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에 연결되어 있는 삶이 진짜
아빠처럼 위대한 일을 하는
사람이 될꺼야
매일 아이들과 감사하고 예배를 드리며 살아요
아이들이 커가며 기도가
굉장히 구체적이게 변하는 걸 보며
감사 겸 부담도 커지는 걸 느끼죠
어느날 첫째 딸이 그러더라구요
"아빠 나는 아빠처럼 위대한 일을 하는 사람이 될꺼야"
약간 어리둥절 하면서 제가 물어봤죠
"아빠가 뭘 했는데?"
아이 눈에는 안산이라는 도시에서
뭔가 좋은 일을 하고 신문에도 나는게
"참 멋진 일 이구나" 라는 걸 느꼈던 것 같아요
그때 저 역시 딸에게 감동 받으면서
아이의 말처럼 멋진 일을 이어가는 사람이 되도록
아직도 노력하고 있는 한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답니다
한마디로 말 잘 듣게 생긴 아이였어요
부모님 속 썩이지 않는
집, 학교 도서관, 교회, 농구 외에는
하는게 없었죠
게다가 시골에서 태어난 터라
많은 걸 접할 기회도 없었구요
지금 생각하면 컴퓨터 외에는
할 수 있는게 없는
정말 아이러니한 상황이었어요
그렇게 다른 친구들 보다는 빨리 컴퓨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던 것 같구요
10살때부터 프로그래밍을 공부했고
실제 초등학교때 전국대회에 나가서
상을 받기도 했었구요
그래서 그때는 아무 생각었이 그랬던 것 같아요
나는 전산학과에 다니면 되겠구나
삶의 사춘기
대학을 입학하고
처음으로 혼자사는 삶을 살다보니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생각지도 못한 자유를 누리면서
동시에 내가 왜 사는가에 대한
질문 앞에서 명확한 답을 할 수 없는 절 발견 했죠
그래서 불교부터 시작해서 학교 도서관에 있는
종교서적을 다 읽어 나갔던 것 같아요
내가 뭘 위해 살아야 할지
너무나도 알고 싶었었죠
정말 모르겠더라구요
종교서 찾은 내용은 대부분
이런 메세지였구요
모든게 의미 없으니 현재를 멋지게 살자
저는 그때도 하나님을 믿고 있었지만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때마다
감성적이게 되는 절 발견했어요
그리고 내 삶에 어떤 도움이 오는지
실제적이지 못하다는 마음도 들었구요
한 학기동안 틀어박혀있던 저에게 결론은
"어엿한 사회인"으로 살아보자는 것이었어요
한번 사는 인생 멋지게 살자 라는 생각에
본격적으로 술도 마셔보고
과대표도 해보고
그렇게 바쁘게 지내다가
기숙사 친구들과 부어라 마숴라 하면서
술을 엄청 마셨는데
눈을 떠보니 제 방인거에요
정문에서 학교까지 오는 30분내내
으샤으샤 어깨동무도하고
오는 길에 애들 토도 다 받아 주고
나중에는 애들 하나하나 보낸 너가
하나도 기억이 안난다고?
밧줄타고 내려간거 아니야?
저는 제 스스로가
"내 삶에 굉장히 자신하는 타입"이 있었어요
내 자신을 다 컨트롤 할 수 있는 자아력이 뛰어난 사람
삶의 성취를 위해 어느 정도는 절 조절할 수 있고
술도 별로 취하지 않는 정신력을 갖고 있는
그런데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상황에서
"이거 이렇게 살다가는 큰일 나겠다" 싶었어요
나는 영국에 갈꺼야
그때 발만 걸치고 있던
기독교 동아리가 생각났어요
그래 그러면 이 CCC라는 곳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보자
크리스천 신앙관으로 삶을 살아내보자
그렇게 마음을 잡고 대학생활을 다시 이어나갔어요
CCC를 하면서 너무 좋아라 하는 절 발견했어요
몸치인 제가 난생 처음 워십팀장이라는 것도 하면서
그런데 동시에 마음한 구석에서
이런 생각이 올라 오는 거죠
너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데
넌 그런 널 신뢰하니?
지금은 CCC라는 공동체가 있어서
크리스천이라는 신앙관으로 살 수 있지만
그런 CCC가 없으면 너는 지금처럼 살 수 있을까?
사실 밑도 끝도 없는 막연한 결정이었어요
아무것도 없는 홀로사는 상황에서
나는 크리스천 신앙관을 가지고 살 수 있을까?
라는 테스트를 하고 싶은 거였죠
미국은 CCC가 있지만
영국에는 없다는 걸 알았거든요
다들 반응이 3단계 였어요
너 영국간다고? 돈있어? 미쳤구나
그럴 것도 그런게
저는 준비되어 있는게 하나도 없던거죠
제일 먼저 영어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전단지 알바를 시작했어요
말그대로 닥치는 대로 알바를 했죠
그런데 그 적은 돈으로는
학원비를 대는것조차 택도없는 상황이었죠
지금 생각하면 왜그렇게 세상물정을
몰랐나 싶기도 해요
일당 5만원짜리 학교 알바를
정말 열심히 했어요
나중에 그러시더라구요
저 친구면 이 일을 맡겨도
정직하고 꼼꼼하게 할 것 같다
그렇게 절 눈여겨 보시고
연락을 주셨던 거에요
외국에서 오신 선생님의 수업감시관이었어요
수업을 잘하고 있는지 학생의 신분으로 속이고
교육평가를 하는 것이 었죠
게다가 그 수업이 초창기라서
수강자가 한두명밖에 없는 상황이었어요
말 그대로 저는 돈 한푼 안들이고
1대1 강습을 하게 된거죠
책값도 아끼고 학원비도 아끼고
고급영어를 공부할 수 있게 된 거에요
너 지금 뭐하니?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결국 영국에 가게 되었어요
정말 좋은 환경의 홈스테이와
학교를 가게 되었구요
술 담배도 안하니까
더 좋은 곳을 선택 할 수 있었죠
그렇게 영국에서 생활을 하고 있는데
한인교회 회장님께서로 부터
함께 봉사팀으로 섬겨달라는 요청을 받았어요
샤워를 하고 있는데
그런 마음이 올라 왔어요
너 지금 뭐하냐?
저의 소리는 아니었고
내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나를 흔드시는 마음이었죠
그리곤 저의 모습이 보였어요
하나님이 절 쓰신다고 했는데
"저 조금만 이거 더하고 할께요"
말하고 있는 나
이제는 알겠더라구요
내가 훈련을 위한 훈련을 사모하고 있는 거구나
말도 안되는 기회가 연결 되어서
나를 이곳으로 보내신 이유가 있을 것이다는 생각에
그 날로 바로 목사님께 말씀 드렸죠
함께 봉사팀을 하겠습니다.
저의 계획도 있었죠
하지만 이렇게 내려놓는 순간
더 많은 것들이 열리기 시작했어요
CCC에서 배운 워십으로
한인교회에서 워십팀으로 있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코스테" 라고 하는
유럽연합 크리스천 선교대회에서
워십활동을 할 수 있게 된거죠
이후 청년 100명과 함께 공연봉사를 다니고
다른 영국의 교회에 초청을 받고
지역 라디오 방송에도 나가고
나중엔 코스테 워십대회에서
1등을 하게 되었어요
내가 항상 이거할래요 고집을 부리다가
그걸 내려놓을 수 밖에 없는 낭떨어지 앞에 있을 때
하나님은 항상 저를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길로 이끌어 주시더라구요
아빠도 해봤는데 괜찮아
영국에서의 활동을 하면서
한국에서도 의미있는 활동을 이어갔으면 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죠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니
다문화 아이들이 보이더라구요
그런데 한국에 있는 다문화 아이들은
너무나 큰 거부감을 온 몸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영국에서는 불법체류자라고 할지라고
그 아이들이 공부를 하거나 살아가는데는
평등함이 있었거든요
하지만 한국에서는 피부색부터 억양까지
놀림과 거부감을 너무 심하게 받더라구요
만약 아이들이 존중받고 있다면
외국인들의 범죄율이 줄어들지 않을까
막연한 생각이 올라 왔어요
특히, 우리 안산 지역에서
아이들을 모아서 국어교육을 해보자
정말이지 야심차게 시작했어요
하지만 해보지도 못하고 망했어요
어찌보면 그분들이 느끼시기에는
가장 필요했던게 그게 아니었던 거죠
제가 가장 하고 싶은 것은
선한 영향력을 갖는 사업이었어요
그런데 아이들이 커나가는 걸 보면서
"빨리 저지르지 않으면 시도도 못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아이에게 가장 해주고 싶은 말이
"너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라" 였어요
"그런데 아빠는 하고 싶은거 하면서 산적이 있어?"
라고 말하면 정말 할 말이 없더라구요
그래서 아이가 더 크기 전에
내가 하고 싶은 걸 해보고
"아빠도 해봤는데 괜찮더라"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그래서 저질렀죠
안되면 1년 안에 접자는 마음으로
그렇게 2013년도에 커피숖을 오픈했는데요
벌써 6년이 되었네요
아직도 타고 있는 롤러코스터
사실 사업을 한다 말하는게
조금은 민망하기도 해요
지금도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상황이거든요
롤러코스터를 타면서 즐길 수도 있죠
하지만 죽을 것 같이 힘든 것이
계속 이어질 땐 언제가지 이래야하나
아찔할 때도 많아요
저를 버티게 하는 힘은
사실 사명감 이더라구요
내 마음 깊은 곳을 아시는 분 앞에 설 때
주신 비전 앞에서 부끄럽지 않는 삶
아직은 단단하지 못해서
내 계획에 맞지 않는다면
저 스스로 위축되고 멈추는 걸 느껴요
하지만 실패 역시 쓰신다는 경험을 통해
그리고 내 계획을 내려놓을 때
풀어 내셨던 새로운 상황들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이끄심을 기대합니다
Q. 청년을 위한 DREAM 매뉴얼
그 일 하나로 끝나는게 아니에요
뒤에 연결되는 삶이 진짜인거죠
그래서 다들 그러더라구요
해 봐야 아는 거라고
실패와 성공이 아닌
이후에 풀어가는 삶이 더 중요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