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헤란에 새겨진 건설의 신화

테헤란과 삼풍 그리고 성수대교 이야기

by SeeREAL Life

#1.

"내가 테헤란로에서 일 하게 되다니"


10년전, 사회로 첫발을 내딛었던

햇병아리였던 나에게

퇴근길 멋드러진 고층 빌딩숲 절경은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사진을 찍고 스케치를 하며
하나하나 그 모습을 담아냈던 그 곳.


외국계 기업과 대기업

그리고 IT업계의 커리어맨들이

주름잡고 있던 이 곳 테헤란로는


당시, 강남스타일이니 가로수길이니 하는

핫 플레이스가 없었음에도


사회 초년생인 나에게

대한민국 중심지에서 일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하지만 어느순간 궁금했다

테헤란은 영어인가 한문인가?



#2.

당시, 네이버의 지식인도

그다지 활성화 되 않아서

노련한 카더라 통신에 의존해야 했던 시절.


테헤란은 도대체
누구에게 물어봐야 한단 말인가...를 되뇌이며

눈치껏 단서를 찾아야만 했다.


"도시를 공부했다는 녀석이 그것도 모르냐"는
잔이 당연히 장전될 것이기에....

그저 머리속에 품고 있을 수 밖에


하지만 며칠 그 질문은
자연스럽게 실마리가 풀렸다.


강남역을 지나며 사진을 찍고 있을때

희안한 비석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걷는데 방해되게 길에 뭐 이런게 있어" 라며 흘겨본 눈가에는
댕기를 말린듯한 희안한 모양의 비석이 있었다.


꼬불꼬불하니 페르시아어로 적힌

"테헤란로" 비석.



#3.

그 정체 모를 비석을 마주하곤

페르시아어로 적혀있던
"테헤란"을 찾아 보았다.


"Tehran" 그곳은 바로

인구 647만이 거주하는 이란의 수도로

오일머니가 흠뻑 뿌려진 현대화된 도시이자

북으로는 카스피해가 인접한 중동 교역의 요충지.


무엇보다 더 놀라운건

이란 수도에 "서울로"가 있다는 사실과 함께.


모습 역시 한국의 테헤란로와 비슷한

고층빌딩이 즐비한 번화가라는 것.



아니... 이 거리들은 왜
서로의 이름이 뒤바꿔 있는 걸까



#4.

1970년대 오일머니의 호황과 중동국가들의 SOC투자는

한국에게는 둘도 없는 기회의 땅이 었다.


특히, 현대건설은 당시 우리국가 1년예산의 1/4에 해당하는

9억6천만달러의 사우디 주베일 항만공사를 수주하였고


1975년 7억 5천만 달러에 불과하던 해외건설 수주액은

불과 5년만에 82억달러를 상회하며 10배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한다.


무엇보다 당시 오일머니는

한국 외화수입의 85%를 차지하게 되었는데

중동붐은 말그대로 한국경제를 강타하며

유래없는 경제성장을 한국에 선사게 된 것.


물론, 한국 건설인들의 저력도 대단했다.


사우디 공항고속도로의 확장공사를 수주한 삼환건설은

40일만에 완공해 달라는 무리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횃불로 불을 밝히며 8시간 3교대로 24시간 쉬지않고 작업에 임했던 것.


삼환기업이 완공한 사우디아라비아 젯다-메카 고속도로


밤늦게 그 광경을 본 사우디의 파이잘 국왕은

"저렇게 부지런하고 성실한 한국인에게 공사를 더 주라"

특별 지시를 할 지경이었으니.


그렇게 한국인의 근면성과 책임감

그리고 안되면 되게 하는 한국 특유의 기술력은

중동붐을 지탱하게 하던 자랑이자

한국의 소프트 파워로 각인 되었다.



#5.

이란은 1962년 수교 이래
많은 건설인들이 파견되었던 나라이자
1973년 석유파동산유국 중 유일하게

한국에 석유를 공급했던 나라.


그 우정을 기리고자

닉페이 테헤란 시장은 1977년 서울을 방문한다.


당시, 서울시장 구자춘(16대 시장)은

이러한 기회를 빌어 중동 오일머니의 신성인 "이란의 테헤란"과

자매결연을 맺는 묘수를 택한다.

중동붐을 순풍에 돋히게 하는 방법으로


무엇보다 구자춘 시장입장에서 볼 때
하늘이 도왔다고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닉페이 시장이 먼저

테헤란과 서울의 지명 한 곳을 바꿔부르자고 제안한 것.


이에 구자춘 시장은

70년대 하루가 다르게 땅값이 오르던

금싸라기 땅, 강남의 큰 줄기였던 "삼릉로"를


"테헤란로"로 이름을 바꾸며

닉페이 시장의 제안에 화답한다.


그렇게 테헤란로는 대한민국에서

유일한 외국도시의 이름을 가진

지명으로 남겨지며 강남의 중흥을 이끈다.



특히, 88년 서울올림픽 유치는
테헤란로 한쪽에 55층의 무역센터를 건립하게 했고
그 옆엔 그랜드 인터콘티넨탈이라는 걸출한 호텔을 들어서게 했다.


또한 90년대는 경제, 금융의 중심지로 각광을 받으며

IT 혁명을 이루는 비즈니스의 큰 터전이자

커리어맨이면 한번쯤 꿈꾸는 비즈니스 공간으로 자리해 갔다.



#6.

분홍색 기둥들 만이 서 있었다.


크레인들은 부서진 바위를 끌어올리기에 바빴고

뉴스 앵커와 기자들은 최악의 부실공사라며

울분을 토하고 있었다.



1995년 6월 서초동
1천명의 사람들이 콘크리트 더미에 깔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름하여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상품백화점은 처음에는 지상4층 지하4층의

평범한 상가로 설계 되었다.


하지만 <강남권 명품백화점>이라는 별명으로

에서도 롯데백화점 다음으로 2위기록하며

강남권을 대표하는 초대형 백화점으로 급부상한다.


그리곤 여세를 몰아 5층으로 증축하더니

공간을 더 넓히겠다며 4층, 5층의 기둥을 가늘어 트리곤

방화벽 기둥도 1/4 가량을 숭텅숭텅 잘라 버린다.


그리곤 1995년 6월 어느날.

모든 것은 허물어 졌다.

불과 20초 만에



#7.

"안전한 곳이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기자들은 울분을 토했다.

사실, 울분을 토할만도 했다.


국무총리의 사표와 서울시장의 경질
다시는 이런 후진국적 인재를 없애겠노라는
김영상 대통령도 특별담화에도

불과 6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서
판박이 같은 사건이 강남에서 또
일어 났기 때문이다.


러시아워였던 아침 7시 38분.

람을 가득실은 시내버스가 떨어졌고

승용차가 그 뒤를 이었다.


성수대교가 끊어졌다.

1994년 10월 21일 금요일 아침이었다.


버스추락은 32명의 사망자를 냈고
이 중 8명은 무학여고 학생들이었다.


6개월을 사이에 두고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강남에서 일어났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부유하고
선망하는 곳인 강남에서만 말이다.



#8.

25년이 지난 지금

강남의 콘크리트 촌에서는

그때의 망령이 되살아난 듯


"충격적인 부실공사"라는 헤드라인으로
북적거린다.


다행히 리모델링을 하려다 발견했다고는 했지만

이번 사건 역시 강남에 선사하는 충격은

예사롭지 않았다.


91년도에 준공됐다는 대종빌딩은

바로 테헤란로 중에서도 가장 번화했다고

손꼽히는성동에 위치한 빌딩이지만


기둥의 콘크리트는

천정부지로 올라가는 몸값과는 달리
노인의 이빨처럼 부스러져가고 있었다.



서울시는 급히 붕괴위험 빌딩으로 정하고

입주자들을 대피 시켰다고는 하지만


두달 전 안전진단에서도

A등급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으며


우리의 안전은 어디에서 보장받아야 하는가

헛 웃음만 나온다.



#9.


픽션 아닌 픽션 <국가부도의 날>

"위기는 반복된다"며 보여진 한국 비즈니스 중심지엔

대종빌딩이 떡하니 보였다.


바다모래를 썼다는 괴담에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빌딩들마저 공포스럽게 하곤 있지만

테헤란로의 빌딩들은 사실

서울을 대표하는 Skyscraper


가장 번화한 곳에 위치하며
100억의 몸값을 훌쩍 뛰어넘는 빌딩조차
30년도 안돼 무너지는 황망한 모습에서

더욱 더 후진적인 삶으로 내몰리는
한국살이 민낯에 자괴감이 그렁인다.


잊을만하면 터지는 부실공사와 망국적 사고들


내가 앉아 있는 이 빌딩은 괜찮기는 한걸까

언제까지 부실공사의 불안함을 안고 살아가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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