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시절 부대 복도에는 중대원들의 배정표를 보여주는 게시판이 있었다. 자석이 달린 팻말에 분대별로 배정된 중대원의 정보를 붙여두는 식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불쾌했던 기억이 있다. 팻말에 중대원들의 사진, 소속과 함께 '최종 학력'(학교명 포함)을 기재했던 것. 지뢰 심고, 철조망 치고, 장애물 폭파하는 부대에서 학력이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그렇다고 비교적 높은 학벌의 군집에 속한 중대원에게 작업, 훈련, 진급, 생활면에서 특별하게 주어지는 메리트가 있던 것도 아니었다.
어느덧 전역한 지 10년을 훌쩍 넘긴 요즘, 부쩍 그 시절의 기억이 자주 떠오른다. 전역 후 학부, 동아리, 3개의 회사, 대학원 등 여러 조직에 몸담았지만 요즘처럼 내가 어떤 '개체'로 동작하는지 유심히 살폈던 적은 드물었던 것 같다. 보통은 이런 촉이 세워지는 시점이 이직이나 퇴사 같은 마디가 그어지는 때일 텐데, 나로서는 딱히 그런 케이스도 아니다. 다만 수시로 나의 쓸모를 찾아가는 노력이 있어야 미래에 대비하며 갖는 불안감이 줄어들 것 같았다. 그것이 불확실한 미래를 무언가로 채워야 할 것 같아서 현재의 이력을 무리하게 부풀리고 끌어당겨 발생하는 심리적 '풍선효과'라고 한다면, 그 또한 맞는 말인 듯하다.
다시 그 시절 내가 몸담은 병영을 돌이켜 보건대, 결과적으로 훈련에서 제 역할을 해내며 소위 "에이스"라고 불리는 병사들은 하나같이 '묵묵히 견디며 주어진 일을 하는 태도'를 갖추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이 역량이 학력과 비례할 리 만무했다. 개체를 학벌로 구별하던 당시 중대의 수준은 "얕디얕다"고 밖에 할 수 없겠다.
전체의 격은 소속된 개체를 말하는 태도에 나타난다. 그럼 나는 지금 속한 조직에서 어떻게 말해지고 있을까. 팀에서 클라우드 엔지니어로서 담당한 기능 또는 역할로 언급되고 있는 것을 보면, 그럭저럭 팀은 나를 쓸모 있게 인식하고 대우하는 모양이다. 업무 중심으로 뭉친 팀으로서의 격 또한 제법 갖춘 듯하다. 다만 여기서 한층 격을 높일 방법이 있다. 담당 업무 너머로 그 사람이 가진 강점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시각을 갖는 것이다. 당장 실적이 중요한 팀에서 구성원의 장점까지 파악해달라는 게 얼마나 허무맹랑한 생각인지 안다. 그래서 나부터 주변 팀원들을 대상으로 시도해 보겠다는 취지다. 내가 속한 팀의 격이 나 역시 한층 올라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묵묵히 견디며 주어진 일을 하는 태도'로 일관하다 보면 나비효과가 일어날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