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다 뜨거운 패션이 있을까
지난겨울 나는 밖에 나갈 때마다 내 코가 내 귀가 떨어져 나간 건 아닐까 걱정이 들곤 했다. 유달리 앙칼지게 맵고 추운 겨울이었다.
"시방 이르케 춘 거 츰인디."
푸념하시던 붕어빵 할아버지의 코끝에도 추위가 매달려있었던.
고만고만한 살림을 사는 나는 난방비 걱정에 마음이 추웠더랬다. 대학에 입학한 아들의 등록금이 통장을 훑고 지나가면 또 춥고 승진은 고사하고 월급마저 동결된 남편의 처진 어깨를 보면 더 춥고 자영업 하는 친구들의 손가락 빠는 소리는 으슬으슬 등골을 시리게 했다.
추위를 몹시 타는 체질이지만 실내온도를 19도에 맞추고 우리 세 식구는 맑은 콧물을 졸졸 또르륵 흘리며 지냈다. 그러다 찾아낸 엄마의 뜨개 옷들. 굵고 투박한 실로 짠 조끼며 덧신, 스웨터, 쁘띠 목도리...
5년 전 엄마의 유품을 정리하며 챙겨 온 것들이었다.
옷에서는 노인의 냄새가 감실감실 났다. 퀴퀴하고 구수한. 나는 칭구야와 아들에게 주섬주섬 입혔다. 장모의 목도리를 앙당하게 두른 남편, 헐렁한 할머니의 조끼를 걸친 아들의 모습은 뭐랄까... 뭉근하게 아련하고 정다웠다. 나는 주먹 두 개 갑북갑북 호주머니에 넣고 엄마의 체온을 느꼈다.
엄마의 옷은 추운 세상 속에서 떨고 있는 나를 폭 안아주었다.
그래, 이것은 그래니 룩.
엄마의 옷을 할머니의 옷을 장모님의 옷을 입고 겨울을 거뜬히 난다면
이보다 세련된 패션이 있을까.
이보다 뜨거운 패션이 있을까.
나는 지독히 추웠던 지난겨울을 그렇게 무사히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