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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토리 Mar 02. 2021

성적주체로서 엄마를 인정하기

이렇게나 다채로운 삶을 위해

누군가 직업을 물어본다면 나는 ‘성교육 활동가’라고 답한다. 성교육이라는 단어 뒤에 ‘활동가’가 붙는 이유는 성평등문화확산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함께 겸하기 때문이라고 늘 설명한다. 물론 이렇게 정성스럽게 말하는 것도 의지가 있을 때고, 보통은 ‘강사입니다~’하고 넘어가지만. 성교육을 하고 청소년들을 만나는 활동가들은 청소년들을 성적주체로 인정함으로써 서로의 경계와 차이를 존중하는 법을 교육하고, 다양한 차별과 불평등에 저항하며 성평등과 관점을 확대하는 일을 한다.


직업에 대한 거창한 이야기를 늘어놓은 것은 우리 사회에서 ‘성적주체’로서 인정되는 존재의 범주가 생각보다 무척이나 협소하다는 사실을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양육자들은 나의 자녀가 성적주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한다. 아니 상상하지 않으려 한다. 여전히 교육을 할 때마다 ‘적나라한 사진들을 보여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무 노골적(?)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벌써부터 그런 것까지 알 필요는 없지 않나’라는 말들을 듣는다. 적나라함과 노골적이라는 것은 대체적으로 신체변화를 이야기하기 위해 나올 수밖에 없는 음부에 대한 설명을 의미하고, 심지어 벌써부터 월경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너무 빠른 것은 아니냐는 이야기도 자주 듣는다. 자녀가 초등학교 고학년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월경이 시작된다면 알아서 월경에 대한 지식을 습득할 것처럼 말이다. 어떤 사전 설명도 없이 학생들에게 시작되는 월경은 공포다. 월경대를 꼭꼭 숨겨야 할 것으로 감춰왔던 가정에서 월경이 시작된 자녀에게 그제야 월경대를 보여주고, 이제부터 완경이 올 때까지 이것을 사용해야 한다는 사실을 전달하는 것은 자녀에 대한 폭력이다. 갑작스럽게 내 몸에서 언제 끝이날지 모르는 피가 주기적으로 나올 것이라는 그 사실부터 충격인데 말이다. 성은 일상을 둘러싼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임에도 아직 자녀가 어리다는 이유로 혹은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그 준비는 누가 안된 것일까) 학생들이 성적 주체로서 권리를 행사하고 자신만의 경계와 주관을 인식할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하는 사례들이 아직도 만연하다.


성인이 된 자녀들은 무엇이 다를까? 사실 우리도 마찬가지 아닌가. 부모가 성적주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이제 우리는 섹스를 통해 우리가 탄생되었음을 알고 있으나, 그것이 곧 부모가 성적 주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과 동일한 의미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지나친 부모의 스킨십을 불편해하는 사람들도 있고, 남사스러워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이 먹은 중년의 부모 또한 성적 욕망을 지니고 있고, 이것을 실현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상상하지 않으려고 한다. 노부부를 성적주체로 그려내는 콘텐츠가 있었던가? 중년의 사랑은 또 어떤가. 대부분 불륜이나 외도를 주제로 내세우는 막장 드라마 소재에서나 다뤄지지 않는가. 우리가 상상하는 로맨스와 낭만적 사랑의 주체들은 모두 젊은 육체를 지닌 이성애자들로 그려진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이는 순간, 우리는 그들 모두가 성적주체이고 각자의 경계를 존중하며 권리를 행사하는 존재들이라는 사실을 잊는다. 언제부터 엄마를 성적주체로 인정하기 시작했는지 모르겠다. 다만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엄마는 성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제대로 된 피임이 무엇인지조차 교육받지 못한, 피임이 당연한 것으로 규정되지 못했던 시대에서 자란 엄마는 나를 낳으며 다짐했다고 한다. 내 아이는 절대 그런 환경에서 기르지 않겠다고. 통제와 억압을 일상으로 경험하고 자란 엄마는 우리에게 방임에 가까운 자유를 주었고, 내 기억이 존재하는 때부터 섹스와 피임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스킨십은 좋아하는 사람과만 해야 하는 것이며, 성인이 되어 모든 결과를 책임질 수 있을 때 해야 한다고. 그 교육이 완벽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엄마는 적어도 나의 궁금증에 솔직하게 답해주었다. 숨기거나 억누르거나 부끄러워해야 하는 것으로 성을 대하지 않았다.  


엄마가 연애를 시작하면서 엄마의 얼굴에 핀 웃음꽃을 보는게 좋았다. 너무 어린 나이에 아빠를 잃었던 나에게는 내 감정을 스스로 회복하고 돌볼 수 있는 어떤 자원도 없었다. 나에게 남은 것은 엄마뿐이었고 나의 모든 마음과 시선은 엄마에게로 향해있었다. 어떻게 하면 엄마가 덜 힘들까? 어떻게 하면 엄마가 덜 울까? 어떻게 하면 엄마가 행복할까. 내가 채울 수 없었던 엄마의 행복과 기쁨은 연애로 채워졌다. 내가 엄마의 돌봄과 사랑을 갈구했던 만큼 엄마도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했다.


지금의 나보다도 훨씬 어린 나이에 두 아이와 덩그러니 세상에 놓인 엄마에게 아빠의 죽음 이후의 삶은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였다. 어떻게든 버티고 또 버텨 두 아이를 입히고 먹이고 키워야만 했다. 생존은 가난과 건조함, 비관만으로 의미화되지 않는다. 비록 엄마는 사회 속으로 내던져졌지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울고 웃으며 비로소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아주 적은 돈이었지만 본인의 노동에 대한 대가를 받을 수 있었고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자본들을 조금씩 획득하며 사랑을 주고받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어쩌면 아빠가 죽은 그 순간부터 나는 엄마를 성적주체로 인정했는지도 모른다. 한국사회에서는 부모가 가진 성적 권리와 주체성이 드러나기 힘들다. 특히 어머니로서의 모성신화는 아이가 탄생한 순간부터 여성을 성적주체의 자리에서 밀어내 돌봄의 제공자이자 주 양육자로서 여성을 배치한다. 이 두 정체성은 공존하기 힘든 것으로 상상된다. 아빠의 죽음으로 노동시장에 편입된 순간 엄마는 가정이라는 감옥에서 비자발적인 일부의 해방을 맛보았다. 연애를 통해 울고 웃는 엄마를 보며 자란 나는 엄마가 엄마의 자리를 벗어난 순간, 엄마라는 역할을 잠시 내려놓는 순간 이렇게나 다채로운 삶들이 앞에 펼쳐질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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