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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미작가 Jul 31. 2018

낡은 양말의 기억

시간은 아픔을 조금도 삭이지 못했다


영화 ‘내 사랑’을 보고 나오니 눈물 콧물로 덩어리진 휴지 뭉치가 한보따리였다. 맙소사, 안 그래도 눈물 많은 갱년기의 나날들이건만. 두 주인공은 엄마 같고 아버지 같고 그랬다. 어느 화가 부부의 얘기가 내게는 떠나간 부모님 얘기가 되고 말았다. 


양말 한 쌍처럼 살자는 모드 루이스의 시큰한 한 마디.     


나는 12년 전에 아버지와, 5년 전엔 어머니와 이별했다. 시간은 아픔을 조금도 삭이지 못했다. 오히려 시도 때도 없이 소슬하게 쑤시고 욱신거렸다.     


막내딸은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빚을 안고 친정집으로 비루하게 들어앉았더랬다. 변변한 양말 한 켤레 벌벌 떨며 사지 못했던 지난날 나는 아버지 새 양말들을 얄궂게 내 남편에게 뺏어다 신기던 몹쓸 딸년이었다. 가난한 딸이 내어준 줄줄 흘러내리는 양말을 신고 날마다 출근하셨던 아버지.     


시간은 그 죄스러운 딸년의 마음을 조금도 삭이지 못한다. 오히려 회한과 슬픔은 이스트라도 넣은 듯 부풀고 있다. 그래도… 한 가지 잘한 일은 있다고 면죄부 한 장 끊어보고 싶다.     


아버지, 나 사위랑 도란도란 사이좋게 잘 살고 있어요.
딱 양말 한 쌍처럼요. 그거 하나는 잘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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