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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토리 Feb 25. 2021

미치도록 싫은 아빠를 닮은 나

아빠의 서늘함과 어두움이 드리운 나

첫 연애를 하던 때가 생각난다. 대학 동기였던 K는 자상하고 다정한 사람이었다. 사랑받고 자랐음이 온몸에서 뿜어져나와 밝고 건강한 느낌을 주는 사람이었다. 사랑을 주는 것에 계산이 없었다. 두려움 또한 없었다. 그와 연애를 하면서 나는 종종 초라한 느낌을 받았다. 저런 사랑을 받지 못한 나의 열등감이 속으로 곯아 들어가고는 했다.


가끔 지병으로 유난히도 마른 신체를 가지고 있던 아빠의 서늘하고 어두운 분위기가 기억난다. 알 수 없는 어두움이 아빠의 얼굴에 있었다. 나를 아주 예뻐했던 아빠는 새벽 출근길에 나서기 전 항상 나의 볼과 이마에 입술을 대고, 내 얼굴을 한참을 쓰다듬었다. 그 감촉과 따뜻했던 느낌이 아직도 선명해서 가끔 애인들이 나를 그렇게 어루만질 때마다 아빠 생각이 난다.


아빠는 사랑을 주고받을 여유가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아빠의 사랑을 느꼈다. 어쩌면 아빠는 자신과 너무 닮은 나를 보며 안쓰러움과 애틋함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너무 미워하지만 또 너무 사랑하는 아빠를 그리워하는 현재의 모순과 복잡함이 나를 사랑했던 과거의 그와 연결되어있다. 그의 타고난 어두움과 서늘한 기운이 나에게도 있다. 엄마는 종종 날 보며 아빠가 나를 얼마나 사랑했었는지 말한다. 동생의 얼굴에서 아빠의 얼굴을 기억하고, 내가 지닌 분위기에서 아빠의 느낌을 종종 떠올린다고 했다. 엄마는 아빠가 엄하게 대하는 동생을 상대적으로 더 챙겼다. 그런 동생을 질투했던 기억이 난다.


아빠와 나의 가족환경은 달랐지만, 우리의 어두움과 서늘한 기운을 덜어낼 수 있는 여건과 환경이 마련되지 못했다는 점에서 같았다. 가난했던 아빠는 장남이었고, 자신을 돌볼 수 있는 경제적인 여건이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안정감을 확보할 토대가 그에게는 없었다.


아이가 생기고 결혼을 하고 난 후에도 아빠는 방황했다.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전국의 공사판을 떠돌며 일을 했고, 그렇게 번 돈은 모두 아빠와 아빠 친구들의 유흥을 위해 사용되었다. 아빠에게 가정은 안정감이 확보되는 공간이 아니라, 그의 불안정한 토대를 직시하게 하는 공간이었다. 가난하고, 배운 것 없고, 안정적인 기반에서 자라지 못한 아빠에게 나와 엄마, 동생은 그의 못난 부분들을 직시하게 만드는 불편한 존재였다.


나의 어두움과 서늘함은 아빠를 잃고 나의 감정을 추스르고 돌아볼 환경이 마련되어있지 않았다는 점에서 더 짙어졌다. 아빠의 죽음으로 나에게 남은 것은 엄마뿐이었다. 당시 열 살이었던 나는 어린 스스로가 싫었다. 엄마마저 잃고 싶지 않았다. 엄마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 가스레인지에 혼자 불을 켜 계란 프라이와 밥을 먹었고, 라면을 끓였고, 전자레인지 수프를 데워 먹었다. 아빠를 잃은 상실의 경험을 인정하고, 되돌아보고, 나의 감정을 읽고, 충분히 아파하고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나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나는 너무 어렸고 나를 돌볼 수 있는 어른이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상황에 적응하는 것뿐이었다. 엄마가 없어도 밥을 먹고, 엄마가 없어도 학교를 갔다. 가끔 집에 들어온 엄마가 주는 용돈으로 학용품을 사고, 엄마의 얼굴에 어린 술기운으로 상기된 얼굴에 '적어도 엄마가 날 두고 죽지는 않겠다'라는 작은 안심을 했을 뿐이다.


그렇게 나의 상실과 외로움을 돌보고 회복하지 못하는 사이 성인이 되었다. 그 시간만큼 무뎌지고 단단한 내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연애라는 경험은 꾹꾹 눌러놓았던 나의 나약함과 외로움, 상처들을 마주하는 경험이었다. 상대를 통해 안정감을 느끼고 싶었고, 온전한 사랑을 받고 싶었다. 이것이 채워지지 못한다면 답은 회피하고 도망치는 것뿐이었다. 내 사랑의 크기가 깊이가 상대보다 무거워질 때 나는 본능적으로 상대에게 도망쳤다. 나의 불안함과 외로움, 어두움, 서늘함을 직시하고 이겨낼 여유와 힘이 없었다.


나를 두고 떠난 아빠를 미치도록 증오했다. 이런 서늘함과 어두움을 내게 남긴 아빠가 미웠다. 아빠를 닮고 싶지 않았다. 남편으로서 가장으로서 무능했던 아빠에게 분노한다. 하지만 아빠가 너무 보고싶다. 그의 어두움과 방황을 이해한다. 나를 사랑했던 아빠를 기억한다. 나를 닮은 아빠를 사랑한다.


엄마는 나를 아픈 손가락이라고 표현한다. 아빠를 닮은 나를, 엄마를 미워하면서도 사랑하는 나를 엄마는 평생가도 이해하지 못한다. 내 마음속에 이렇게나 거대한 폭풍들이 여전히 나를 휩쓸고 있음을 엄마는 알지 못한다. 은연 중에 엄마를 향해 나가는 날카로운 말들을 보며 엄마는 그 과거의 시간에 발목 잡혀 아파하는 나를 짐작만 할 뿐이다. 내 아픔과 외로움과 상처를 말하고 싶지만 말할 수 없다. 말하고 표현하는 법을 나는 배우지 못했다.


엄마를 사랑한다. 엄마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지나간 시간은 돌릴 수 없다. 엄마가 없던 시간 동안 외로웠던 어린 나의 마음 한편에서 엄마를 미워하라고 소리친다. 이런 나를 엄마는 아픈 손가락이라고 말한다. 미안해 엄마. 엄마를 아프게 해서. 그렇지만 나도 너무 외롭고 아팠어. 엄마가 필요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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