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이후 다시, 광화문

도시 재난이 극명하게 보여준 대한국민의 1708일 기록

by SeeREAL Life
*주제가 주제인 만큼
저 역시도 답답한 마음을 토로하기에
논조가 있다는 점을 먼저 알려 드립니다


#1.

태평양 건너 낮밤이 다른 신대륙이지만

미국의 대통령이 우리나라에 미치는 영향력이

참 대단하다는 것을 느끼는 요즘이다.


주변을 거니는 시민들이

천막을 옮겨달라고 애원을 해도


U20 월드컵 결승전 응원으로

서울시와 여론이 자리를 양보해 달라해도

꿈쩍않던 대한애국당의 막사가


미국대통령의 방한이라는 소식에

막사를 파이낸셜센터 앞으로 옮겨주는

대승(?)적 결정을 감행했기 때문이다.


역사적인 U20 월드컵 결승을 광화문광장에서 응원했다면 어땠을까


공익을 위해 강제철거를 집행해도

오히려 두배로 그 규모를 키워

위협적으로 그 위세를 키워갔던 들.


막사 주변에 꽂혀있는

태극기와 성조기의 우애를 반영하듯


미국 대통령 방한

예상치 못한 일방적 우의 다짐으로

막사자진 이동이라는 이벤트를 선사한다.



#2.

노렸던 수 였을까?

서울시는 "핵사이다" 를 외칠만한 아이디어로

막사 이동을 원천봉쇄한다.


6월30일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마치고

D.M.Z로 향하는 것을 확인한 서울시는

기습적인 행정집행 감행한 것이다.


장정 대여섯이 달라 붙어도 옮기기 힘든

대형화분 80여개를

이순신동상 주변에 깔아 놓은 것.

덕분에 광장이 숲으로 변했다며 함박웃음을 짓는 아이들


3m의 간격을 유지하며 깔린 화분

그 사이를 뛰어다니는 아이들과 함께

다시금 시작된 분수쇼로


"시민의 공간이 이제 돌아 왔어요" 라는

르른 희열을 표출하는 듯 했다.



물론, 사이다 같은 행정집행서도

조중동 기사와 댓글은

"세월호기념관도 치워라" 라는 강성논조로

53일의 점령이 예상치 못하게 끝난

그 허무함을 신경질적으로 표현했지만


대부분의 서울시민들은

매일 앰프로 트로트를 틀어대며

막걸리와 낮술로 애국(?)하시는 당원들로부터

이젠 보호받을 수 있다는 것에 안도하며


"너무나 다행이다", "서울시 고생했다"는

긍정의변과 응원을 남겨 주셨다.




#3.

2019년 3월 18일.

유가족과 서울시의 협의를 거쳐

세월호의 천막이 해체 되었다.


세월호사건은 5년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밝혀진 것이 아무것도 없고


사사건건 방해공작과 국민적 음해에

고통은 오히려 더해가는 실정임에도


광장을 시민에게 돌려줘야 한다며

너무나 아쉽고 절절하지만

그곳을 시 시민들께 내어주기로 결정한 것.



그리고 아픔의 교훈을 잊지 않고자

그 자리에 80m²규모의

"기억·안전 전시공간"을 조성했다.


삼풍백화점, 성수대교등

도시재난에 대한 기억을 더듬는 공간이자

누구나 와서 쉴 수 있는 자리도 함께.



#4.

2014년 0416 참상이 일어났지만

오히려 해경을 해체하고 진실을 은폐하려는 권력에

(지금도 해경을 해체하라는 건 미스테리이다...

아마도 최순실이 시킨 것 같기는 하지만)


그 억울함과 한탄함을 고하고자

7월 14일 유가족들은 모였다.



그들이 요구한

보수언론과 가짜뉴스가 말하는

"돈"도 "권력"도 "분열"도 아닌


그저 진실을 밝혀달라는 이유

그 하나였다.

그리고 그 외침은 4년 8개월 거쳐

장장 1708일안 이어졌다.


사실 그 누구도

이렇게 오래 걸릴거라...예상치 못했다.


시간이 길어수록

눈을 의심할 수 밖에 없는 일들

함께 늘어.


여기가 정말 사람다운 사람이 사는

대한민국인가 싶을 정도로.



#5.

피자와 치킨을 먹으며 히죽히죽 웃는 모습으로

사람들의 한탄과 비명을

게임하듯 즐기고 있던 대학생들.


누가 저들을

걸신들린 개 돼지가 될 수 있도록

돈을 주고 음식을 대고 있는 걸까.

분노가 채 가시기도 전에



자신이 이 나라의 어버이라며

성조기와 태극기를 들고

세월호 막사를 부수려던 노인들이 나타났고


자신들이야 말로 이 나라의 진짜 엄마라며

왜 희생자를 의사자(?)로 정하느냐는

정체도 근본도 없는 피켓을 들곤

(아무도 의사자 지정을 요청한 적 없었다)


성조기와 함께

유모차에 개를 고 돌아다니는 퍼포먼스로

광화문 광장에 눈독들이는 그들이 나타난 것이다.



#6.

박근혜와 청와대는

면담을 일절 거부했다.


하지만 먼나라 바티칸에서 온

프란체스코 교황은

친히 그들을 향해 다가왔다.


당신들을 위해 기도하겠다며

축복의 인사를 한 모습에

유민아빠의 두손을 꼭 잡은 모습에

필자 역시 가슴 뭉클했던 기억이 있다.


8월 16일

유민아빠가 단식을 시작한지

34일째 되던 날이었다.



세월호 유가족의 고통을 보듬어 주었던 교황은

8월 15일 대전미사를 통해 유가족에게서 받은

노란 리본을 단 채 유민아빠를 찾아 갔다.


그리고 17일에는 유가족 중 한분의 세례까지

직접 챙기는 세심한 배려도 베풀었다.


상처를 입은 사람에게

또다시 상처를 줄수 없다는 말씀과 함께



4박5일의 짧은 방한일정이었지만

첫날부터 끝까지

노란리본을 가슴에 달아준 프란체스코 교황.


권력자뿐만 아니라 권력을 탐하는 들에게

타국에서 온 자신 역시 그 아픔을 동참하고

공감한다는 것을 보여 주며

외면받고 있는 비극의 유족들을 위로해 주었다.



#7.

교황을 만나고 일주일 후

단식40일째에 접어들던 유민아빠는 러졌다.


긴급하게 병원으로 후송되야 하는 상황임에도

쓰러지기만을 기다리던 카메라떼 덕에

엠브란스조차 진입할 수 없는 촌극이 펼쳐



우여곡절 끝에 응급실로 실려

다시금 목숨을 건 사투 작한다.


그의 노모과 딸아이의 강력한 호소에도

계속 단식을 이어가던 그.


하지만 둘째 딸아이의 눈물어린 고백에

가슴이 무너진다.

아빠...아빠랑 이젠 같이 밥먹고 싶어



#8.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에


아직도 사회는 조롱과 함께
"해볼테면 해봐"란 식으로

차가운 돌을 던져대고 있지만


유족이라는 이름으로

아빠도 잃기 싫다 우는 딸아이의 눈물에...


정신이 아찔해졌다는 그.


자신으로 인해 그들

더 큰 상처로 마음이 찢기는 것을 이젠

멈춰야 했다.


그렇게 단식은 자신이 아닌

그를 가슴에 품고 있는 이들을 위해

멈춰진 것이다.


생명을 건 단식이 멈춰진 소식에

그를 아는 모두는 함께 안도 했다.


46일째가 되던 날이었다.



그의 새로운 바램처럼 이젠 살아서 이 사회를 변화시키시길
그 투쟁을 통해 진실이 빛을 보길
두손을 모아 마음꾹꾹 눌러담아 응원을 보낸다.



#9.

세월호를 몰아내고 자리를 잡았다고

좋아하는 대한애국당 막사는

그야말로 잔칫집이 었다.


자유한국당도 못한

막사를 광화문에 지었다며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노인들은

성조기를 들곤 애국자라는 훈장을 단

광장을 누비기 시작했고


한견에 자리잡은 세월호 전시장에 몰려가서

부스를 운영하고 있는 자원봉사자들의 뺨을

대기도 했다.


바디캠 하나에 의지한채 세월호기념관을 지켜야 하는 자원봉사자


"아니 경찰이 왜 저지를 안해요"라며

봉변을 당한 자원봉사자들이 항의를 했지만


"제지하다가는 저희가 맞아 죽어요" 라며

자리를 피하는 경찰.


세월호 5주기가 되기 3일

세월호 기념관 앞으로 몰려가

"시체팔이"를 연호하던 그들은


박근혜가 감옥소에서 지어주었다며

자랑스럽게 [우리공화당]으로 창씨개명을 한다.

(아마 정치공학적으로 대한 + 애국 으로는

태극기부대와 성조기를 든 노인들의 만행을

씻기는 힘들다고 판단한게 아닐까?)


그들은 어떤 이야기로

또 시민의 광장을 얼룩져 갈지...



#10.

2019년 5월 29일

헝가리에서 비보가 날라왔다.

한국 여행객을 싣은

허블레아니 호가 침몰 한 것이다.


유럽의 젖줄이자

3대 야경으로 꼽히는 다뉴브강을 누리고자

여행사는 악천후에도 항해를 강행했다.


추운날씨와 휘몰아치는 빗방울 때문에

대부분의 승선객들은

유람선 내부에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135m짜리 러시아 크루즈 선은

가차없이 그들을 밀어내버렸고


종잇장처럼 회오리 치던 허블레아니 호는

26명의 한국인과 2명의 헝가리인과 함께

검은 심해로 처박혀 버린 것이다.



#11.

어찌보면 사고와는 전혀

연관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거기에 모인 그들 조차도

처음보는 사람이 대부분이 었다.


하지만 다뉴브 강 머르기트 다리에 모인 사람들은

한사람의 인도에 맞춰 추모곡을 부르기 시작한다.


한국의 노래, 아리랑을


강물에 고통받는 사람을 위해 가만히 있을수 없었다고 말하는 그들


자신들이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게

이것 밖에 없다며

어떤 뜻인지도 모르면서

얼굴조차 모르는 타국 희생자를 위해

애도의 노래를 부르는 이들의 모습에


아...이게 우리가 원하던

모습이 아니었을까 라는 부러움과


자신의 돈과 권력만 탐하며

천민적 삶을 사는 대한국민의 모습에

부끄러움이 차 올라 왔다.



#12.

비슷한 시기

아니꼬운 당에서도 공천을 못받을 것 같으니


박근혜를 위해 할복하려고 했다며

조원진 의원이어 당을 갈아타는 홍문종의원

우리는 목격했다.


그 얄궂은 금뺏지를 놓치지 않으려

정치공학이라는 멀끔한 이름으로

자신의 뱃속을 감추려 하지만...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과연 누굴 찍지 말아야 할지

이런 교활한 기회주의자들을 어떻게 끊어내야할지



글을 쓰다

신해철과 함께 있는 아이들을 본다.


비슷한 시기

마왕이라 불리며 자신의 소신으로

정치권과 세상의 불의함을

신나게 들쑤셔대던 그.


정말 그 그림마왕처럼

"굿모닝 얄리"라도 아이들에게 불러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올라오는 밤이다.


세월호 기념관은

2019년 12월까지 운영될 예정이라고 한다.


다시 찾아가 그곳의 기억을 담아야 겠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