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자 마지막, 엄마 앞에서 엉엉 운날
스무 살 때 시작한 첫 연애를 필두로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연애를 이어왔다. 연애를 하지 않았던 기간을 모두 합해도 채 1년이 되지 않을 만큼 연애가 내 삶에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특유의 냄새와 공기를 지닌 각 계절들이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반복되듯 각기 다른 결의 연애들도 꾸준히 반복되었다.
짧고 긴 시간의 길이들을 넘어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지며 느끼는 상실의 경험과 공허함을 견디지 못했다. 그 결과 부정적인 감정들을 정리하고 성숙해질 기회를 갖지 못했고, 상실과 외로움의 무게를 온전히 감당하지 못하는 어른이 되었다.
감정을 밖으로 터트리는 것이 낯선 나는 흔한 드라마 속 이별의 장면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목 놓아 소리쳐 울거나, 취할 때까지 진탕 술을 마신다거나, 헤어진 연인에게 늦은 밤 전화를 건다거나, 폐인이 되어 일상생활을 망치는 장면들은 이해할 수도 경험하고 싶지도 않은 일이었다. 어쩌면 내 사랑의 크기가 커질 것이 무서워서 항상 먼저 이별을 고해왔던 내가 느낄 수 없는 당연한 감정이었다. 사랑 앞에 비겁했던 내가 절대 재현할 수 없었던 장면들이었다.
그런 나도 처음 겪는 이별에 어쩔 줄 몰라 엉엉 울었던 적이 있다. 사랑하던 존재를 잃은 경험은 이전에도 존재했지만, 가족을 잃은 것과 애인을 잃는 것은 다른 경험이었다. 아빠를 잃었던 당시 치유하지 못한 감정들은 무의식 너머로 숨어들어 오랜 시간 억눌러진 기억들이 되었다. 스물세 살에 경험한 상실은 즉각적으로 나의 가슴과 감정을 건드리고 찢어내는 경험이었다. 열살의 내가 경험한 상실은 시간의 힘이라는 약으로 다스릴 수 있었으나, 스물세 살에 경험한 상실에는 약이 없었다. 시간의 힘이라는 약을 다시 복용하고, 기약 없는 효능을 기다리는 암흑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K와의 연애는 약 3년간의 시간 끝에 종료되었다. 이별 후 한 달의 시간이 흘러 복학한 학교의 식당에서 처음 K를 마주한 날 난생처음 겪는 쓰라림과 두근거림에 하루종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서로의 눈이 마주친 찰나의 순간, 인사도 나눌 수 없는 사이가 된 K를 스쳐 지나가며 터질 듯이 뛰는 심장과 동시에 아려오는 가슴을 어떻게 달래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세상 그 누구보다 가까웠던 K와 하루아침에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었다는 것을 아직 가슴이 인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날 저녁 친구와 술자리를 갖으며 펑펑 눈물을 흘리고 감정을 추스른 채 기숙사로 돌아왔다. 추스렀던 감정은 술과 밤의 기운을 만나 다시 스멀스멀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때 갑자기 엄마 생각이 났다. 기숙사로 들어와 자주 연락도 하지 못했던 엄마가 갑자기 너무 보고 싶었다. 기숙사 방을 나와 휴게실로 걸어가며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대뜸 전화를 걸며 울고 있는 나에게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고, 나는 "오늘 K를 학교에서 만났는데 인사도 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가야 했던 게 너무 슬펐어"라고 답했다. 내 이야기를 듣던 엄마는 조용히 웃으며 "아휴 슬플만하네. 그냥 울고 털어버려. 시간이 지나면 다 해결될 일이야"라며 아무렇지 않게 내 이야기를 받아주었다.
다시 생각해도 그 상황은 신기했다. 기본적으로 우울한 기질을 가진 대신 그 우울한 기질은 심연에서 울렁이는 극적이고 역동적인 감정들이 튀어나오지 않도록 무게를 주었다. 아빠의 죽음 이후 엄마 앞에서는 더더욱 울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한 번 터져 나온 감정을 수습할 수 없는 내가 무서워서. 엄마를 향한 아쉬움과 분노, 질투, 혐오의 감정들이 터져 나와 엄마를 더 힘들게 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들이 나를 눌러왔다. 서운하고 답답한 감정들에 끝없이 ‘왜’라는 질문을 던지며 감정이 터져 나올 여유와 타이밍을 주지 않았다.
반대로 엄마는 감정표현에 무척이나 솔직한 사람이었다. 잘 울고 잘 웃고 거침없이 속마음을 털어놓는 뒤끝 없는 사람이었다. 사귀던 애인들과 싸우거나 헤어진 후 슬픈 노래를 틀어놓은 엄마가 엉엉 소리 내어 울던 밤들이 아직도 눈 앞에 선명하다. 매번 조건 없는 사랑을 주며 열렬한 사랑을 했던 엄마는 이별에 있어서도 솔직했다. 상실과 그로 인한 고통을 밖으로 분출했다. 진심으로 상대를 사랑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랑한 시간만큼 상실의 고통을 회복하기 위한 시간은 길어진다. 고통의 강도 또한 커진다. 엄마는 이를 회피하지 않았고, 상실을 온전히 인정하며 즉각적인 아픔과 고통들을 표현했다.
그 날 이후로 나는 끝난 사랑을 이유로 엉엉 울어본 적이 없다. 아쉽게도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감정들을 붙잡고 있는 족쇄들이 쉬이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쓰라리고 아픈 가슴은 그냥 아픈 채로 내버려 두었다. 정확히는 어떻게 이를 달래고 아픈 마음을 표현할 수 있을지 방법을 찾지 못해 그저 아픈 채로 두었다. 이를 돌보고 치유할 의지가 보이지 않자 불쌍한 내 마음은 이러한 경험들에 무덤덤해질 수 있도록 두터운 보호막을 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