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용 사진작가

현실과 현상의 차이

by SeeREAL Life


한국을 빛낸 예술가로


세계를 다니면서 한국을 알리는

순회 전시를 이어가고 있는


김광용 사진작가.


사진을 통해

미래세대를 위한

가치로움을 풀어내고 있는 그는


어떤 꿈의 여정을 살아가고 있을까?


꿈그려DREAM에서 만나 보았다.



꼬마 사진사


자신에게 사진이란

생명과 같다고 말하는 김광용 작가


그에게 사진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찾아왔다.


충남 공주에서 태어났는데요
유년시절은 천안에 있는 외가집에서 보냈어
외가집에 가보니 외삼촌께서 사진관을 운영하고 계신거에요
이모, 사촌형 모두 사진 일을 하고 있었죠


어린 눈에도 사진관은

지금까지 보지 못한 신기한 곳이었고


재미난 장비들이 가득차 있는 놀이터였다.


당시는 사진 인화를 직접 손으로 다했는데요
인화하는 심부름을 도맡아 했었죠
건져라 닦아라 말려라
그렇게 색이 변하고 형상이 나오는 걸 보면서
사진은 이렇게 찍어야 되는구나를 배웠죠


그런 환경덕분에

국민학교 4학년인데도 그는


제법 사진 잘 찍는 "꼬마사진사"로

동네에 칭찬이 자자했다.


사진기사분들이 출장 중일 때는
제가 대신 출사를 나갔었어요. 급하니까
특히 경찰서에서 급하게 부를 때가 많았는데
어린나이에 별의 별 사건들을 다 봤었죠
교통사고도 많았어요
그때 개통된 경부고속도로가 천안 옆을 지났거든요
연탄굴뚝 사건이나 낫으로 일가족이 몰살된 사건까지
여기저기 정신없이 다니며 사진을 찍었던 것 같아요





사진쟁이의 삶


어른도 감당하기 힘든 사고현장을


경찰관의 요구에 맞춰

노련하게 사진을 찍어 갔던 그.


사진을 매개체로

겪지 않아도 될 일들을 겪게 되면서


또래에 비해 더 이르게 성숙해져 간 그는

17살의 나이로 상경을 결정한다.


사건사고 현장을 다니면서
사람이 이럴수도 있구나
사는게 이렇게 끝날 수도 있구나를
어린나이에 빨리 알게 된 것 같아요
그러면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진중해 지는 고민을 좀 더 일찍할 수 있었던 거죠
그리곤 17살에 서울로 상경을 하게 됩니다.


뒤돌아 보면 사진 외에는

관심자체를 차단하면서 살았다는 그는


사진 하나로도 더 신나고

재미있게 사는 방법을 찾아갔다.


군복무도 사진병으로 했었는데요
전역을 하고 27살에 첫 스튜디오를 내게 되었죠
연예인들도 촬영하고 웨딩사진도 찍으면서
어느순간 부터는돈 걱정 안해도 살 수 있는
여유를 찾게 되었어요 주머니도 두둑해졌구요
그런데 동시에 뭔가 허전하고 공허해 지더라구요
내가 원하던 삶이 이거였나... 회의감도 들었구요





뷰 파인더로 보던 세상


뒤돌아보니 자신은 그저

먹고 살기위한 사진쟁이였다는 그.


삶의 괴리감은 그를 더 억눌렀다.


뭔가 변해야 될 것 같았어요
내가 목표한 삶도 아닌 것 같았고
뭔가 모를 불안 역시 계속 찾아왔죠


그런 마음이 점점 더 커지던 어느날.


마치 그의 뷰파인더가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았다.


국민학생때부터 봐오던 뷰파인더 였죠
20년을 넘게 봐오니 어쩔때는
그 속에서 세상이 안보여 주는 것을
발견할 때도 많았어요
그때쯤이었죠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할까
고민하면서 밤잠을 설쳐갈 때 쯤
사람들의 마음이 뷰파인더로 전달이 되기 시작했어요


어느날은 찾아 뵈었던 신부님은

가득 채워져 있는 단단함이 보이고


고승들은 비워있는 자유함이 보였다.


그리고 목사님들은 뭔가모를 빛이 나고

행복해하는 에너지가 보였다는 그.


그때 무릎을 탁 치겠더라구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이제야 알게 된 것 같았어요
그길로 교회를 찼아갔어요
그렇게 27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신앙을 갖게 되었구요
아내와 함께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2000 시드니올림픽
2002 한일월드컵


나를 지켜주는 존재가

나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몸부림치던 삶은


어느새 미래세대에게

꿈을 심어주는 삶으로 변해갔다.


그리고 그때쯤

새로운 도전이 찾아 온다.


한국문화에 대한 사진전을 하고 있을 때였죠
감사하게도 올림픽에서
사진전시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어요
초청만으로도 정말 뿌듯했죠
그리곤 올림픽선수처럼 전시를 준비했던 것 같아요
한국 전통문화를 세계인들이 마음에 담을 수 있도록
그리고 그 노력을 알아주셨는지 삼성의 후원으로
시드니 올림픽 컨벤션 센터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사진전시를 하게 됩니다.


정말 의미있는 자리였기에


개인적으로도

큰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던 그.


36개국 국영방송국의 인터뷰는


그의 작품을 더 널리

알리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이후엔 모스크바 대학에서 전시회를 하게 되었구요
2002년 한일월드컵, 2004년 아테네 올림픽까지
정말 의미있는 자리에서
한국의 전통문화를 알리는 전시회를 이어가게 됩니다





사진예술로 찬양하는


자신의 달란트로

세계속에서 한국을 알리는 경험을 한 그는


자신의 삶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을


사진으로 많은 이들에게 알리고 싶다는

마음에 사로잡히게 된다.


20대부터 시작한 신앙생활은
저에게 마음의 평온과
멀리보는 시각을 갖게 한 것 같아요
마치 엉켜버린 실타래가 풀리듯이
삶에 대한 고민이 눈 녹듯 사라진거죠
그래서 알리고 싶었어요
그리고 제가 가지고 있는 사진에 방식으로
이해하기 쉽게 성경의 가치를 풀어 놓고 싶었죠
그렇게 "사진예술로 찬양하는 창세기"
프로젝트가 시작됩니다.

2004년부터 2006년까지

근 3년을 전국을 다니면서


창세기에 나오는 모습을

한국의 자연에서 찾아 갔던 그.


사진을 찍으면서 너무 감동되고
신기해 했던 일들이 참 많았어요
사실 어디에 이런 모습이 있는지
어떤 형상으로 말을 걸어올지
전혀 모르고
길을 나서야 되는 상황 이니까요


그리곤 높은음자리표 모양의

식물을 보여주는 그.


하나님은 자연을
잘 섬기고 보호해 주라고 하셨는데요
그럼 식물들은 어떻게 기쁨을 표현할까
궁금해 지는 거죠
그리고 그런 마음을 묵상하다가 이 녀석을 만났어요
기쁜마음으로 노래를 부르는 듯한
높은음자리표의 이 녀석을





약속, 내 삶의 동력


젊은 시절 힘들었던 것은 없었나요?

라는 질문에

"그런건 없는 데요" 라고

멋적게 대답하는 그.


하지만 그에게도

암이란 것이 찾아 왔고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도

전시할 방법이 없어서

발을 동동 굴렸던 때도 있었다.


저에게는 "약속" 이라는 것이
제 삶의 큰 동력으로 다가 옵니다
큰 대회에서 한국에 가치를 알리는 전시회를
3번이나 할 수 있던 것도
하나님이 주신 약속 때문이었고
한일월드컵에 전시공간을 못구해서 발을 동동구를때
전시할 수 있는 공간과 기업의 지원을 이끌어 주신 것도
이름없는 후원자의 약속 이었죠
게다가 그 후원자분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교장선생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모스크바 대학의 전시회를 서둘러 접고
하남초등학교에서 왔기 때문에 가능던 것이었고
시드니, 한일원드컵, 아테네 이후
베이징올림픽에도 전시하고자
욕심부렸던 저에게 암이 생기게 된 것도
하나님께 서원했던 그 약속을
제 스스로 깼기 때문에 벌어진일이 아닌가
생각이되구요


그 약속의 20년을 경험한 사람으로

이제는 어떤 도전이 다가와도


마음이 편하다는 그.


하나님께서 어떻게 약속을 이루시는지
일하신다는 것을 보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기쁩니다.
저는 부인할 수 가 없어요
하나하나 모든것을 뚫어내시고
이루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꼈으니까요




Q. 청년을 위한 DREAM 매뉴얼

현실은 눈에 보이는 것이고
현상은 앞으로 보여지는 것이죠

꿈을 현상하기 위해서는
현실에서 많은 시간을 소비해야 합니다

의미를 갖고 그 꿈을 지키면서 말이죠



스토리텔링 : [See REAL] + Life

인터뷰&일러스트레이팅 : 바이블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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