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 세계평화의 끝과 시작

평화, 그 새로운 역사를 열어갑시다

by SeeREAL Life


#1.

내 두눈으로 이런 장면을 목격하게 되다니

남북미 정상이 모 판문점을 보게되다니


게다가 현직 미국대통령으로서

북한 땅을 밟아보는 첫영광을 트럼프가 획득하다니



DMZ에서보면 좋겠다는 트위터 회담 제안에

그저 "쇼비즈니스의 출신다운 구애"라는 생각과

그래도 만나면 참 쇼킹하겠다 라는

나지막한 기대를 하고 있었더랬다.


언론은 뜸도 들이지않고 부채질을 해댔고

페이스북도 트위터의 반응과 글을

연신 퍼다 나르고 있었다.


그렇게 번개추진 당사자도 예상치 못한 일이

2019년 6월 30일 일어난 것이다.



#2.

전용기차로 평양을 떠날 때만 해도

이런 굳은 표정은 아니었다.


분홍색의 꽃시중과 고이 펼쳐진 레드카펫은

화색어린 트럼프의 선물을 가득 담아오라는 듯

"이제 가난과 제재는 끝이다"는

장마당세대들의 기대와 염원을 표출하고 있었다.



장장 66시간, 3일에 걸친 기차여행.

중국을 수직으로 관통하여 트남으로 향했던

4,500km의 노력은

"나 이만큼 고생해서 왔어. 너보려고" 하는 듯

셀프고생을 시전하며 자신의 기대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2019 상반기 최고의 유행어

"굳딜이 아니면 노딜이 낫다" 히트시키곤

뼛속까지 새빨간 장사치 트럼프에 유린 당하며


결국 무소유의 리턴 트레인을 타야했던 김정은.


그에게 2019년 2월 28일

예상치 못한 하노이 쇼크에

꼬일대로 꼬인 밤이었을 것이다.



#3.

가만히 있을 위인이 아니었다.


회담이 결렬된지 채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동창리 미사일 실험장은 분주해졌다.


언제든지 미국 본토를 때릴 수 있는

장거리포 사일 실험장을

정비하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2019년 5월 4일.

미국이 훤히 밝혀있을 24시 30분.


김정은은 기어코 동해상으로 미사일을 떨어뜨린다.

골프를 즐기고 있던 트럼프에게 보란듯이.


1년 5개월만의 개시된 도발이었다.



볼턴의 보고를 받은 트럼프는 격노한다.


이에 질세라 언론들은

"김정은이 트럼프를 엿 먹였다"며

(미국 인터넷 매체 VOX헤드라인)

여기저기 대서 특필에 신이나 있었고


내년 대선을 위해서는

반전의 돌파구가 필요한 트럼프는

뭐라도 해야만 했다.


돌아온 로켓맨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김정은은

레드라인을 넘나드는 특유의 평양장사꾼 심보로

부동산 장사꾼 속을 자극하기 시작한 것이다.



#4.

판문점은 태생부터 열강의 각축장으로 태어났다.


사실, 평화의 장소 라기 보다

준엄하고 조심스러워야 했던 자리였고

휴전선을 걸고 민족적 명운이 건 실랑이가

항상 벌어졌던 곳이기 때문이다.


동서 800m, 남북 600m에 걸쳐

비무장지대 (DMZ) 군사분계선(MDL)위에

만들어진 판문점은


휴전 당시 유엔군과 공산군이

회의를 원만히 운영하기 위하여

1953년 10월에 만들어졌다.



사실, 6.25 전쟁 중 양측의 휴전회담이

처음 개최되기로 예정된 곳은 개성이었다.


하지만 당시 개성은 공산군의 점령지였고,

유엔군 측은 공산군의 압박으로 인해

제대로 된 휴전회담이 어렵다고 판단하며

보다 중립적인 장소를 제안한다.


그렇게 개성에서 남쪽으로 20리 떨어진

"널문리"에서 휴전 회담이 열리게 된 것이다.



#5.

6.25전쟁 전만 해도 한촌(寒村)으로

초가집 몇 채 뿐이었던 이곳은

1951년 10월 25일 휴전회담이 열리면서

세계뉴스의 핫스팟으로 떠오른다.


군용막사가 있는 부분이 남한을,

반대편 흰색 막사는 북한을 나타내며

정전협정을 이어가던 판문점은


2년 뒤, 마침내 정전협정이 성사되면서

유엔군과 공산군의 공동경비구역

JSA(Joint Security Area)로 결정된다.



주막을 겸한 조그만 가게 앞 콩밭 가운데 자리잡은 1953년의 판문점


이후, 8월부터 9월까지 이곳은

포로교환을 통해 평화의 의무가 지켜지는

공동의 공간으로 운영되었는데


상설운영을 위해 1km정도 남동쪽으로 옮겨져

파란색은 유엔군, 흰색은 공산군이 운영하는

포로교환 건물이 있는

지금의 판문점 모습을 이루게 된다.


그런데 궁금한건,

JSA라는 말은 "공동경비구역"

줄임말로 그 뜻은 이해되는데


판문점(板門店)

즉, "널판지 문을 단 상점" 이라는 이름은

어떤 연유로 달렸던 것일까?



#6.

대중에게 익히 알려진 "판문점"의 공식 명칭은

[군사정전위원회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으로

군사분계선상에 있는 공동의 지역.


1951년 경기도 장단군 진서면 "널문리"라는
조그마한 동네에

주막을 겸한 조그만 "널문리가게" 앞 콩밭에서

임시막사와 건물들이 만들어졌다.


3개 국어(영어, 중국어, 한국어)를 공용어로

한국전쟁의 휴전회담이 진행되었는데


당시, "널문리가게"를

중국어로 표기하기가 마땅치 않아


"널판"을 "판"으로 표기한

"판문점 (板門店)"이 중국명칭으로 사용되면서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판.문.점.


그렇게 한적한 구멍가게 일대 콩밭은

판문점이라는 이름을 갖고

민족상잔의 비극을 끊는

역사적인 장소로 변하게 된 것이다.



실, 판문점 네이밍의 시작이 된
"널문리" 라는 심상치 않는 이름에도

나름 범상치 않는 히스토리가 있다.


임진왜란 때 한양을 버리고 파천 중이던 선조

이곳을 지나 강을 건너게 다.


하지만 다리가 없어서 건너질 못하는 상황.

말그대로 발을 동동구르고 있 그때


마을 백성들이 집집마다 대문을 뜯어

임금이 도망갈 수 있도록 널문다리를 만들었고

그 일행이 모두 무사히 건너도록 도왔다.


그 후 사람들은 이 동네를

판자(널)문으로 다리를 놓아주었던 마을이라고

하며 "널문리"라 부르게 된 것.


그렇게 널문리는 왜놈으로 부터 임금을 지켜주고

세계열강의 대리전으로 불리던 한국전쟁을

멈춰준 공간이 된 것이다.



#7.

하지만 판문점이라고

미담만 넘쳤던건 아니었다.


휴전 후 23년 뒤, 1976년 8월 18일 .

다시금 한반도를 전쟁의 소굴로

몰아넣을 만한 쇼킹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미루나무 가지치기를 하던

주한유엔군 미국인 장교 셋을 도끼로 죽인


이름하여 [도끼만행 사건].


말그대로 전쟁이 터지기 일보 직전까지 갔던 도끼만행사건


당시, 포드 미국대통령은 즉각

북한측을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했고

박정희는 데프콘2 를 발동시켰다.


6.25 전쟁 이후 최초로 주한유엔군과 대한민국 국군은

준전시체제에 돌입했으며 북한군도 이에 맞서

북풍 1호를 발동해서 전군 완전무장을 지시했다.


F-111 20대가 대구비행장으로 전진배치되었고

B-52 전략폭격기 3대가 괌에서

F-4 전투기 24대가 오키나와에서 발진을 했다.


함재기 65대를 탑재한 미해군 제7함대와

미드웨이급 항공모함과 순양함 5척

서해안에 대기했으며


165mm 미군 M728 공병전차가

자유의 다리를 조준했고

미 육군 공병부대가 임진강 도하준비를 위해

다리를 설치하고 있었다.


말그대로 2차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일보직전이었다.



#8.

당시, 판문점은 별다른 활동 분계선이
존재하지 않는 공동의 구역 이었는데

한국군 3초소는 위치상 주변 인민군 초소 3개에

포위 당해 항상 위협에 노출되어 잇었다.


그래서 가장 고지대에 있는 5초소에서

3초소의 동태를 살펴야 했는데

그 시야를 방해하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3초소 길목에 있던 미루나무였다.


사건이 있기 2주전 주한 유엔군 작업반은

초소의 안전을 위해 미류나무를 자를 것을 권고 했지만

북한군의 이의 제기로 가지치기하는 것으로 조정했다.


10시30분 노무자 3명, 경비병 7명, 육군장교 3명은

상호 조정안 대로 가지치기를 시작했지만

북한군 박철이 갑자기 병력을 이끌고 나타난다.


그리곤 자르지말라는 위협을 가하더니

주먹과 곤봉을 이용해 유엔군을 상대로

마구잡이식 폭행을 가하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노동자들이 놀라 달아나면서 버린

벌목도끼로 보니파스 대위의 머리를 찍어버린다.


뿐만 아니라 소대장 마크 배럿(Mark T. Barret)

미 육군 보병중위도 현장에서 참혹하게 살해당했다.



이후에 밝혀진 정황이지만

박병엽 전 조선노동당 고위간부 증언록에 의하면

당시 사건은 길일성이 아닌 김정일에 의해 일어났다고 했다.


북한은 김정일이 후계체제를 구축해나가는 과정이었고

김정일은 전국의 모든 상황을 통제하고 있었다.


당시, 미루나무 가지치기를 한다는 보고를 받은 김정일은

"미국놈들에게 조선 사람의 본때를 보여줘라."

라고 지시한 것.


이후, 도끼만행으로 미군을 살해한 북한군은

김정일 지시로 국가표창 받았고

급기야 1년 뒤에는 판문점을 직접 방문하여

도끼사건에 투입된 부대원들과 기념사진을 찍는다.


사건발생 3일 후,

북측 수석대표를 통해 유감의 뜻을 표시한

김일성 주석과는 확연히 대조적인 조치였다.


#9.

미국은 한국특전사와 함께

[폴 버니언 작전]을 진행한다.


사건의 원인이 된 미루나무를 절단하되

북한의 저항이 있으면

그를 빌미로 전쟁을 시작하려는.


박정희는 이를 통해

쿠테타로 잡은 정권으로 소원해진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려

"인민군이 30m만 접근해도 쏴버리라!" 라고

과잉충성과 오버의 극치를 시전했지만


북한군은 오히려 줄행랑을 쳤고

작전은 결국 무위로 끝나게 된다.



그후 판문점 경비초소에는

사건 이전과 같은 애매한 경계 대신

콘크리트로 만든 확실한 경계가 세워졌다.


또한, 양측 군인들 간에 개인적인 안부를 묻던

판문점의 분위기는 완전히 갈라진 경색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당시, 미루나무 제거작전에 투입된

한국 특전사 중 특전사 1여단 제3특전대대

작전과에서 복무하던 사람이 있었으니


유신헌법에 반대하여 시위를 하다

강제 징집을 당해 복무하고 있던


대한한국의 19대 대통령, 문재인 상병이 있었다.



#10.

2018년 4월.

대한민국대통령의 신분으로

그 땅을 다시 걷는 그의 기분은 어땟을까?


게다가 김정은과 함께 손을 잡고

판문점을 걷는 소회는...과연 어땟을까?


문재인 국정출범 후,

한반도 통일 프로세스를 비웃듯이

연신 로켓맨으로 유명해져 가던 김정은이었다.


하지만 세계인의 평화축제

2018평창올림픽을 시작으로

환담과 실무접촉을 이어가던 남북은



마침내 그해 4월 27일

한반도의 [평화의 봄]을 이끈다.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만드는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을 이끌어 내며

항구적인 평화구축의 시작을 만든 것이다.


비핵화 선언과 핵없는 한반도

종전선언과 평화체제구축을 위한 다자회담

모든 적대행위 중지뿐만 아니라

비무장지대를 평화지대로의 변화

동해선과 경의선의 연결


무엇보다 판문점에서 평화의 봄을 만들었으니

평양에서 [평화의 가을]을 만들자던 둘의 약속으로


평화를 위한 새로운 역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11.

개인적으로 아직도 가슴을

두근 두근거리게 만드는

판문점 회담의 백미 중 하나는


유엔군 표식이 있는 파란 도보다리에서

수행원 없이 단둘이 담소를 나누던

"티타임"이다.



저렇게 평화로워 보이는 파란다리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두 정상의

일상적이지만 일상적이지 않던 모습에


연신 "우와 어떻게 이런 일이" 라며

감탄사를 내뱉던 기억이 새록하다.


너무하고 안정적인 모습에

오히려 남양주 종합촬영소에서

대역배우들이 연기를 하는게 아닐까 라는

느낌이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12.

위력과 비슷한 임팩트를 주었던

쇼킹한 사건이 또 일어났다.


트럼프의 판문점 방문과 함께 진행된

사상 첫 남북미 판문점 정상회담이었다.


회담의 진행도 기존과 확연히 달랐다.

오피셜한 네트워크의 사전조율을 통한

아젠다 설정과 회담제안이 아닌

SNS를 통한 번개의 형식이었고


친한 친구 사이에서도 성사되기 힘든

"꼭 보길 바래. 만나자, 아니면 말고" 식의

일방적인 제안 딜리버리는


지금껏 어느 정상회담에도 전례가 없던 모습.


그러나 그런 우려와 달리
업로드 된 지 5시간 만에

평양의 긍정적인 답변을 이끌어냈고


정전협정 66년만에

남북미 정상이 DMZ에서 만나는

역사적 순간을 만들어내었다.



BBC, CNN등 주요 외신들도 탑뉴스로 다루며

DMZ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악수하고 싶다는

그의 바램이 이루어졌다고 놀라움을 표했다.


게다가 역사상 처음 미국 현직대통령으로

북한땅 을 밟았다며 트럼프의 우쭐대는 모습을

전세계로 송출해 댔다.


말그대로 대단한 순간이자

외교의 정석을 클리셰로 만들어 버린

남북미 정상이 만들어낸 엄청난 진전이었다.




#.13


2000년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


로보캅 같던 이병헌이

지뢰를 밟고 애원하는 장면이나

능글능글한 송강호가

초코파이를 게걸스럽게 먹던 장면은

아직도 눈찡긋할 수 있는 웃음을 주지만


남북한의 분단의 최전방, JSA에서

과연 그럴 일이 가능할까?

러닝타임 내내 의심의 눈초리로 보았던 크린.


허구라는 걸 알기에 정말 유쾌하게

런 날이 빨리 오길 라며

상영관을 나왔던 기억이 있다.


그 바램을 알았는지 19년 후,

많은 언론이 보는 가운데 DMZ 남북한 군사들

악수를 통해 서로를 맞이한다.



2018년 판문점선언 닷새 이후

판문점 내 초소 철거와 비무장이 진행되었다.

또한, 강원도 철원군 화살머리 고지에는

남북상호간 군용 전술도로가 연결고 있다.


6.25전쟁 당시 남북 최대 격전지가

이제는 평화를 잇는 도로로

화해의 시작을 알리고 있는 것이다.


66년만에 두 길이 하나로 이어진 것을 보며

남북한의 모든 이들이 하나된 겨례를 부르며

얼싸안는 그때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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