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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키 Oct 31. 2023

굴빵을 아십니까

경상도 사람도 못 알아듣는 남편 사투리


남편도 나도 둘 다 너무 바쁜 시기가 있었다. 밥 할 시간도 없어서 배달음식으로 해결했다. 분리수거 못 한 쓰레기들이 집 한 구석에 쌓여갔지만 치울 시간이 없어서 흐린 눈으로 버텼다.

다른 건 그럭저럭 버틸만했는데 화장실 휴지가 똑 떨어졌다. 코로나 이후 화장지가 비싸도 너무 비싸져서 다른 건 아무 데서나 사도 화장지는 꼭 코스트코 제품으로 사서 쓰고 있었다.

코스트코 배달 서비스를 이용할 수도 있는데 달랑 화장지만 시키기엔 배달비가 너무 비쌌다. 평소엔 장바구니를 잔뜩 채워서 같이 시키는데 이번엔 너무 바빠서 온라인 장보기를 할 시간도 없었다.


결국 퇴근하고 집에 가다 아무거나 사야겠다고 생각하고 남편에게 문자를 했다.

나: 그냥 가는 길에 집 앞에서 휴지 사갈게

남편: 왜 코스트코 시키지

나: 아 장볼시간 없다 그냥 사갈게. 집 앞 휴지도 괜찮은 듯

남편: 굴빵하나

나: 굴빵? 그기 뭔데

남편: 굴빵하냐고

나: 설마 휴지 알 굵냐고??

남편: ㅇㅇ


세상에. 무슨 꿀빵 같은 굴빵이 있어서 사 오라는 줄. 경상도에만 30년 넘게 산 나도 못 알아들은 놀라운 그의 어휘력. 너무 웃겨서 주변 친구들한테 보여줬더니 역시나 아무도 알아듣지 못했다. 지금도 이때 대화를 생각하면 혼자 키득거린다.


근데 휴지 하나 사는데 알 굵기를 그렇게 진지하게 물을 일이야? 엉뚱한 데서 아주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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