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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초록 Oct 22. 2021

3화. 언제까지 이 꼴을 봐야 할까?

대국민팀플: 욱일전범기와 하켄크로이츠

브런치북 9회 응모작

대국민팀플

3화. 언제까지 이 꼴을 봐야 할까?     




하나도 괜찮지가 않다

  욱일기가 전범기라는 것을, 그래서 독일 나치의 하켄크로이츠와 동급이라는 것을, 그러니 누군가 욱일전범기 디자인이 예쁘다고 생각해 쓰고 싶다면 꾹 참고 그 생각은 넣어두어야 한다는 것을 전 세계가 알았으면 좋겠다. “서양 국가는 아시아 역사에 무지할 수도 있지.”는 조선의 17대 왕이 누군지 모를 때나 괜찮은 거고, 자기들도 다 참전하고 난리 났던 전쟁의 전범기를 여직 몰라서 실수한다는 건 하나도 괜찮지 않다.

  뼛속깊이 자성했던 독일과는 일본이 다른 노선을 걷고 있으니 하켄크로이츠보다 욱일전범기 사용 근절이 더 어려운 건 사실이지만 그렇대도 사용한 이들이 부끄러워 고개 들지 못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한국인들이 직접 찾아가 일일이 지적하지 않더라도 그 나라, 그 사회, 그 커뮤니티 안에서 지탄 받기를 바란다. 범세계적으로 이런 현상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하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어릴 적의 나는 반크에서 일하고 싶었다. 역사학과에도 가고 싶었다. 해외에 있을 땐 유명한 박물관들을 관람하다 한국관이 작고 초라하면 화가 났다. 이게 최선인가 싶고. 지금은 없어진 과목이지만 수능 사탐 과목으로 근현대사를 선택했다. 숱하게 만점을 받을 만큼 열심이었다. 언젠가 시대극을 내 손으로 집필하고 싶은 마음도 크다. 요즘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문학 작품을 창작해 출판하는 타오름달열닷새(815) 출판사의 책들을 읽고 있다. 어제 오늘 읽는 것은 미그릿 작가의 '모던걸'이라는 소설이다. 학창 시절에는 일본에 홈스테이 가면서 배낭에 국사 교과서를 챙겨 갔다. 가서 날 재워준 집의 일본인 친구에게 우리 역사를 설명해주었다. 학교에서 이런 내용을 배우지 못했다는 그 친구와 밤마다 양국의 역사에 대해 열띤 이야기를 나누었다. 처음 입을 뗄 때는 쉽지 않았지만 경청해주었던 친구 덕에 망설여지더라도 용기 내는 일의 미학을 경험했다. 가지각색으로 이렇게 열심과 관심을 기울일 만큼 할 수 있는 최대치의 수준으로 늘 싫었다. 반성 없는 일본이.

  몇 달이 지나 이번에는 한국으로 일본의 친구들이 홈스테이를 위해 방문했을 때, 방문한 일본 측 인원 전부와 함께 명성황후 생가에도 다녀왔다. 관람을 마치고서 다 같이 산만하게 모여 있을 때 그 애들 보호자로 같이 온 일본의 어른들 중 나이가 가장 지긋했던 할아버지가 대표로 우리에게 깊이 허리 숙여 사과했다. 놀랐고 조금 눈물이 났다. 고마워할 일은 아니지만 고마웠다. 어린 마음에 그 사과는 큰 의미였다. 덕분에 진심으로 그들과 친구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아무리 사과해도 나는 삼십대, 사십대의 윤동주 시인이 썼을 시를 알 재간이 없다.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다는 건 이런 거다. 진심을 담은 사과라 할지라도 그것만으로 회복할 수 있는 것은, 해결할 수 있는 것은 기실 아무 것도 없는데 일본은 그것조차 하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도 전 세계에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마구 저지르는 중이지… 바다 오염 그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리끼리는 다 알 테니까 욱일전범기가 뭔지 설명은 생략하고 싶다...고 쓰면 안 되겠지? 욱일전범기는 일본 군국주의와 제국주의를 상징하는 일본의 깃발로 아시아인들에게는 잔혹한 식민지 시대의 고통을 떠올리게 하는 전범기다. 2차 세계대전 패배 후 사용을 멈추었다가 10년도 채 지나지 않은 1954년 자위대를 창설하면서 다시 사용하기 시작했다. 현대에 와서도 전 세계인이 모두 참여하는 스포츠 행사 등에서 아무렇지 않게 종종 들고 와 펄럭이고 패션이나 잡화 아이템에 숱하게 쓴다.

  21년 8월 아이폰12 광고에 욱일전범기 디자인의 그릇이 등장해 서경덕 교수에게 많은 시민들이 제보를 했고 서경덕 교수가 애플 본사에 항의 메일을 보냈다고 한다. 서경덕 교수는 애플 본사에 항의메일을 보낸 후 “욱일기가 독일의 하켄크로이츠와 같은 의미인 ‘전범기’라는 역사적 사실을 알리는 영어 영상을 함께 첨부해 줬습니다. 지금까지 세계적인 기관 및 글로벌 기업에서 욱일기 문양을 사용할 때마다 항의를 하여 고쳐 왔는데, 이때마다 대부분 잘 몰라서 사용한 것이었습니다.” 라고 페이스북에 게시글을 올렸다.

  서경덕 교수뿐 아니라 많은 시민들이 수 십 년 간 노력해왔다.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 한국 내에서도 한국인이 욱일전범기 디자인이 그려진 옷을 입고 무대에 서거나 하는 일도 있어 힘이 빠지기도 하지만 수많은 이들의 노력 덕에 욱일기가 전범기이고 사용해서는 안 되는 것임을 예전보다 많은 이들에게 주지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여전히 2021년에도 우리는 욱일전범기를 전 세계인들이 보는 광고에 떡하니 송출하는 세계적 기업의 행태를 마주해야만 한다. 여기까지가 최선인 걸까? 답답하다. 이런 저런 궁리를 하게 된다. 인내하며 긴 시간 같은 일을 반복해 점진적인 변화를 만드는 서경덕 교수를 진심으로 존경한다. 손을 보탤 수 없을까. 다 같이 손을 보태고 아이디어를 보태 빛의 속도만큼 빠른 변화를 끌어내는 데 성공할 수 없을까? 이미 앞선 노력들이 있었지만 더 할 일은 없을까?

  요즘 분위기로 봐서는 넷플릭스에 욱일전범기와 하켄크로이츠 관련 영상 하나 만들어 올리면 속이 시원하겠다. 21년 추석 연휴를 달군 오징어게임이 전 세계적 히트를 치자 한국발 콘텐트가 할리우드를 위협한다는 미국 경제지 블룸버그의 보도가 있었을 정도다. 요즘은 소프트 파워 부분에서 한국이 뒤로 엎어지나 앞으로 엎어지나 코가 깨지기는커녕 꽃밭인 느낌이다. 때라는 건 오기도 하고 가기도 하는 법이니 웬만하면 지금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뭘 하든 환호 받을 때 숙원사업(?)을 해치우는 현명함을 발휘하는 게 어떨까...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일본에서 반길 리 없겠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고. 다큐 재질로 만들면 탑 리스트에 못 들 테니까 진짜 K-드라마, 영화 제작 인재들 한자리에 모아놓고 세계 시민들이 열광하는 포인트 집요하게 연구해서 역작 하나 만들었으면 좋겠다. 다들 안 보고는 못 배길 명작으로다가. 창작자 여러분. 10분짜리 옴니버스 10화 시리즈로 욱일전범기가 대체 아시아인들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 세계인의 심장에 콱 박힐 만한 엄청난 콘텐츠 만들어주세요. 스밍할게요 스밍. (김은희 작가님을 소리쳐 부르고 싶다)

  오죽하면 이런 거라도 할까? 생각했다. 전 세계 언론사 100개, 기업 100개, 시민단체 100개 리스트 뽑아서 한 날 한 시에 욱일전범기X하켄크로이츠 관련 영상과 설명 메일을 첨부하는 이벤트 같은 것. 마음 같아선 천 개씩 하고 싶다. 못할 게 뭔가. 우리 인구 줄어들고 있긴 하지만 아직 오천만 정도는(?) 되는데. 분명 각 나라 언어 끝장나게 잘 하는 언어천재들도 많은데. 메일링 리스트 완성할 초기 작업 팀, 이벤트 시간과 방식과 업무 분담 나눠줄 매니징 팀, 메일 원본 작성 및 검수해줄 언어천재 + 커뮤니케이션 전공자 + 작가팀, 자기 메일로 메일 한 통씩 보내줄 시민 천 명이 모인 각개 전투 팀, 피드백 응대 팀, 영상 및 활자 기록팀. 러프하게만 썼지만 이정도 모여서 타임라인, 투두리스트 정해서 움직이면 그만이다. 프로젝트 과정 및 결과 영상은 영어 자막 달아 다듬어서 아시아 다른 국가 시민들도 유입되어 볼 수 있게 해주어 그들도 같은 프로젝트를 하고 싶어진다면 정말 크게 의미 있을 것이고 활자 기록은 우리 국민들이 프로젝트 후속 상황을 더 심층적으로 보게 해주기 위해 필요하다. 이런 생각들을 해보았지만 꼭 이게 아니더라도 좋은 아이디어들을 각지 각계에서 모아 실행해볼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     


우리는 더 나은 존중을 받을 자격이 있다

  전범기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행태는  세계의 진정한 일원이  생각이 추호도 없다는 입장으로 읽힌다. 언제든 다시 대세의 흐름을 탄다면 똑같은 짓을  저지르겠다는 무언의 선언처럼도 읽힌다. 가랑비에  젖듯 한다는 관용적 표현은 '언제인지 모르게 스며든 사랑' 따위의 낭만적인 일에만 통용되지 않는다. 전범기간, 강점기간에 대한 그들의 향수, 심지어  상징을 용인하는  결국 불씨를 살려두는 일이다. “쟤네  저러네?”  마디로 넘어가주지 말자.  귀찮게  거슬리게  집요하게 털자. 옛말이 틀린  없다지만 일본과 관련해서만큼은 지나친 것이 모자란 것과 같다는 '과유불급過猶不及' 틀렸다 말하고 싶다. 불도저 같은 정신과 태도가 필요하달까.

  다른 배우들이 일본 팬들의 반응을 걱정해 거절했다는 각시탈의 주연 배우를 선뜻 맡은 주원이 나오는 다른 드라마는 ( 취향이 아닐지라도) 그냥 챙겨본다. 청년 시절 이후의 윤동주 시인이  시를  읽을  없다는 사실이 싫고 층간소음, 측벽소음이 심해 힘들어도 여자 배구 한일전 마지막 순간에 옆집 남자가 건물이 흔들릴 정도로 소리를 지른 일은 용서가 된다. 과거보다 미래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살면서 여럿 만났고 그들의 의견에 반대하지 않지만 미래는 반듯하게 정리된 과거를 딛고서야 온다.

  쫓아가는 것만으로는 영영 끝나지 않을 것 같다. 언제까지 피해 받은 이들이 또 피해 받으며 감정 노동 해가며 몰라서 썼다는 무지를 그저 용인하며 친절하게 알려주어야 하나. 일이 벌어진 이후에 그 뒤를 따라가 설명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의 마음도 우리의 미래도 우리의 과거도 그보다 나은 존중을 받을 자격이 있다.

  반크에서 일하고 싶었던 꼬마는 엉뚱하게 아주 관계없는 다른 분야를 공부하며 살고 있지만 여전히 그때 그 꼬마는 내 속 어딘가에 살아있고 그 꼬마는 ‘욱일기’ 세 글자만 봐도, 아니 아욱국의 ‘욱’, 좋아하는 드라마 보보경심의 8황자 이름만 보고도(강하늘이 연기한 고려 8황자 캐릭터 이름이 ‘왕욱’이다) 여전히 은근하게 성질이 뻗친다.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다 같이 한 번 뭐든 해보자. 이 오랜 체증이 좀 풀릴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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