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어디든지 갈 수 있었다.
내가 열 살이 되던 해 갑작스러운 사고로 아빠가 유명을 달리하며 엄마는 본격적으로 노동시장에 뛰어들었다. 당시 엄마의 나이는 지금 생각해도 너무 어린 나이인 33살이었다. 33살의 엄마는 동네 기사식당과 일식집, 노래방을 전전하며 두 아이라는 짊을 어깨에 메고 생존을 위해 일해왔다. 현재의 엄마는 중년 여성노동자들의 종착지 중 한 곳인 대형마트에서 근무하고 있다. 생존을 위해 뛰어든 메마른 사막에서 한줄기 꽃을 발견하듯 엄마는 다양한 남성들을 만나 억눌러왔던 다양한 욕망과 욕구를 마주하며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남편의 죽음과 남겨진 빚더미, 파산과 여전히 이겨내고 있는 회복기까지 짧은 글 한편으로 담아낼 수 없는 길을 걸어왔지만 그런 젊은 엄마의 인생의 중심에는 항상 '사랑'이 있었다.
엄마의 첫 연애 상대는 아빠와 엄마의 오랜 지인이었다. 나 또한 그를 M삼촌으로 부르며 잘 따랐다. 아빠와 비슷한 나이에 큰 키, 벗겨진 머리, 못생긴 얼굴. 그러나 느리고 따뜻한 목소리로 나를 불러주던 M이 생각난다. M은 오랜 시간 엄마를 좋아했었다. 갑작스러운 아빠의 죽음으로 기댈 곳 없던 엄마에게 M은 든든한 기둥이 되어 주었다. 공백에 대한 혼란과 방황으로 감정을 조절하지 못했던 엄마가 우리를 챙겨주지 못했을 때도 M은 먹을 것을 챙겨주고, 집을 청소해주고, 용돈을 쥐어주며 다정하게 나와 동생을 챙겼다.
엄마가 들어오지 않는 새벽, 엄마를 기다리며 내다봤던 창문 밖에는 항상 M의 차가 있었다. 그런 M을 보며 진심으로 엄마가 그와 다시 새로운 시작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아빠라면, 그런 남자라면 엄마의 혼란과 방황을 멈출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엄마가 진심으로 안정적인 사람을 만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빠의 죽음으로 인해 생긴 빈자리를 M으로 채우고, 가족이라는 이름의 완성된 모습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엄마는 M과 결혼하지 않았다. M이 결혼을 고려한 관계로 발전하려 하자 엄마는 M과 헤어졌다. 아빠의 죽음 이후로 엄마는 결혼에 대한 생각을 접었다. 가정이라는 공간에서 벗어나 세상에 진입한 엄마는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이야기, 다양한 경험 속에서 마주한 혼란과 낯선 감각, 그것에서 오는 쾌락과 설렘을 사랑했다. 더이상 가정은 엄마가 유일하게 발 딛고 설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엄마는 어디든지 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