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다 사랑한다, 얘들아
야트막한 산 아래 외딴집에서 밭 일구고 마당 가꾸며 사시던 울 엄마는 진이라는 개 한 마리를 키우셨다. 밥도 나누어 잡숫고 똥은 대추나무랑 매실나무에 던져 거름으로 쓰고 동네 흰둥이랑 연애하는 것도 슬쩍 눈감아주고. 멀리 사는 딸네 집에라도 오실 때면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진이 밥 즘 챙겨줘라
철석같이 당부하셨다.
한 번은 동생이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데 계속 걸려오는 엄마의 전화 때문에 진행이 어려워, 학생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전화를 받았는데 한마디 후딱 하고 끊으셨단다.
"얼렁 가서 진이 밥 즘 챙겨줘라"
으슬으슬 춥던 2월 엄마가 돌아가시고 한동안 제 집에서 나오지 않던 진이는 먼 동네 사는 친척이 억지로 데려가 버렸다. 아파트 살이에 맞벌이에... 가족 누구도 진이를 보살필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이따금 내 마음속에서 진이가 짖는다. 컹컹컹...
미안해, 진이야. 미안해. 그곳에선 잘 살고 있니...
요즘 반려견은 우리 삶의 화두다. 여러 시각이 존재하지만 나는 어떻게든 진이 배곯을까 끼니 챙기던 울 엄마의 마음을 사랑한다. 식구가 아닌가. 때 되면 함께 밥 먹는.
강아지 보리 덕분에 팍팍한 취업 준비와 경제적으로 독립해야 한다는 초초한 마음이 조금은 가시고 행복하다는 대학교 4학년 조카에게서 얼핏 밥 즘 챙겨주라던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진이에게 못다 한 마음 세상의 모든 강아지들에게 보낸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얘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