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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토리 Feb 25. 2021

나는 절대 엄마처럼 살지 않을거야

근본적으로 다른 두 인간의 같고 다른 사랑담

항상 입버릇처럼 달고 사는 말이 있다.

"나는 절대 엄마처럼 살지 않을거야!"


이런 말에 엄마는 항상 시니컬하게 웃으며 답한다.

"너랑 나는 근본적으로 너무 다른 인간이라 넌 나처럼 살 수 없어."


화통하고, 밝고, 매사 긍정적으로 사고하고 고민보다 행동이 앞서는 엄마와 다르게 시니컬하고, 어둡고, 생각이 많고, 매사 부정적인 나는 아마 죽는 날까지 엄마를 이해할 수 없을 테다. 우리는 같은 공간에서 숨을 쉬고, 함께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장을 보고, 대화를 나누지만 우리 사이에는 서로 절대 건널 수 없는 작은 강이 흐른다. 사람들에게서 에너지를 얻는 엄마는 항상 바쁜 사람이었고, 타인에게 건네는 조건없는 사랑으로 엄마가 입는 상처와 후회를 지켜본 나는 그 사랑과 베풂이 나에게 향하지 않는 것에 상처 입었고, 아팠고, 분노했다.


페미니즘을 공부하며 여성의 삶과 위치성, 경험에 관한 고민들로 머리를 쥐어짰던 그 찰나의 시간들에도 엄마의 삶에 대한 나의 이해도는 그리 높지 않았다. 나를 사랑해주지 않는 엄마가 미웠다. 엄마를 너무 사랑했기에 느꼈던 공백감을 이겨내기 위해 혼자 버텨야만 했던 시간들에 압도되며 엄마에 대한 분노감이 오랜 기간 내 가슴 한편에 자리하고 있었다. 사랑으로 반짝거리는 엄마를 볼 때마다 묘한 질투감이 들었다. 29년 동안 곁에서 경험한 엄마의 삶은 대체로 불행하고, 미련하고, 답답한 선택들의 연속이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의 중심에는 항상 엄마의 '연애'와 엄마에 대한 나의 일방적인 '사랑'이 있었다.


석사논문 주제로 이성애 연애를 선택하고 연애를 둘러싼 일련의 맥락들을 성찰하며 문득 엄마에게 연애란 무엇이었는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에게 사랑은 내 자아를 성찰하고 모든 일상의 중심에 놓일 수 있는 내 삶을 뒤흔드는 아주 중요한 부분이었다. 이 지점에서 나는 엄마와 닮은 듯 다른 지점이 있었다. 이러한 내 성향이 불안정한 내 환경적 요인에서 비롯된 건지, 원래 이런 성향을 가지고 태어난 건지 알 수 없었다. 이런 생각에서 비롯된 고민들이 논문 주제로 연결되면서 동시에 내가 사랑하는 또 한 사람. 엄마가 떠올랐다. 20대인 나의 연애와 현재 50대인 엄마의 연애는 무엇이 같고 다를까. 2020년대를 곧 30대로 살아갈 나와 2000년을 30대로 살아온 엄마의 연애는 무엇이 같고 다를까. 깊고 깊은 생각들이 연결되면서 어쩌면 '엄마'가 아닌 한 명의 '사람'으로서 상실에 적응하고 일상을 버텨온 원동력이 이성애 연애는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이성애적 사랑을 향해있는 엄마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나의 감정, 짝사랑, 외로움의 기억들을 벼려내고 정리하고 싶었다. 엄마와 나의 건조하고 메마른 관계 속에서 피어나는 스파크들에 대해 쓰다 보면 내가 엄마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혹은 엄마를 향한 나의 불편하고 불안하고 모순된 감정들을 깊이 있게 돌아보고 혼란의 감정들을 잘 벼려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나와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써내려가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


이런 다양한 맥락들을 짚고, 엄마를 다시 이해하기 위해서.

근본적으로 너무 다른, 그래서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갈 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결되어있는 엄마를 이해하기 위해서

엄마와 나의 이야기들을 정리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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