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초록 Oct 22. 2021

5화. 무엇을 원하면 무엇을 해야 한다

대국민팀플: 툰베리와 얼룩소와 팩트체크넷

브런치북 9회 응모작

대국민팀플

5화. 무엇을 원하면 무엇을 해야 한다.     




겁이 좀 나고 좀 귀찮기도 하고 바쁘기도 하고

  대국민팀플 프로젝트를 떠올린 건 벌써 10년이 다 됐다. 속으로만 상상하던 것을 글로 적으려니 생각보다 용기가 더 많이 필요했다. 타이밍도 참 얄궂지. 설상가상 누가 지나가는 말로 이렇게 인터넷 게시물을 써놓은 걸 봐버리기까지 했다.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은, 그래서 거기 뛰어드는 무모함은 자기애 과잉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말을 듣거나 보고 나면 솔직히 혹한다. ‘그렇지. 그게 맞을 걸? 내가 아니어도 되는데 왜 이런 걸 쓰고 있지? 그냥 편한 마음으로 편하게 살면 안 될까?’ 실은 바로 이 생각에 10년을 주저앉아 있었다. 그런데 10년째 마음이 안 편하더라.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을 보면서 10년째 괴로웠다. 그래서 결국 더 뭉개고 앉아있질 못하고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는데 매순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관전이나 하길 바라는 내면의 관성이 심각하게 힘이 센 모양이다. 어쩌면 그만두기를 바라는 것 같다. 자꾸만 의기소침해지고 우울해지고 나 자신이 모자라 보인다. 여기서 멈추면 결국 또 후회하면서 10년을 보낼 거면서. 가끔 생각하는 건데, ‘나’는 어쩌면 내 편이 아닐지도 모른다. 아마도 ‘나’의 전략일 것이다. 용기를 북돋기보다 주저앉혀 이 한 몸의 보신을 꾀하고 이기적이고 안온한 일상을 영위하게 만드는 것. ‘나’는 그것이 실은 나를 위한 일이라 생각하지 않을까. “세상이 바뀐다고 네 인생이 바뀌는 건 아니야. 그러니까 너나 잘 살아. 국으로 입 다물고 조용히 살아.” 머릿속에는 아마도 두 명의 내가 사는가보다. 하나는 이 글을 끝까지 마치고 싶고, 그로 인해 무언가 정말로 변하는지를 오래 바라보고 싶으며 다른 하나는 《대국민팀플》 폴더를 아예 삭제하고 싶어서 아우성이다. 정말 시끄럽다.   

  어떻게 보면 이 책 《대국민팀플》은 단순하기 그지없다. 바꾸고 싶은 이 세상의 흉하거나 아직 부족한 면면들을 적고 말이 되거나 말거나 ‘이렇게 하면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상상했던 아이디어를 때려 넣고 세상 어디선가 똑같은 답답함이나 분노를 느낀 사람, 나처럼 무언가 시도해보고 싶었던 사람에게 함께 해보자고 러브콜을 보내는 게 전부다. 혼자서는 안 될 게 뻔하니까 머리도 목소리도 좀 합쳐 보자고. 철문 하나를 부수는데 1명이나 10명이서는 절대 안 될 일인지 몰라도 천 명, 만 명이서는 쉽게 가능한 거 아닌가. 대국민팀플을 한 마디로 설명하면 딱 이거 한 줄이다. 해보고 안 되면 진짜 그때는 ‘아, 안 되는구나. 세상일이라는 게 우리 맘대로 되는 게 정말 아니구나.’ 하고 깨끗하게 포기하고 내 인생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안 해봤으니까. 아직 안 해봤으니까... 해볼 수 있는 게 있는데 방관하고 미리 포기하고 손 놓은 거 같아서 죄책감이 드니까. 그래서 쓰는 건데. 그게 다인데 왜 이렇게 고민이 되는지, 겁이 나는지 모를 일이다. ‘이 콘텐츠를 계속해서 끌고 가는 게 맞나? 책임 질 수 있나?’, ‘내가 뭔데?’, ‘이게 정말 되나?’, ‘전문가들이 알아서 할 일을 내가 뭐라고 이러고 있지’ 등등 온갖 잡생각이 다 든다. 써놓고 무슨 말을 듣게 될지 지레 겁도 나고 ‘모두들 생각이 다른데, 누군가는 세상이 이렇게 변하는 걸 바라지 않을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자문하기도 하고.       


그래도 진리를 믿고서희망은 항상 국민으로부터 온다

  이런 못난 생각이나 하면서 침대를 뒹굴었다. 손에는 핸드폰. 오늘자 기사들을 뒤적이는 중이었다.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씨가 오늘도 이런저런 치들(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등이다)에게 호통을 쳤단다.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기후를 위한 청년 정상회의’에서였다고 한다. “보다 나은 복구 어쩌고 저쩌고, 녹색 경제 어쩌고 저쩌고, 2050년까지 탄소중립 어쩌고 저쩌고. 우리는 소위 지도자들이라고 불리는 사람들로부터 이런 말들만 들어왔다.” 이 친구가 헤드라인을 장식하면 홀린 듯 꼭 기사를 클릭하게 되는데, 오늘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아직 미성년의 청소년이지만 누구보다도 차돌 같이 단단한 표정의 툰베리씨에게는 배울 점이 많다. 확신에 찬 그의 표정에 나까지 확신을 갖게 되고 만다. 고인 물 되려다가도 화들짝 정신 차리게 된다.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실현하겠다는 등의 공허한 약속만으로 정치인들이 말만 번지르르하게 늘어놓을 시간을 30년 더 벌었을 뿐이라고 지적하면서 툰베리는 “우리는 더 이상 힘 있는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가능하거나 안 된다고 결정하도록 놔둘 수 없다. 우리는 더 이상 힘 있는 사람들이 희망이 무엇인지 결정하도록 둘 수 없다. 희망은 수동적이지 않다. 희망은 진실을 말하고 있고 행동을 취한다. 그리고 희망은 항상 국민으로부터 온다.” 라고 덧붙였다. 여기까지 읽고서 나는 한 방 먹었다. 폴더를 삭제할까 했던 아까의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거실 캐비닛에 넣고 열쇠로 잠그기로 했다. 

  희망은 항상 국민으로부터 오고, 희망은 행동을 취하는 것에서 시작되고, 대의 민주주의는 확실히 시스템 보강이나 재편이 필요하다. 국민이 투표해서 뽑았고 그렇게 청와대에도 보내고 국회에도 보냈지만 그들이 하거나 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세상이 변하거나 정체 되어 있어야 할까? 예전에는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면 이제는 좀 다르다. 해결이 시급한 전 지구적 문제인 기후 위기뿐만이 아니라 세상의 만사가 다 그렇다. 대의 정치는 대의 정치대로 돌아가게 두고 시민의 정치, 시민의 언어와 행동이 확연히 눈에 보이는 무엇이 되어야 한다.      


우리들의 공간무수히 많은 방모두의 미래

  대국민팀플이라는 프로젝트를 두고 10년간 이런저런 청사진을 그려보길 거듭하면서 상상한 마지막 페이지는 광화문에 대국민팀플 간판 크게 달아서 시민 모두의 사랑방, 개인 일터, 강의실, 회의실 등등 있을 거 다 있는 시민 정치의 거점 건물을 세우는 그림이었다. 누구나 이 나라, 이 사회, 다양한 의제에 원하는 시간만큼 참여하고 기여하고 그를 통해서 결국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구해내는 직접적이고 신속한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이 나라에는 정말로 희망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단지 정치인을 잘못 뽑았다고 해서 이 나라의 명운이 좌지우지되고 국가적 에너지를 낭비하고 시간을 허비하는 일을 우리가 우리의 존재를 통해서 막을 수 있다면? 정치가 외면하고 언론이 외면한다고 해서 여전히 중요한 의제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일을 막을 수 있다면? 자본이 없고 힘이 없어서 정치권력과 기업 자본권력에 우리 삶이 끌려 다녔지만 이젠 그러지 않아도 된다면? 

  내가 상상한 대국민팀플 빌딩에는 다른 무엇보다도 무수히 많은 방들이 필요하다. 각 팀이 상시로 맡아 쓸 공간 말이다. 주로 ooo 관련 태스크포스팀이라는 팻말이 많이 붙겠지만 영원히 짐을 빼지 않을, 거국적으로 이 나라가 문을 닫기 전에는 언제까지고 상주할 방들도 있다. 참사를 예방하고 대응하고 우리의 모든 실책을 잊지 않으며 그로부터 배우기 위한 방. 내 마음속 대국민팀플 기획안에 적힌 첫 번째 영원의 방이었다. 생각한대로 꿈꾸었던 그대로 대국민팀플 프로젝트의 전체 모습이 그대로 구현될 수 있다면 인생을 전부 바쳐도 좋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 적고 있는 개별 의제와 그 해결 프로젝트는 빙산의 꼭대기쯤 된다. 하나씩 작은 것부터 해내보면서 지평선 끝까지 정말로 갈 수 있는지 계속해서 가늠해 보려고 한다. 해낼 수 있다면 대한민국은 정말 달라질 거라고, 지금도 멋지지만 그땐 더 눈부실 거라고 믿는다. 왜 지레 겁을 먹었는지 여기까지 쓰고서 좀 더 알겠다. 누가 날 어떻게 볼까봐, 뭘 잘 못할까봐 이런 건 전부 핑계고 아마 간절한 모양이다. 간절할 때 나는 주로 겁이 난다.  


alookso와 팩트체크넷

  신생 미디어 플랫폼 alookso(얼룩소)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타다의 이재웅 대표가 투자했고 전 청와대 디지털소통센터장이자 국민청원 설계를 구상한 정혜승 대표가 설립했다. 9월 30일에 론칭했다. 나는 첫 날부터 서비스를 이용했다. 인스타그램에서 소식을 받아보던 이가 이리로 이직했다고 해 우연히, 비교적 다른 이들보다 빨리 접했다. 얼룩소 팀이 설명하는 이 플랫폼의 슬로건이자 정체성은 ‘자유롭고 안전한’ 공론장이다. 그 자유롭고 안전한 공론장에서라면  쓸모 있고 건실한, 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바꿀 수 있는 진짜배기를 얻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는 뜻일 거라고 내 멋대로 이해했다. 

  ‘공론장’에 대해 국어사전에서는 ‘여러 사람이 함께 의논할 수 있는 장소나 환경’을 뜻한다고 설명한다. 학부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하던 새내기 시절에 가장 먼저 배우는 단어가 바로 이 ‘공론장’이었다. 귀에 딱지가 앉게 듣고 쓰고 말했다. 언론이 어떻게 시민에게 공론의 장을 형성해주어야 하는지, 댓글은 여론이 될 수 있는지, 여론은 곧 공론인지, 공론장의 덕목과 궁극적인 역할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등등등. 그렇게 지겹게 배우고 나서야 기사를 쓸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한 3년은 공론장과 시민의 역할, 저널리즘 윤리와 덕목을 배우고 졸업할 때나 되어서야 기사 쓰는 법을 배운다. 왜 그토록 지겹게 공론장에 대해 배웠는지 기사를 쓰려고 책상에 앉으니 비로소 알았다. 사람들이 공론의 장을 스스로 열어 그 안에 들어가 의제를 설정하고 토론을 하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궁리하고 결국 길을 찾아 다시 그 공간을 떠날 수 있게 하려면 일단은 시발점이 필요했다. 그것이 기사였고 콘텐츠였다. 읽을거리의 존재 의미는 시민으로 하여금 공론장을 열게 만드는, 이를 테면 대저택의 공동 현관문쯤 되었다. 이렇게 기준을 세우면 적어도 기사에 써야 할 말과 쓰지 않아도 될 말을 구분할 수 있었다. 공론장이 따라 붙지 않는다면 죽은 기사라고 생각했다. 저널리즘은 결국 기자가 쓰는 기사를 그 정체성으로 하는 게 아니라 시민들이 주인인 공론장을 몸통으로 하는 존재라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었다. 저널리즘을 배우는 일은 곧 시민의 힘을 깨닫는 일이었다. 공론장과 시민의 힘이 무엇을 해낼 수 있는지를 가르친다는 점만으로도 저널리즘은 멋진 학문이었다.     

  그런 맥락에서 처음 국민청원 사이트가 운영되기 시작할 때에 나는 단지 그것만으로도 이 정부가 존재의 의미를 이미 충실히 달성했다고 생각했다. 이 세상에 없던 것이었지만 생겨났고 사람들의 삶에 자연스럽게 파고들었고 없어선 안 될 하나의 공적 인프라, 사회 기반 시설이 되어 버렸다. 티키타카는 안 되어도 눈과 귀를 모았고 단순하지만 의견을 표할 수 있었고 그 의견들의 합이 결과를 만들었으니 절반은 공론의 장이라 하겠다. 우리의 삶을 구원하지는 않았지만 이 사회가 소통하게 만들었고 뜻을 모으는 연습을 하게 했고 시민 하나 하나의 의견이 10만이 되고 20만이 되고 50만도 되어서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학습하게 했다. 이건 커다란 변화다. 그 다음의 궁극적이고 신속한 문제 해결로 이어지지 못하는 한계는 있을지언정 국민청원의 존재가치만큼은 분명했다. 언젠가 다음 정부가 들어설 텐데 그 정부가 국민 청원 사이트를 닫는다고 하면 어떡하지? (혹시나 해서 씁니다. 당적 없고 정치적 편향 없고 그때그때 개별의 입장과 견해만 세우는 편입니다.) 남몰래 걱정한 적도 있다. 

  바로 그 국민청원을 설계한 정혜승 대표가 대안 미디어 플랫폼 얼룩소를 만들었다는 사실이 내게는 고무적이었다. 10주. 정혜승 대표와 얼룩소 팀은 10주간의 실험을 하겠다고 했다. 그렇다. 지금의 얼룩소는 시민들과 얼룩소 서비스에 대한 베타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일단의 대선을 바라보는 중이라고도 했다. 10주간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여러 실험들을 지켜보고 진행하면서 이 미디어가 앞으로 어디로 나아가게 될지 그 향배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적었다. 나는 그 다음을 무척이나 고대하고 있다. 물론 지금도 나날이 즐겁다. 10주간의 예정된 기쁨이라니. 크리스마스 선물을 미리 받은 기분이 든다.     

  요즘 자주 들어가 보는 또 다른 미디어 플랫폼으로는 팩트체크넷이 있다. 시민참여형 팩트체크 플랫폼으로 기자, 전문가, 시민이 모두 팩트체크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2020년 11월에 출범했다. 방송기자연합회, 한국기자협회, 한국피디연합회 그리고 사회적협동조합 ‘빠띠’ 등 4개 단체가 함께 설립했다고 한다. 지상파 4사와 한겨레, 연합뉴스, 미디어오늘 등 언론사 11곳이 참여하고 있다. 예산 지원 주체가 정부라는 점에서 정치적 공방이 이어질 조짐이 보이기는 하지만 ‘시민’이 참여하는데다 ‘팩트체크’를 하는 서비스가 아닌가? 누군가 팩트체크를 했는데 편향되어 보인다면 그 팩트체크 내용을 다시 팩트체크하면 그만일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운영되고 발전해나가는지 지켜보고 싶은 서비스가 생겨 나는 그저 좋다. 

  서비스를 발견하고서 처음 느낀 감정은 기쁨이었다. 순수하게 기뻤다. 세상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기뻤다. 학부 졸업반 시절 존경하던 동기가 있었다. 해가 뜰 때까지도 함께 토론하고 술 한 잔 앞에 두고서 밤새 솟아나는 아이디어들을 나눌 수 있었던. 이런 매체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이런 서비스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이제는 옛일이 되었지만 그런 이야기를 함께 나누던 때가 있었다. 손바닥만한 노트 하나 펴놓고서 기획안을 적어가며 열심히 떠들었던 신촌의 어느 어둡고 시끄러운 바(Bar)는 아직 그 자리에 있을까. 아직도 잊을 수 없던 그 어느 밤 우리가 기획안 1순위에 올려두었던 꿈이 바로 공인된 팩트체크 서비스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건 열망이자 갈망이었다. 그 이야기를 할 때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보석보다도 반짝거리던 그 친구의 검고 깊은 눈동자를 기억한다. 아무래도 우리끼리 해낼 수는 없을 것 같다는 결론에 미뤄두었고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다루는 월간지를 만드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지만 이루지는 못하였어도 늘 잊지 않고 있었다. 근 10년이 지나 (물론 서울대 팩트체크센터 등이 기존에 있기는 했지만)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팩트체크서비스를 내 눈으로 보게 되니 감개무량할 따름이다.  

  세상은 발전한다. 틀림없이 그렇다. 누군가 무언가를 해내기 때문이다. 저절로 마법처럼 짠, 하고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사부작사부작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무언가 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오늘의 내가 그 발전을 목도하는 기쁨을 얻을 수 있다. 그렇다면 말이다. 더 많은 이들이 더 많은 무언가를 하면 더 많은 곳에서 더 빠른 시간 안에 우리에게 필요한 변화들을 마주할 수 있을 거라는 건 낭만도 뭣도 아니고 그냥 사실이다. 난 그 사실을 믿는다. 믿게 해주는 것들이 주변에 이렇게 물리적으로 존재하니까 안 믿기도 뭐 하지 않나. 그래서 그냥 계속 쓰려고 한다. 보잘 것 없대도 끝까지, 불가능하다고 해도 끝까지, 열정이 조금은 사그라들어도 결국은 끝까지 쓰고 싶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도 가고 싶다. 당장 나무 한 그루로 키워내지 못하더라도 씨앗을 심는 마음 정도면 괜찮겠지. 일어나거나 일어나지 않을 일들은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되는 대로 하련다. 툰베리와 얼룩소, 팩트체크넷 덕분에 살았다. 그 덕분에 5화도 쓰고 6화로도 간다. 하마터면 4화에서 끝날 뻔 했다. 여러모로 그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어진다. 진심과 열심과 희망 같은 것들이 동화책 밖에도 여전히 있다. 그들에게서 그것을 본다. 나도 그것을 가지러 간다. 무엇을 원한다면 그 무엇을 하면 된다. 무엇을 원하면 무엇을, 해야 한다. 

이전 05화 4화. 모두가 그 아이들의 보호자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