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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토리 Feb 25. 2021

"엄마는 왜 나를 낳았어?"

다시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나를 낳지마 엄마.

엄마의 연애를 이야기하려면, 먼저 아빠와의 연애담을 풀어야 했다. 매일같이 친구들과 술을 먹고 유흥문화를 즐기느라 집에 들어오지 않는 아빠를 기다리며 술잔을 기울이던 엄마의 옆에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왜 나를 낳았을까?' 입 밖으로 꺼낼 수는 없었다. 조용히 술잔을 기울이던 엄마의 얼굴에 그늘이 너무 짙어서. 내 질문이 엄마의 그늘을 더 어둡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에 다시 가슴 깊은 곳으로 질문을 넣을 수밖에 없었다. 그 질문은 내가 성인이 되어서야 입 밖으로 꺼낼 수 있었다. 내가 연애를 시작하고 성인이 되면서부터 엄마를 이해할 수 있는 폭이 조금 더 넓어졌다. 폭이 넓어지며 용기가 생겼다. 엄마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용기가.


건대의 한 맥주집에서 엄마와 술잔을 기울이다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엄마. 엄마는 왜 나를 낳았어?" 잠깐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보던 엄마는 씩 웃으며 "생겼으니까 낳은 거지!"라고 대답했다. 엄마는 꽤나 유복했지만 엄격한 집안에서 자라 본인의 자유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고 했다. 빡빡한 통금시간과 큰오빠의 감시 속에서 우연히 아빠를 만난 엄마는 길들여지지 않고, 자유분방하고 거친 아빠에게 매력을 느꼈다고 한다. 당시에는 피임에 관한 정보를 전혀 갖고 있지 못했고, 몇 번의 만남 끝에 덜컥 임신을 한 엄마는 임신중절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내 위로 오빠 혹은 언니가 있을 수도 있었다니!' 작은 충격이었다. 첫 임신중절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에게 내가 찾아왔고, 당시 연로한 남자 의사는 엄마에게 '이 아이도 지우면 앞으로 평생 임신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빠는 "내가 책임진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바로 엄마의 집으로 가 엄마의 엄마가, 엄마의 큰 오빠가 가하는 극심한 반대와 비난의 언어들을 그저 묵묵히 들었다. 23살밖에 안된 귀한 집 딸을 대책 없이 데려가겠다고 들어온 까맣고 인상이 더러운 남자에게 엄마의 엄마는 기함할 수밖에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아빠가 된 그는 무척 자상하고 따뜻했다. 딸인 나에게만. "여자는 공주처럼, 남자는 강하게!"를 모토로 아빠는 동생에게 무척이나 엄격하게 대했고, 가장으로서의 그 어떤 책무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 가정보다 의리가 먼저인 사람이었고, 돈이 생기면 친구들과 함께 유흥에 돈을 쏟아 넣기 일수였다. 기본적으로 나쁜 배우자의 조건을 모두 갖고 있던 사람이었다.


가끔 엄마와 대화를 나누며 농담조로 "아빠가 없으니까 하는 말이지만 아빠는 진짜... 쓰레기야"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나를 보며 엄마는 소리친다. "야!! 그래도 한때 내가 좋아했던 남자야 말조심해!!"


나는 엄마의 사랑과 선택을 이해할 수 없었다. 같은 시대를 살아오지 않았던 나는 피임법을 제대로 교육하지 않은 당대의 시대적 문화도, 엄마를 혼내며 임신중절을 두 번 하면 더 이상 임신을 할 수 없다는 말을 했던 연로한 남자 의사도 이해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자신의 몸에 대한 결정권과 선택권이 전혀 주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미치도록 끔찍했다. 그 생각에 미치자 그런 선택을 강요해온 구조적 폭력에 분노감이 들었다. 분노감은 다시 죄책감으로 바뀌었다. 그때 나를 낳지 않았더라면, 아빠와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엄마는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았을까? 그렇게 좋아하던 옷과 패션을 더 공부해서 디자이너가 되거나, 뒤늦게 들어간 대학에서 더 좋은 사람을 만나 예쁜 가정을 꾸린다거나 혹은 이모가 계셨던 미국으로 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다양한 기회들을 마주하게 되지는 않았을까.


다시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진심으로 엄마가 나를 낳지 않았으면 좋겠다. 엄마는 항상 이런 나의 말에 "난 널 낳은 것을 절대 후회하지 않아"라고 유쾌하게 말을 해주지만, 나는 그 유쾌함과 '후회하지 않음'이라는 말이 너무 아프다. 가끔은 엄마가 나를 돌봐주지 못했던 그 기간들이 생각나 서운함과 분노감이 들기도 하고, 여전히 가난한 월급쟁이인 내가 연애에 집중한다며 혼자 밥을 먹는 엄마를 두고 나오는 주말 오후의 데이트에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 엄마가 내 엄마라서 좋은 부분이 분명 있었지만, 아픈 기억들이 너무 많아서 '후회하지 않는다'는 엄마의 말이 때로는 밉고 아프다. 이런 나의 모순. 이런 나의 혼란. 오늘도 나는 여전히 '나를 낳지 않고 엄마가 더 행복한 자신의 삶을 살았다면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에 발목 잡힌 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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