지극히 보편적이다. 조직을 위해 열심히 개성을 죽이던 사회 초년생 시기, 순간의 이끌림으로 시작된 사랑, 그렇게 시작한 관계의 상대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자신과 다른 사람인 것을 알았을 때의 당혹감, 별수 없이 서로에게 상처를 주며 사회의 시선에 관계를 맞추려는 노력…. 그리고 이러한 주인공들의 실패담은 "성격이 운명이다"라는 말 한마디에 본인 탓으로 돌아가 버리기도 한다.


"성격이 운명이다." 같은 만트라는 없지만 나도 많은 실패를 그저 나의 탓으로 '정한' 적이 많았다. 일단 어느 새부턴가 그게 가장 익숙한 방식이었고, 엄습하는 무기력함을 잊고 주어진 일을 해내는 방식이었던 것 같다. 이러한 습성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자책을 습관화하고 무력감을 기른다. 따라서 4명의 주인공이 결국 자신의 의지가 아닌, 마주한 상대와 처지에 따라 부유하듯 살아가는 이유를 나는 이해한다.


내가 생각하는 약자의 기준은 '막막한 현실에 무얼 해야할지 모르거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다. 《믿음에 대하여》를 읽으며 소설이라는 게 원래 약자의 편에서 쓰이도록 생겨먹은 것인지, 아니면 내가 약자여서 그렇게 읽을 수밖에 없는 것인지 분간되지 않았다. 어떤 이유에서든 소설이 가진 힘은 놀랍다. 가르치려 들지 않고 툭 던지듯 보여주는데 여운을 남기며 끝내 설득력을 발휘한다. 그것이 다소 유쾌하지 않은 감정을 포함하고 있을지라도. 나를 비롯한 세상 모든 꼰대가 진정 '소설의 설득법'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작품은 희망을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야기 내내 요즘 날씨처럼 어둡고 습한 기운이 감돈다. 그러나 일, 사회생활, 연애, 결혼이라는 30대의 현실을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보게 해준다. 이 사실 만으로도 누군가는 당연하게 여겼던 가치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다 전혀 본인이 원하는 가치가 아니었음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책을 덮을 때쯤 오기인지 욕심인지 모를 감정이 생겼다. 앞으로 내가 포기하거나 취하게 될 여러 존재가 최대한 나의 의지에 기반했으면 한다는 것. 그렇게 느릿느릿 주인공들이 살지 못한 삶을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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