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자촌과 고시원 이야기
#1.
오늘 밤 바라 본
저 달이 너무 처량해
너도 나처럼 외로운
텅빈 가슴 안고 사는 구나
한때 중창단과 합창단을 섭렵한 한 사람으로서
나의 최애곡이자 노래방 18번 곡을 꼽자면
가사 하나 하나가 와 닿는 <서울의 달>
김건모 시절부터 로이킴까지
20대를 관통하여 30대 후반까지
삶이 고달플때마다 밤하늘을 보는 습관은
저 가사 만큼이나
텅빈가슴을 하늘에 달린 달을 보며
차가워진 마음을 다독였더랬다.
저 달을 보는누군가도
이런 하루를 살아내며 있겠지... 라며
#2.
<서울의 달> 만큼이나
재미졌던 드라마 <서울의 달>
94년 1월부터 10월까지
무려 81부작으로 방영된 이 MBC드라마는
서울 달동네 사람들의 배신과 욕망의 스토리로
어떤 이는 나도 서울 왔을 때 저랬다며
어떤 이는 나도 최민식처럼 뒤통수를 맞았다며
아줌마 아저씨 할 것 없는 브라운관 사수로
당시 40%라는 역대급 시청률을 기록한다.
기억해 보면
전원일기만 고집하시던 우리 아버지도
어머니와 함께 울고 웃으며
각박한 서울살이의 기억을 달래며
TV앞을 지켰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3.
4일 전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다.
언론은 자극적으로 이 사실을 퍼다 날랐고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안타까움은
창문값 4만원이 삶과 죽음을 갈랐던 것.
35년된 종로 고시원 건물은
7명의 사망자를 냈다.
그 중 가장 적은 분의 나이는 서른넷으로
나머지는 모두 50대 이상
서로가 서로를 모르는 일용직 근무자들이었고
어떤 빈소는 아무도 찾아 오지 않았다는 소식에서
서글픔이 뭍어 났다.
게다가 월 134만원을 벌지 못하면
이런 고시원은 고사하고
아예 여관방으로 전락한다는 현실에서
고달픈 서울살이와 안타까움이
모래 씹히듯 입안을 감돈다.
#4.
600년 전 부터 전국 팔도에서 몰려든
사람들의 틈바구니는
"눈 뜨고도 코베어 간다"는
서울을 만들어 갔다.
과일집 옆에 바로 과일집을 개업하고
족발집 옆에 "원조족발집"이라고 간판을 붙이곤
버젓이 장사하는 살벌한 사회.
게다가 천정부지로 오르는 서울집값은
판자촌이라는 주거난민촌을 만들어 갔다.
주인없는 언덕이나 변두리 하천가에
판자를 얼기설기 섞어 만든 집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냈던 사람들
1964년 서울시는 서울에 판잣집이
최소 5만2543가구가 있는 것으로 집계했을 정도로
판자집은 연고없는 상경인이나 돈없던 서민들이
서울살이를 살아냈던 만연된 공간이었다.
#5.
나팔바지와 고고춤이 주름 잡던 70년대 서울.
그리고 이를 "불온"이라 규정하던 박정희 공화국은
판자촌으로 불거진 주거문제 해결방법으로
치우고 도려내는 전략(?)을 취했다.
이에 서울시는 무허가 주택에 살던 127만여명을
적발하여 서울시 밖으로 내보냈고
1969년 5월에는 범정부(?) 차원에서
서울 판자촌에서 살던 사람들 50만명을
군사작전마냥 군용차와 청소차로 경기도 광주로 실어 날랐다.
광주대단지라고 불렀지만
서울과 정부의 약속과는 달리 상수도, 전기조차 없던 허허벌판
하지만 최소한의 삶조차 살 수 없는 공간에 내팽겨쳐진 사람들은
도저히 못 살겠다며 이주 3개월만에 도시봉기를 일으킨다.
10만명에 달하던 주민들이
구호대책을 연호하며 3일간 진행됐던 격렬한시위
<광주대단지 사건>은 한국 도시역사상 처음으로
대규모 도시빈민투쟁으로 기록된다.
#6.
90년대 몸을 드러낸 고시원은 한때
고시생들의 꿈을 이루기 위한 공간이었다.
1평 남짓한 딱정방에도
공부할 책생만 있어도 살아낼 수 있던
신림과 노량진 학원가에 애환의 공간.
주변 물가 역시 그들에 호주머니 사정을 알고
착한 가격으로 노력하는 청춘들을
응원하기도 하던 고시촌은
어느 순간부터 저렴한 주거공간을 제공하는
대체제로 변모하게 된다.
본디, 고시원이란
기초적인 수준의 의식주만 해결할 수 있는 공간으로
왠만한 체력좋은 청년들도
6개월이나 1년을 지내곤 혀를 내두르는 곳.
나 역시도 두달 남짓 이용했던 한사람으로...
그곳에서의 삶이 얼마나 불편한지
기억이 새록하다
하지만 어느새 호텔같은 고시원이라며
<고시텔>이라는 옷을 입더니
<원룸텔>이라는 작명으로 업그레이드 되어
이제는 <쉐어하우스>라는 걸출한 이름까지 손대며
사회초년생들과 일용노동자들을
호객하기 시작했다.
#7.
얼마전 서울시 사회주택 지원사업을 심사하다
뜨악 했던 사업이 있다.
청년주거에 대한 권리를 향상시키기 위해
주거공간을 지원한다는 취지의 사업은
알고보니 <고시원 리모델링 사업>이었던 것.
물론, 낡은 고시원을 개선하여
도시의 공익적 거점으로 되살리고
반값월세라는 저렴한 주거지원혜택으로
청년층의 도시의 생활을 지지한다는 것은
200%공감하지만
업체에서 제출된 계획안을 뜯어보면 뜯어볼수록
기존 고시원 리모델링 사업의 취지와는 달리
기존 실 사이즈는 그대로이고
페인트칠만 바꿔서 그대로 쪽방을 제공하는
방법에...마음이 털썩
이 정도의 투자로 공간과 도시의 삶이 함께
살아나는 사업이라면 너무나 좋으련만...
물론, 지원되는 예산이
사업에 비해 너무나 터무니 없이 적고
사용 항목 역시 까탈스럽기는 하지만
제안된 고시원 리모뎅링 지원사업은
기존 쪽방촌 여주인 지원하기와
뭐가 다른지 모를 지경이었다.
게다가 이번 고시원 화재사건이
자신들의 사업에 불똥이 튈 것을 염려하는 모습에
한숨이 절로...
* 서울시와 사회주택종합지원센터등 많은 관련자분들의 노력으로
리모델링형 사회주택사업은 점차 성과를 나타내고 있다.
간혹, 몇몇 지원업체 중 지원 목적이 심히 의심될 만한 사업이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것 같다.
#8.
학교에서 못이 박히도록 들은
<합리적 인간상>은
경제적 논리가 삶에서 가장 우위인 것처럼
가치의 우선순위를 스위치 시켰다.
그리고 그 효용이라는 경영의 개념이
부동산으로 넘어오면서
단위면적당 효용을 높이기 위해
일명 <쪼개기>라는 불법 아닌 불법이 시전되었고
그 법적 효력이 구조적으로 미치지 않는 고시원은
쪼개질때 까지 쪼개는 것이 미학인듯
공공연히 분해해져 갔다.
그렇게 나온 교도소 독방만한 공간은 결국
타워팰리스 보다 높은 가격, 평당 월세 35만원을 기록하며
고시원의 일반적인 가격룰로 고정되어져 간 것
게다가 주요 고객인 주거난민은
당연한 착취의 대상이 되었고
고시원 주인들은 당연한 시세 행사와 함께
경제적 판단으로 창문제거, 소화시설 미설치라는
운영의 당연함을 통해
그들의 삶을 조여 나갔다.
#9.
인문학자의 눈으로 마장동 판자촌을
3개월 동안 직접 경험하시고
집필하신 전남대학교 최협 교수님의 <판자촌 일기>는
우리들이 익히 알던 판자촌 라이프에
전혀 다른 면을 보게 한다.
교수님께서 만나신 이웃들은
목수, 그릇행상, 노동자, 시청 환경미화원 등
대부분 서울드림을 꿈꾸며 돈 벌러 올라온
농촌 출신들이었는데
그들이 보여준 삶의 모습은
익히 알던 판자촌의 불편함과
철거반싸움의 서러움이 아닌
좀 잘살아보자고 다독이던 공동체로의 모습과
쌀이 떨어지면 서로 밥을 지어주던
놀라우리 만큼 정상적인 이웃관계였던 것.
게다가 서울이라는 약속의 땅을 품으며
타향의 어려움을 함께 이겨가자는
인간적인 지지와
따듯했던 판자촌의 속살들까지.
빈곤은 모든걸 수단으로 보게 만들고
배신과 이용이 난무하게 하지만
판자촌은 기회를 꿈꾸는 인간다운 땅이었다
당시, 판자촌의 사람들은
서로 등에 칼을 꼽기 보단
타향의 설움과 서울살이를 함께 이어가는
동료로 함께 한 삶은 아니었을까.
#10.
그러기에 최근에 일어난 고시원 화재는
끊어진 인간성과 이지러진 경제적 논리로
보는 누구나를 서글프게 한다.
7분 모두 기초생활 수급자라던데
일용직 근무자에 대부분 혼자사는 오십대래
방값도 몇번 밀리면 여관으로 쫒겨난대더라
어쩌다 이리 됐을까
우리의 삶에서 뭐가 중 한 것일까
아니..뭐가 합리적인거고 뭐가 성공한 삶일까
나 역시도 입성하지 못하고
그들처럼 바라만 보는 처지이기에
끝 모를 듯 무서워지는 서울 땅을
지켜볼 수 밖에...
너도 텅빈 가슴안고 사는구나
오늘도 그저 서울의 달만 쳐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