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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초록 Oct 22. 2021

6화. 에린 브로코비치와 나의 수돗물 포비아

대국민팀플: 함께 분노해야 무사할 수 있다

브런치북 9회 응모작

대국민팀플

6화. 《에린브로코비치》와 나의 수돗물 포비아 




에린브로코비치와 나의 수돗물 포비아

  《에린 브로코비치》는 미국의 힝클리 주민 대 PG&E사 소송 사건을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의 이름이자 그 실화 속 신화적 주인공의 본명이다. 줄리아 로버츠가 주인공으로 분했던 실존인물 브로코비치씨는 1960년생으로 위의 소송사건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현재 변호사이자 브로코비치 리서치 앤 컨설팅의 대표가 되었다. 환경문제를 담당하는 변호사이자 컨설턴트로 활약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과거 사건 당시의 에린 브로코비치씨는 힝클리 지역에 들어선 PG&E사의 공장에서 유출되는 크롬 성분으로 인해 마을 주민들이 환경성 중대 질환을 얻었다는 것을 변호사 사무실에서의 조수 업무 중 우연히 알게 됐다. 이를 알게 된 에린과 에린의 상사였던 변호사 에드, 힝클리 주민들이 합심해 PG&E사를 상대로 싸움을 시작했다. 결국 손을 든 PG&E사는 자사의 모든 공장에서 중크롬을 사용하지 않고 모든 물탱크에 오염물질 누출 예방 조치를 하겠다고 나섰고 주민들은 피해보상을 받았다. 이 지난하고 힘겨웠을 사건의 전 과정영화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영화는 밀레니엄, 2000년에 개봉했다. 최초 개봉한지 20년은 족히 지난 오래된 영화인데 넷플릭스에 영화가 서비스되면서 최근 새로 접한 사람들이 줄을 잇는 모양이다. 2021년의 영화 후기가 새록새록 포털에 많이들 갱신되는 것을 보니 그렇다. 필자는 고등학생이던 2003년에 이 영화를 처음 보았다. 그 뒤로 단 한 번도 영화를 다시 본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인생 전반에 걸친 화두로 남을 만큼 힝클리 주민들의 이야기는 강렬하게 다가왔다. 사건을 두고 주민들의 비극이라 불러야 할지, 그럼에도 거대 기업을 상대로 한 싸움에서 신화적으로 승리한 쾌거, 성공담이라 명명해야 할지 그 성격을 정의하는 것이 망설여진다. 단지 영화 속에만 존재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의 사건을 다루었다는 점에 조심스럽고 여전히 세상 모든 곳에서 제2, 제3의 힝클리 주민이라 불리울 법한 피해자들이 양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2021년 현재까지도 우리 일상에 도사리며 실재하는 생명의 위협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자본에의 욕망으로 인간과 환경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이들이 있다는 것, 그들의 욕망으로부터 세상 그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는 것. 그 사실에 일찍 눈 뜰 수 있게 해주어 고맙다는 이야기를 영화의 제작팀과 배우들, 에린 브로코비치씨와 그 동료들, 무엇보다 아픈 몸을 이끌고 싸워주었던 힝클리 주민들에게 전해야 할 것 같다.

  영화를 본 후로 수돗물을 마시지 않게 되었다. 불신이 생겼기 때문이다. 직접 요리하지 않는 식사도 있으니 아예 피하기야 어려웠지만 스스로 요리할 때에나 마실 물을 챙길 때에는 의식적으로 수돗물은 피했다. 환경을 생각하자면 생수보다 수돗물을 정수하는 편이 좋지만 영화 이후의 나는 이전과는 다른 공포를 가진 사람이 되었고 한 번 생겨버린 경계심을 떨쳐버리기 어려웠다. 생수를 마시기 시작했고 가족들에게도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해댔다. 주문하는 생수의 종류도 가끔 바꿔주었다. 하나의 수원지에서만 물을 공급받지 않기 위해서였다. 지금도 마시던 생수 라벨지에서 수원지가 어디인지 확인하곤 한다. 얼마나 그 지역이 안전한 수원지인지 정보를 확인할 수 없는데도 습관적으로 눈길이 간다. 나와 같은 습관을 가진 이를 딱 한 번 만난 적 있다. 그는 중학생 딸과 아내를 둔 가장이었는데, 온 가족이 마시는 식수원을 한 달에 한 번은 바꾼다고 했다. 주로 외국산 생수를 구입했다. 스위스, 피지, 영국 … 그 집에 방문할 때마다 실제로 대접받는 물의 종류가 달랐다. 그의 직업은 의사였다. 그가 이런 습관을 가지게 된 기원을 미처 묻지는 못했다.      


바람 속에 죽음이 실려 있다는 사실을

  작년과 올해에는 코로나로 영화관에 자유롭게 다니지 못하게 되어 자동차극장에 가끔 들렀다. 철 지난 특선영화로 상영해주었던 《말모이》를 한 번 보았고 새 개봉작으로는 《삼진그룹영어토익반》을 보았다. 원체 믿고 보던 고아성 배우가 출연하고 마침 관심 가던 이솜 배우가 출연한다 해서 내용도 모르고 일단 갔다. 내 인생의 두 번째 에린브로코비치 영화인 줄은 모든 자동차의 불이 꺼진 다음에야 알았다. 데리고 간 어린 동생은 영화를 지루해했다. 조수석에서 자꾸만 핸드폰 불빛이 짧게 또는 길게 점멸했다. 어린 너라도 두려운 것들을 모르고 크니 차라리 나은가 싶다가도 나의 입안은 까끌하고 씁쓸했다. 이런 세상에 널 살게 하다니. ‘역시 인생에 방심이란 없지.’ 생각했다. 계속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보라는 뜻으로 세상의 위험과 부조리를 확증 편향할 수 있게 하는 자극이 자꾸만 내 눈앞에 던져지는 건지, 그냥 세상이 이렇게 험하고 못 믿을 곳인지. 아마도 전자이면서 동시에 후자일 것이다. 

  2021년 현재, 비료공장의 연초박(담배 찌꺼기)이 원인이 되어 집단 암 발병을 불러온 익산 장점마을 피해 사례가 연일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 비료공장은 2001년 세워졌고 주민들의 고통은 2005년 즈음부터였다고 한다. 21년 10월 기준 마을 주민 90여 명 중 40여 명에게 암이 발생했고 17명이 사망, 23명이 투병 중이다. 그러지 않기를 바라지만 피해 규모는 시간이 갈수록 더 커지고 비가역적일 개연성이 크다. 2018년의 기사에는 80여 명의 주민 중 30여 명에게 암이 발생하고 16명이 사망했다고 적혀있다. 3년 새에 확연히 달라진 수치는 그저 숫자가 아니라 스러져간 시민의 생명이다. 주민들은 KT&G에 대한 국정감사를 요구하고 있으며 전라북도와 익산시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진행 중이다. 민사조정 과정에서 피해자와 유족 등 관련 주민들은 150억 원대 규모의 배상액을 요구했고 전라북도와 익산시 측에서는 그보다 훨씬 적은 액수를 주장해왔는데 최근 50억 원 배상에 주민들이 합의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고령에 병을 앓고 계신 분들도 많고 더 긴 소송 과정을 버텨 결과를 보기 힘들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들도 함께 기사들 속에 적혀 있다. 

  논란이 현재 진행형인 지역으로는 청주 소각장 피해 지역인 북이면과 동해시의 송정동, 인천 왕길동의 사월마을 등도 있다. 2021년 9월에는 60여 명의 주민들이 집단으로 암에 걸린 청주 소각장 피해 지역 북이면에 환경부 장관이 방문했다는 기사가 보도됐다. 같은 해 5월 환경부는 북이면 주민들의 집단 암 발병과 소각장 오염물질 간 역학적 관련성이 없다는 환경영향평가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보도되어 알려진 피해 사례들이 적지 않지만 전수가 아닐 것이라고 본다. 수면 위로 문제가 아직 떠오르지 않은 잠재적인 위험, 피해가 숨죽인 곳들을 더 찾아내자들면 아마 그 결과는 충격적일 거라고 확신한다. 정의와 안전망이 소거된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는 엄중한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나는, 나의 터전은, 나의 일상은 안전할 거라는 막연한 믿음과 느낌은 완벽한 착각이다. 아무런 근거도 개연성도 없는 모래성 위에 우리는 발을 딛고 살아가고 있다. 이럴 수밖에 없는 걸까? 

  한국일보는 지난 10년간 공장 유해물질 배출 등 주변 환경오염에 따라 정부에 건강영향조사를 청원했던 전국 8개 지역을 모두 현장 취재했다고 2021년 8월 30일자 기사에서 밝힌 바 있다. ‘국가가 버린 주민들’이라는 시리즈형 기획 기사다(https://www.hankookilbo.com/Series/S2021082014390002684?Page=2). 

2021년 8월 30일부터 2021년 10월 7일에 이르기까지 총 16편의 현장 취재 및 실태 분석 기사가 보도되었다. 대국민팀플에서 이 의제를 다룰 프로젝트 팀이 발족한다면 한국일보의 기사 16편을 전부 프린트해 이것 먼저 정독하고 시작해야겠구나 싶을 만큼 피해 지역의 실태, 관련법과 규제의 미비, 정부의 외면과 무책임한 기업의 콜라보, 환경오염이 오롯이 수도권 외 지역에 떠넘겨지는 불평등과 부조리 등 현존하는 문제점들을 적확히 깊이 짚어내고 있다. 

  필자는 올해 여름 새 거주지, 새로운 도시로 이사했다. 원하는 거주 형태, 주변 환경, 치안, 건물의 연식, 주차 문제, 일조량, 창밖의 풍경, 예산, 가족의 거주지와의 거리 등등 매물을 보러 다니면서 고려할 것은 열 손가락으로도 모자랐다. 약 나흘 동안 집을 스무 개는 돌아봤다. 그 과정도 고됐지만 실은 그보다 앞서 꼬박 석 달 넘게 부동산 어플을 네 개씩 깔아두고 전국 지도와 매물을 들여다보느라 애를 썼다. 프리랜싱 형태로 일하기 때문에 직장을 거점으로 거주지를 정해야 하는 상황은 아니었다. 아직 학생 신분으로 한 학기가 남았지만 수업은 비대면으로 이뤄질 공산이 컸다. 어디든 살고자 하는 도시를 선택해 이주할 수 있었다. 도시를 정하는 일이 앞선 과제였던 셈이다. 서울, 분당, 판교, 경기 광주, 용인 정도를 후보지로 놓고 고민했다. 수원과 이천도 후보지에 있었지만 제일 먼저 제외했다. 이천은 애써 찾아보지 않아도 알고 있을 정도로 큰 규모의 공장이 많이 들어선 곳인 점이 걸렸고 수원은 집을 알아보던 당시 우연히 수원 영통의 소각장 문제를 기사와 주민 커뮤니티를 통해 접하게 됐다. 모르고는 가도 알고는 가기 힘들었다. 

  6년 전쯤 소각장과 맞붙은 아파트에 이미 살았던 경험이 있다. 나의 반려고양이는 올해로 여섯 살이다. 그 애가 0세에서 2세, 인간으로 치면 갓난아이 시절부터 몸이 전부 자라는 성장기 전부를 그 집에서 함께 살았다. 거주기간 1년을 채우고 동시에 그 애가 한 살이 되었을 무렵부터 나의 고양이는 기침 발작을 시작했다. 높은 층이라 앞뒤가 탁 트여 있어 늘 맞바람이 치게 창을 열어두었다. 항상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지냈다. 어느 날의 봄바람, 여름날의 산들바람 속에서 고양이도 편안한 낮잠을 오래 즐기곤 했다. 그 바람 속에 독이 실려 오는 줄도 모르고. 

  천식이 발병하는 고양이가 드물다고 한다. 가는 병원마다 그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인지 그때 거주하던 지역에서는 병원을 네 곳이나 전전했는데도 수의사들이 내 고양이의 기침을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픈 고양이를 데리고서 장장 네 시간을 달려 수도권의 유명한 병원에 올라오고 나서야 천식 진단을 받았다. 여섯 살인 지금까지 나의 고양이는 매일 기관지 확장을 위한 흡입형 스테로이드제를 투여 받으며 지낸다. 하루라도 거르면 다음날은 어김없이 기침발작이 시작된다. 나는 이미 다 자란 성인이었으니 이미 안 좋은 기관지가 좀 더 안 좋아진 것 말고는 새로운 질병이 생기진 않았다. 다만 고양이든 강아지든 인간 아이든 갓 태어난 생명이 그곳에서 폐와 심장, 호흡기가 자라나는 기간 동안 거주했다면 어떤 종류이든 호흡기 질환을 얻었을 거라고 추측할 수 있었다. 물론 원인은 불명일 것이다. 이미 그 아파트를 선택할 때의 나도 에린 브로코비치를 미리 봐놓고 생수 사먹는 인간이었는데 왜 선택에 있어서 안일했을까. 오염된 폐수가 콸콸 흘러나오는 화학공장만 생각했지 공기 중에 떠다니는 오염물질의 파괴력까지는 미처 고려하지 못했다. 공기는 피할래야 피할 방법조차 없는 거였는데. 

  이제는 창문을 활짝 열어두지 않는다. 하나씩 잃어간다. 자유롭게 안심하고 물을 마시지도 사계절의 바람을 즐기지도 못하는 인생이 되어간다. 빼앗기는 것은 어째서 나 개인이어야 하나. 개인이 삶의 조각을 하나씩 내주는 것 말고는 나와 가족을 지키는 방법이 없는 걸까. 하나씩 내어주다 결국은 더 이상 내어줄 것이 없으면 포기하고 살다 병에 걸리고 아프고 죽어야 하는 걸까. 이런저런 이유로 도시들을 하나씩 제해보았지만 어차피 종국에 거주지로 정한 곳도 얼마나 안심할 수 있는 곳인지는 전혀 모른다. 모를 일이다. 우리가 알 수 있도록 애초에 공개된 정보 자체가 없다. 스스로 어떤 시설이 들어와 있는지를 알아보는 정도가 할 수 있는 전부다. 그 시설들이 어떤 물질을 다루고 있고 어떤 피해를 입힐 수 있는지에 대해서 일반의 개인이 가늠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 데이터 저널리즘과 빅데이터가 화두인 시대에 관련 빅데이터가 이미 수집되어 있기를 바라지만 그런 건 없었다. 공공기관에 문의해도 그런 건 아예 조사 자체가 안 되어 있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한국일보의 시리즈 기획 기사에서도 피해지역과 피해자 등 관련 데이터와 통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언급이 등장한다. 

  그나마 민간에서 만들어 제공하는 서비스 중 우리동네위험지도라는 어플리케이션이 하나 있다. 2015년에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일과건강(http://safedu.org/)이 만들어 일반에 공개한 서비스다. 2015년 당시에는 전국 사업장의 채 20퍼센트도 안 되는 업장만이 위험물질 사용 관련 정보를 공개하는데 동의했다고 한다. 현재 어플리케이션을 검색해 확인해보니 최종 업데이트 일자가 2018년 11월 14일이다. 최초 공개되었던 때로부터 정보 공개 기업이나 공장의 수가 늘었겠지만 여전히 전수에 가까운 빅데이터를 모으기 위해서는 긴 시간과 많은 인력, 비공개 기조를 유지하는 기업들과의 지난한 줄다리기가 필요한 실정일 것이다.     

          

일단은, ‘우리 동네’ 위험지도를 100% 완성해보면 어떨까

  대국민팀플에서 작전명 에린브로코비치를 진행한다고 상상해보자. 전국에서 팀플러가 넉넉히 모였다고 일단 전제하겠다. 도시별, 구별, 동네별로 팀과 인력을 나누어 우리 동네의 환경 안전상 위험 요소가 되는 사업장과 시설들을 전부 리스트 업하고 관련 정보가 공개되어 있는 곳은 그 정보를 적어주고, 미공개 업장과 시설에는 정보 공개를 요청한다. 끝내 회신하지 않는 곳은 정보 확인 실패라고 일단은 적는다. 끝날 때까지 끝이 아니라고 하지 않나. 

  실패했다면 실패한 과정을 적자. 대국민팀플의 정신은 한 번에 성공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성공할 때까지 성공하기 위한 방법을 짜내고 실행하고 또 실행하는 것이다. 실패의 과정도 적어 넣어서 다음번에 이 일을 이어받는 시민을 위한 이정표를 남길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이번에 정보 공개를 거부했더라도 더 많은 시민들이 함께 정보 공개를 요구하고 또 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버리면 버티기 힘들다. 대세적 흐름을 만드는 것이 그래서 중요하다. 시민들이 가진 힘이란 하나뿐이다. 함께 하는 것. 개별의 시민 각각은 약할 수 있어도 의지를 가진 다수는 다르다. 그것만큼 무서운 게 없다. 조직적이고 끈질긴 관심과 요구. 이것만이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다. 

  업장과 업장 별로 다루는 위험물질의 완성 목록을 일반에 공개할 때에는 목록의 위험물질들 이 건강, 환경상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첨부하는 것이 좋겠다. 우리동네위험지도 어플리케이션에도 이 부분이 정리되어 있다. 정보는 오픈소스로 공개해서 여타의 시민이 아직 정보란이 비어있는 업장 관련 정보를 새롭게 얻었거나 혹은 내부인이라 이미 정보를 지득하고 있다면 누구나 적어 넣어 편집할 수 있게 만들어둔다. 여기까지가 1단계다. 아, 공개한 업장의 정보를 적을 때에는 담당자와의 핫라인도 공개하고 싶다. 단발성이 아니라 언제든 누구든 그들의 윤리적 경영과 운영 현황을 궁금해 할 수 있다는 걸 책임자들에게 알게 하고 싶기 때문이다. 여기서 시작해 나중에는 아예 기업에서 시민들의 이러한 궁금증에 응대하고 매년 환경과 건강 관련 영향 보고서를 자체적으로 만들어 공표하는 업무를 담당할 담당자, 담당부서를 만드는 것이 한국에서 기업하는 이들의 표준이 되기를 바란다.

  그 다음은 완성된 목록을 바탕으로 각 업장마다 오염물질 정화시설이나 처리시설, 해결방안이 존재하고 또 잘 가동되고 있는지를 확인한다. 알아낸 현장의 미비한 점, 혹은 잘 하고 있어 다른 기업들에게 본이 될 부분이 있다면 그 지점까지도 꼼꼼히 기록하고 동시에 업장 주변 주민들의 피해 사례가 있는지 온라인, 오프라인의 인력과 홍보수단을 총 동원해 업데이트해야 한다. 이 과정들은 단순히 업장 리스트, 배출하는 오염물질 등의 정보를 아카이빙하는 앞선 단계보다 훨씬 더 어려울 것이다. 그간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활동가들과 언론, 지역의 인적 인프라와 협업하지 않고서는 일반 시민들끼리 해내기는 힘든 일일 수 있다. 잠깐 호흡을 고르며 생각해보는데 말이지. 여기까지만 성공해내더라도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이뤄낸 것일 테다. 한국이 생긴 이래 지금까지도 안 된 걸 과연 얼마나 걸려서 해낼 수 있을까? 그래도 이 좁은 땅 덩어리에서 어디 오염되어서 더 이상 사람이 못 산다고 버리고 떠나고 또 버리고 떠나고 그러다보면 결국 남는 땅이 있기는 하려나 싶으니 한국의 유사 이래 내내 안 되었던 일이라도 이제는 되어야만 한다. 되게 만들어야 한다. 좀 해보자. (연경神이시여…) 

  뭐, 솔직히 이 책에서 내가 꿈꾸고 바라는 모든 일이 다 어렵다. 한 10년 전에 말 꺼냈으면 허황된 상상, 공상으로 치부하고 넘어갔을 수도 있다. 하나라도 이뤄지면 기적인가 싶은 것들을 적어놨으니 굳이 덜 어렵다, 더 어렵다 얘기하는 자체가 의미 없는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대국민팀플이란 정말로 (참여가 가능한) 우리 국민 모두가 함께 하는 팀플을 상상하고 만든 프로젝트다. 협업 과정에서 어디의 누구까지 등장할지는 모를 일이다. 초등학생까지는 상상 안 해봤고 한 중고등학생 정도는 상상해봤다. 청년들, 각계각층의 전문가 집단은 물론이고, 부모님들과도 얼마든지 함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연예인들도 혹시? 생각해봤고 정치인은 글쎄… 그들에게 큰 기대는 안 하게 되지만 뭐 극단적으로 대통령이 등장한대도 시민의 한 명이고 팀플러로서 제 몫을 하고 떠나면 그뿐인 것 같다. (누군가의 등장과 그의 쓰임을 상상하는 일은 이 책을 쓰면서 얻는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앞의 단계까지 이뤄냈다면 그 다음은 현존하는 관련 현행법과 규제를 총 망라해 검토하는 단계다. 전문가들이 대거 등장해주셔야 한다. 검토해봤더니 있는 법과 규제가 유명무실하다면 다시금 생명을 불어넣어 주어야 할 것이고, 있어야 하는 법과 규제가 영 없고 일천하다면 새로 만들자고 해야 할 것이다. 우리 팀플러들은 정말로 성격이 급한 것이 특징이니 몇 년씩 기다릴 수는 없다고 하자. ‘빨리빨리’가 어쩔 수 없는 한국의 정신이라면 좋은 데 선순환 해줘야지 않겠나. 현재로서는 화학물질등록평가법, 화학물질관리법, 화학제품안전법 등이 있고 각 지자체마다 지역 내 화학물질 관련 알권리를 위한 조례를 제정했거나 제정을 준비하고 있는 곳들이 꽤 된다. 이미 조례가 제정되어 적용 중인 대표적인 지자체에는 수원시(http://kfem.or.kr/?p=158777)와 인천시 등이 있다. 수원시의 조례 제정은 2016년 3월의 일이다. 2014년 수원 삼성전자 본사와 삼성전기 단지가 있는 수원 원천리천에 삼성전자 본사 중수도처리시설 공사 중 독성물질이 포함된 폐수가 잘못 방류되어 물고기 1만여 마리가 집단폐사하는 화학사고가 그 계기였다. 미국은 이미 1986년 "비상대응계획 및 지역사회 알권리법(EPCRA)"을 제정하여 매년 지역비상대응계획(ERP)을 수립하고 지역주민에게 보고하도록 의무화했다고 한다. 팀플러들이 업장, 업장별 오염물질, 적절한 처리시설의 유무와 운영실태 등을 아카이빙하면서 지자체별 조례 제정 여부도 함께 정리하면 좋을 것 같다. 다들 내가 사는 지역의 현 상황을 알고서 필요한 다음 스텝을 빨리 밟을 수 있게.  

  여차저차해서 있는 법 더 발전시켜 개정하고 없는 조례 새로 만들고 했으면 이제 어떻게 그 법과 규제가 ‘유명유실’해지도록 할 건지 정부의 담당 부서와 담당자에게 또 묻자. 질문은 정말 멋진 것이다. 엄청난 힘을 가졌다. 묻고 또 묻고 묻다보면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무엇이 부족한지, 문제 해결 과정에서 결핍된 철학과 신념과 구체적 절차가 무엇인지 보인다. 투명하게 관리하고 감독하고 읽기 쉽고 핵심이 잘 정리된 보고서를 만들어서 국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사이트라도 하나 열어 올려달라고 하자. 그리고 자주 모이자. 온라인도 좋고 오프라인도 좋으니 자주 모여서 떠들자. 무엇은 잘 되고 있고 무엇은 잘 안 되어가고 있는지 자주 다 같이 짚어내는 자리를 마련하자. 만민공동회 하자는 얘기다. 취미 삼아 다녀오기 딱 좋은 정도로 숱하게 열렸으면 좋겠고, 이왕이면 인포테인먼트의 속성을 가지면 좋겠다. 재밌게. 계속 하고 싶게. 

  그리고 말이지. 뭔가 잘못되어 갈 때 미리 감지하고 위험을 알려달라고 하자. 예방인력 좀 빡세게 쓰시면 얼마나 좋게요(?) 진짜. 이게 ‘관리’, ‘감독’ 아닌가? 솔직히 말이 되느냐 말이다. 잘못되지 않게 미연에 관리 감독하고 예방해야 했는데 실패하고, 위험요소가 전부 유출되는 동안 내내 모르고 (혹은 같이 덮어주고), 주민들이 병에 걸려 사망에 이르기까지도 그 원인 파악도 못하고, 집단으로 병에 걸려 사망자가 속출하는 지경에 이르러 대대적으로 보도될 때까지 아무 것도 안 하고. 익산 장점마을만 해도 20년이다. 공장이 생기고 지금의 비극에 이르기까지 20년이 있었다. 그동안 누가 무엇을 했는가. 나라가 있으나 없고 시민을 위해 일하는 자가 있으나 없다. 그것이 우리가 처한 현실이다. 그래서 결국 이렇게 총대 메고 시민들의 점조직 활동을 장려하는 나의 일천한 글이 생산되는 지경에 이르렀잖나 …     

 

전 안 미쳤고요불청객 스티커 미리 만들 거예요

  생각했던 것보다 글이 너무 길어졌다. 작성하면서 읽고 알게 된 것들을 다 속 시원히 넣자면 이 주제 가지고 그냥 따로 책을 쓰는 게 현명하지 싶은데 그건 여태 이 문제에 종사해오신 전문가분들이 계실 테니까, 아마 좋은 책도 이미 있을 테니까 얼추 여기서 슬슬 마무리를 해야겠다. 그래도 일단 또 궁금한 건 못 참으니까… 검색해보니 화학물질관리법에 대해 설명하는 책들이나 우리 주변 생활 속 화학 물질의 위험에 대해 다룬 책들이 주로 보인다. 2015년 이후 지금의 알권리 조례 제정 등에 이르기까지 일과건강(건강과생명을지키는사람들), 화학물질감시네트워크 등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한 시민들의 역할이 지대했다. 그간 해오신 일들을 담은 르포 형식의 책이 있으면 좋을 텐데, 단순검색으로는 아직 없는 것 같다. (혹시 출간하셨는데 필자가 발견을 못 했다면 누가 귀띔 좀 주세요) 유투브 채널은 있을까 해서 들어가 보니 개설 되어 있다. 아직 구독자가 120명이다. 짜장면 배달보다 더 신속, 정확하게 급파되어야 하는 게 시민사회의 힘으로 이뤄낼 수 있는 사회 여러 문제들에 대한 문제의식과 해결방안, 그래서 해결해낸 성공담이다. 고전적 분업 방식의 컨베이어 벨트 위에 나는 시민들과 함께 할 팀플 꾸러미들을 올리고 싶다. 

  한국 대표 포털들이 카테고리 하나씩만 뚝 떼어서 시민사회에 기증하면 얼마나 좋을까? 팀플러들과 함께 현황을 아카이빙하고 후속 상황도 계속해서 팔로업하는 홈페이지, 어플, 유투브 채널 등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는데, 문제는 또 유입되어 볼 수 있는 사람만 보고 그 정보에 접근이 가능한 사람만 알게 되고 몇 번의 클릭과 유입 단계를 거치고서나 들어오게 되는 거니까 종국에는 모두들 덜 찾아오게 된다는 점이다. 다들 바쁘고 정신없는 현대인인데 당연하지. 그러니까 필자는 솔직히 포털에 대국민팀플 카테고리 하나 내주시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시급한 사회 의제란 하나 만들어서 시민들이 직접 운영할 수 있도록 자리를 내주면 좋겠다. 이런저런 기부 활동 같은 CS도 좋지만 이게 바로 포털만이 할 수 있는 진정한 사회 환원 아닐까? 아마 안 해주겠지만… 유투브 채널 짜하게 만들어서 사람들 유입 열심히 하는 수밖에. 

  이미 꾸준히 맞는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는 시민사회단체들이 존재하는 가운데 여전히 문제의 궁극적인 해결에 이르기까지 시간이 너무나 많이 걸리는 이유는 의제가 대중적인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 자체도 어렵고 그 관심을 유지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일반 시민단체는 언론 등 개별 시민에 대한 접근성 인프라가 없고 힘과 자본으로 그 부재를 커버할 수도 없다. 사람들이 연일 오징어게임과 BTS의 성공에 대해서는 잊지 않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특별히 그 이슈에 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계속해서 보여주기 때문에 이루어지는 현상이다. 모든 시민이 사회적 의제에는 단지 반짝하는 관심을 가지고 말 뿐이라는 자조 섞인 비판적 평가는 사실 옳지 않다. BTS랑 오징어게임 기사 양산하는 것만큼 계속해서 보여주면 내 인생 내 건강 내 나라 내 땅이 걸린 문제에 과연 그만큼 관심을 안 보일 수 있을까? 2015년 9월 30일에 일과건강의 현재순 기획국장이 작성한 글 속에는 이런 내용이 들어있다. 친 감시네트워크 활동에 많은 언론이 함께 했었다. 하지만 그 어느 때 보다도 의미 있는 이번 캠페인은 어찌된 이유인지 단 1곳도 보도되지 못했다. 취재요청과정에서 한 언론사 데스크가 보여준 모습에서 알권리법 제정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보도기획서를 제출한 기자에게 돌아온 말은 ‘너 미쳤어’였다고 한다.”   

  “너 미쳤어?” 라는 말을 들었던 그때 그 기자는 지금도 그때와 같은 사명감을 품은 채 일하고 있을까. 그 말을 했던 데스크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을까, 아니면 더 높은 자리로 승승장구 했을까. 

 사고 예방을 위한 현황 아카이빙과 법 개정, 조례 제정 등의 과제만큼 중요한 양대산맥의 한 편은 이미 일어나고 드러난 환경성 암 질환 등 피해 사례를 한 데 모으고 아직 드러나지 않은 사례들을 계속해서 발견해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례들이 해결되어가는 후속 상황을 다각적으로 꾸준히 따라붙어 팔로업해야 한다. 이미 피해를 받은 이들이 있고 그 사례가 드러났기 때문에 “다행이다, 나는 이 상황을 겪지 않았구나. 이번에도 나는 피해갔네.”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건 착각이다. 우리는 전혀 안전하지 않다. 유야무야 넘어갈 수 있다면 그 다음이 또 있다. 그 다음의 피해자가 나 혹은 나의 가족이 아니라는 보장은? 일을 가능하면 최대한 크게 키워서 시끄럽게 만들어야 한다. 그 기업이 다시는 회생 불가능할 만큼 징벌적 배상을 하도록 해야 한다. 

  “잘못 관리해서 국민들을 피해자로 만들었다가는 패가망신하는구나.” 라는 말이 입에서 절로 나오게 해야 한다. 망하고 싶지 않으면 그 뒤로 알아서 잘 할 것이다. 세상이 자본 논리로 돌아간다면 똑같이 그 논리 위에 탑승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게 빠르다. 계속해서 힘과 자본으로 가해자가 회생하는데 문제가 없는 사회라는 시그널을 주고 있기 때문에 똑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이다. “한 놈만 조지자.” 상스러운 표현을 적어서 송구스러우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정신이다. 온 국민이 달려들어 용서는 없다는 시그널을 정확히 전송해야 한다. 

  우리동네 위험지도나 예방 아카이빙보다 당장의 파괴력이 더 클 방법은 일단 이거다. 자신들이 가진 힘, 자본, 권력과의 유착 같은 것들이 시민들의 눈, 시민들의 목소리보다 사업을 이어가는데 유효한 무기였기 때문에 계속해서 이런 일을 벌일 수 있다. 그러나 그들도 나라 없이 국민들 없이 사업은 못 한다. 집요하게 쫓아가서 응징해야 한다. 나는 그냥 아무 것도 아니다. 반기업정서를 가지고서 특별히 대립각을 세워본 일도 없고 천성적으로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느라 바빠서 부끄럽지만 시민사회에 기여한 바도 크게 없고 별명은 자본주의의 총아다. 왜 이런 쓸데없는 설명을 하느냐고? 역시 쓸데없을, 무의미한 ‘어그로’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나는 그런 소모전이 정말 싫다. 목표를 향해 정진하는데 필요 없고 쓸데없는 것들은 모조리 사절이다. 내 생활과 내 건강, 내 나라 환경 지키겠다는데 거기다 대고 기업 친위부대 세우지 말자. 불청객 스티커 만들어놨다가 이마에 붙여드릴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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