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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초록 Oct 22. 2021

2화. 정말 이럴 거야?

대국민팀플: 청소 노동자 휴게 공간 문제

브런치북 9회 응모작

대국민팀플

2화. 정말 이럴 거야?     



2012년과 2021년의 한국 그리고 청소노동자들

  2012년의 나는 대학교 졸업반이었다. 어쩌다 취업 대신 창업, 아니 창간을 하게 되었다. 또래인 20대를 주요 독자로 한 시사 무가지를 만들었다. 번듯한 사무실 없이 동료들과 철새처럼 매주 카페를 옮겨 다니며 편집회의, 제작회의를 했다. 그 시절 뜨거운 감자는 2021년 하반기 지금처럼 대선 정국이었다. 문재인, 박근혜, 안철수 3강 구도였다. 그 외에는 반값 등록금과 대학 학내 청소 노동자들의 휴게 공간 마련 문제가 기억에 오래 남는 주요 의제였다. 그랬다. 벌써 지금으로부터 10년이 훌쩍 지난 과거 2012년에도 청소 노동자들의 휴게 공간 마련을 두고 공론의 장이 형성된 바 있다는 얘기다. 우리 매체도 관련 기사를 썼다. 기성 매체에서도 우후죽순 청소노동자의 휴게 공간 설치 미비 문제를 너나없이 다루었다.

  2012년 3월 9일 미디어오늘 정상근 기자가 작성한 당시 진보신당 비례후보 1번이자 비정규직 청소노동자였던 김순자씨와의 인터뷰에서 김순자씨는 “우리도 사람이다. 사람이면 쉴 수 있는 공간은 있어야 한다. 단 한 평의 공간도 없거나, 정화조 위에 있거나. 건물을 지을 때부터 휴게 공간을 따로 만드는 법안을 꼭 만들고 싶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2021년 6월 21일 대한민국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청소노동자들이 화장실에서 식사하지 않도록 휴게공간을 보장할 것을 의무화해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왔다. 강산이 전부 변하고 만다는 십 년 세월 동안에도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이 청원과 관련 기사들을 보고서 나는 이 책을 쓸 것을 결심했다. 10년이나 해결되지 않고 있을 만한 문제가 아니지 않나. 전 지구적이고 거시적인 문제라 모두들 매달려 머리를 싸매도 해결되기 힘든 문제라면 그러려니 하겠으나 이건 그저 누군가의 이기심, 탐욕, 무관심, 방관, 부끄러움, 수치, 인간 존엄이 상실된 사회의 일그러진 얼굴을 버무린 산물일 뿐이다. 청원마감일은 그로부터 한 달 뒤인 2021년 7월 21일. 232,595명이 청원에 참여했고 고용노동비서관 도재형씨의 답변이 달렸다.

(전문은 여기서.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599225)

  답변의 골자만 요약해본다. 도 비서관은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79조에서 사업주가 근로자를 위한 휴게시설을 갖추어야 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고 정부는 ‘사업장 휴게시설 설치 및 운영 가이드(2018년)을 통해 적절한 휴게시설의 설치 및 운영을 위한 사업장 지도를 해왔으나 휴게시설 설치의무에 벌칙규정이 없고, 설치기준 또한 가이드에 머물러 민간에서 완전히 청소노동자들의 휴게공간 마련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더불어 이러한 한계 개선을 위해 최근 국회에서 휴게시설 설치와 관련된 벌칙(과태료)을 도입하는 산업안전보건법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되었다고 적었다. 휴게시설의 실질적 보장이 이뤄지지 않으면 1,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 처분,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냉난방, 환기, 편의시설 갖추지 않으면 1,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 처분, 하청업체가 아닌 원청업체의 책임인 것을 확인하는 내용의 개정안이다. 2022년 하반기에 이 개정법이 시행될 예정임을 덧붙이며 답변을 마무리했다. ’아직 노력 중이다, 더 노력하겠다‘ 같이 뜬구름 잡는 답변이 아닌 것만으로 다행인가 생각하다가도 힘이 빠진다. 개정법안이 시행되는 2022년 하반기 이후에는, 줄잡아 십 년 뒤쯤인 2030년에는 과연 인간 존엄이 보장된 휴게 공간을 모든 청소 노동자가 과연 누리고 있을까?        


희망은 다른 곳에 있고 다른 모습으로 있다     

  한참 열과 성을 다해 잡지를 엮어내던 2012년 겨울이 지나며 대선도 마무리되고 새 봄이 올 때쯤부터 지상파 방송 보도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뉴스 제작 보조 일이었다. 프로들이 뉴스 만드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볼 기회였다. 많은 걸 보고 느끼고 배웠던 시절이었다. 좋았다. 대체로 그랬다. 사옥은 어찌나 멋지고 높고 빛이 형형한지 출근하고 퇴근할 맛이 절로 났다. ‘진짜 기자가 되어 출근할 수 있으면 기분이 어떠려나.’ 절로 궁금해질 법했다. 멋지지 않은 구석이 하나도 없어보였던 회사는 어쩌다 가끔 틈을 보였다. 성범죄자를 솜방망이 징계하고 다시 근무하게 한다든지, 이런저런 접대를 받는다든지, 비정규직을 차별하고 홀대한다든지. 물론 회사 내부의 그런 단점들을 상쇄할 만큼 멋지고 다정하고 사명감 있는 저널리스트들도 많았다. 그 덕에 눈을 감고 또 감을 수 있었지만 그 틈 중에 가장 크게 벌어져 아무리 눈을 감아도 지워지지 않는 틈이 하나 있었다. 회사의 청소 노동자들이 화장실에 숨겨진 쪽문 안쪽에서 겨우 쉬어가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말았다. 쪽문이랄 것도 없이 성인 여성 허리 정도 오는 높이만큼 열리는 작은 창고 공간이었다. 청소 용품이나 휴지 등 화장실에 필요한 비품들을 차곡차곡 쌓아놓은. 반 년 정도의 근무 기간 중 그 문 안에 앉아 무언가를 드시는 청소 노동자분의 모습을 딱 한 번 보았다. 솔직히 십 년이 지난 지금은 “혹시 꿈이었던 게 아닐까?” 생각할 정도다. 10년을 내리 잊지 못했으니 진실이기는 할 것이다. 모순이 온 세상을 지배한다는 것을 이제는 힘없이 순응하지만 그 시절 저널리즘 덕후(?)에 가까웠던 청춘의 나에게 뉴스 제작국에 존재하는 모순은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무엇이었다. 물론 중이 제 머리 깎을 순 없다는 말이 있으니 지금 와 생각하면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려나. 비정규직 차별이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고 보도하는 방송국은 퇴근 기약 없이 노동 착취당하는 비정규직이 발에 채이는 곳이니 말이다. 그래도 그땐 ‘모두가 그러더라도 여기선 그러지 말아야지.’ 생각했다. 사회문제를 고발하고 지적하는 곳이 사회문제를 품은 대상일 순 없는 거 아니냐고. 서러웠던 것 같다. ‘여기서마저 이러면 다른 곳에는 희망이 없잖아.’ 여러 번 곱씹었다.

  희망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꼭 희망이 기성 저널리즘, 기성 권력에 있어야하나. 희망은 다른 곳에 있고 다른 모습으로 있다. 순진하고 희망에 차 있던 그 시절을 지나 오늘에 서서 이제야 조금 다르게 생각하는 법을 배웠다. 희망은 품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것이다. 목이 마른 자가 우물을 찾는 법이고 땅을 파야 샘이 솟는다. 그냥 내가 움직이고, 여러분이 움직이고, 모두가 움직여 시끄러운 소리를 마구 내어서 변화를 만들 수밖에 없게 해야 한다. 그리고 더는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은, 그러면서도 변화를 만들어낼 힘과 영향력과 재기라고는 없는 뉴스를 보는데 인생과 감정을 그만 낭비하고 싶다. 우리가 만들어낼 변화는 실제적이고 빠르고 실체적이어야 한다.      


시그니엘에선 엘리베이터 탈 때도 내외를 한다

  당장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은 여러분이 몸담은 회사의 청소 노동자 휴게 공간을 본 일이 있을지 궁금하다. 그들이 어디서 쉬고 식사하는지 알고 있는가. 우리 동네 지하철 역사 안에는? 그곳의 청소노동자 휴게공간은 어딘지 우리 알고 있는가? 심지어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그건 모르겠다. 만약 학생이라면 당신의 학교에는? 학교의 청소 노동자들은 어디서 쉬는지, 그런 공간을 지나다 본 일이 있는지 기억나는가?

  업무 때문에 한동안 롯데월드타워의 시그니엘 레지던스로 매주 3-4번은 출근했던 때가 있었다. 편안한 평상복 차림에 평범한 데일리 백을 들고 다녔다. 시그니엘은 미리 등록된 차량이어야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갈 수 있다. 지하에서 한 번 카드키를 찍고 열린 문 안으로 들어가 42층 입주민 레지던스 라운지까지 올라가는 첫 번째 엘리베이터를 탄다. 역시 카드키를 찍는다. 42층에서 입주민 라운지를 거쳐 레지던스로 올라가는 두 번째 엘리베이터로 갈아탄다. 이때도 역시 카드키를 찍는다. 보안이 이러니 내부를 이용하는 사람은 대충 입주민 아니면 입주민과 가까운 지인이거나 관계자일 가능성이 높다. 시그니엘 직원들은 검은색 정장 유니폼을 입고 근무하는데, 입주민의 물품을 전달하거나 하는 급한 업무가 아니면 대체로 나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하지 않았다. 입주민인지 외부인인지 구분할 수 없으니 입주민에게 하는 대로 모두에게 룰을 지키는 모양이었다. 엘리베이터가 텅 비어있는데도 직원들은 내게 혼자 편히 타고 올라가라고 인사하며 늘 동반 탑승을 사양했다. 같이 타시라고 말씀드려도 돌아오는 건 깍듯한 목례였다. 한 편으로는 한강이, 뒤편으로는 남산 풍경이 전부 보이는 42층 라운지에는 입주민을 위한 카페와 작은 피트니스 공간, 파티룸 등이 있다. 당연히 화장실도 있는데, 그 많은 직원들이 화장실 함께 쓰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청소 노동자분들이 청소 도구가 든 양동이를 챙겨서 들고 나는 Staff only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는데 아마 직원 화장실도 그 안에 따로 배치되어 있지 않나 추측할 뿐이다.

  이런 동선 분리가 언제부터 원칙이나 미덕처럼 여겨지기 시작했을까?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시대부터인가? 만약 그런 거면 조선 다이너스티! 그 왕조 끝날 때 같이 끝났어야지. 어느 시점부터 시작이래도 어리둥절이다. 어릴 때 학교 다닐 때를 생각해보면 쉽다. 교사 화장실과 학생 화장실이 분리되어 있는 교내 정책에 다들 한 마디씩은 불평불만 쏟아낸 적 있다. 친구들이 그런 말 하는 걸 나도 자주 들었다. 딱 그 상황 아닌가. 쓸 데 없는 구분 짓기, 선 긋기, 동선 분리하기. 제대로 물어보면 명분이 없는데 그냥 관행 삼아 계속 하는 부조리 말이다. 교사 화장실과는 달리 학생 화장실은 문짝이 성한 칸보다 부서진 칸이 더 많고 그런데 몇 달을 고치지 않아 그대로고 시설 자체도 달랐다. 정당한 이유가 있다면 분리든 뭐든 괜찮다. 하지만 그 분리가 불평등과 부정의를 속성으로 가지기 시작한다면 그때부턴 유턴이 답이다. 이런 부조리를 내내 용인해왔기 때문에 점점 누군가의 쉬어 갈 공간이 쪼그라들다 못해 화장실 안쪽 벽면으로 고착화되었을 것이다.

        

최종 보스를 만나러 가자

  이 사회에서 해결되지 않고 오래 묵은 고질적인 문제란 우리 사회의 개똥같은 철학을 그대로 반영한 살아있는 증거다. 인간을 인간으로 보지 않는 것. 강자와 약자에 대한 구분 짓기를  사랑하는 것. 제 몸 보신 외에는 관심 없는 것. 노력해도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는 핑계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 그게 현명하다고 믿는 어리석음이 팽배한 것. 물론 세상에 질 수도 있다. 나는 힘이 없으니까, 우주먼지보다 비루하고 작은 존재니까 그래도 괜찮다. 근데 질만한 일에 져야지. 해결할 수 있는 것에도 지기로 결정한다면 솔직히 좀 인생 후지다. 나는 10년이나 ‘청소노동자 휴게 공간 어쩌고’의 기사 헤드라인을 보며 살아왔다. 인간적으로 그만 봐야 되지 않겠나? 그나마 개정 법안이 통과되어 곧 시행된다는 소식을 들었으니 기뻐야 할 텐데 이제 와 십 수 년 만에 법안 하나 통과됐다고 기뻐하면 진성 호구 같아서 기쁘지도 않다. 2022년은 무슨, 당장 해결하고 싶다 이 말이다. 당장. 오늘, 그리고 내일, 내일 모레. 그 안에도 정규직 직원 휴게 공간 하나 밀어서 청소 노동자들 휴게 공간으로 쓸 수 있다. 햇빛도 들고 환기도 잘 되고 다리 뻗고 앉았다 일어날 수도 있고 에어컨도 히터도 있고 역하지 않은 환경에서 산뜻하게 밥도 먹을 수 있는 그런 공간 말이다.      

  힘 있는 채널에서 변화의 양상을 후속보도도 하고 계속해서 팔로-업(follow-up) 했어야 했다. 1년 안에 청소노동자 휴게 공간이 개선된 사업장의 비율, 좋은 개선 사례인 기업 혹은 지자체의 장을 대상으로 한 대대적인 인터뷰, 아직 변화가 없는 곳들에 대해 제보 받아 시민들에게 알리기, 휴게공간 실제적인 확보를 위한 법적 제도 개선 방향 끊임없이 제언하기, 이번 달 변화의 움직임을 보여줄 수 있는 계량화된 인포그래픽스 게시판(코로나 현황판처럼) 운영하기, 지자체 별, 기업 별, 사업장 종류 별… 뭐든 좋으니 소속을 묶어서 잘하고 있는 곳과 못 하고 있는 곳 확연히 볼 수 있게 만들어 국민들이 알 수 있게 해주기. 이 모든 것들을 종종걸음으로 해내고 난 후인데도 영 움직일 기미조차 없는 곳은 어쩔 수 없다. <최종보스를 만나러 가자>를 찍어야 한다. 마치 광희 씨가 출연했던 네고왕처럼(?) (진짜로 광희 씨랑 같이 가면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일 듯)

  이건 대국민팀플 프로젝트를 실행하게 되면 같이 시작하려고 만들어둔 하위 연재 기획인데, 어떤 사회 문제든 해결하자면 결국 다 그 문제를 관장하는 최종 보스가 있지 않나. 대통령이든 도지사든 사장이든 누구 있을 거 아닌가. 그 사람 만나야 한다. 만나서 물어볼 수밖에 없다. “왜 안 해요? 못해서 못하는 거예요?” 대국민팀플이 시작되면 최종보스 만나러가기는 투두리스트에서 빼놓을 수가 없는 필수불가결한 항목이 될 텐데, 청소노동자 휴게시설 문제도 마찬가지다. 최종보스 만나서 물어봐야 한다. “왜 안 만들어요?” → “공간이 없나?” → “사원 복지 공간, 사옥 쭉 한 번 투어 시켜주세요.” → “여기, 여기, 아님 저기랑 저기. 공간 있는데요?” → “청소노동자분들 휴게 공간으로 바꾸는데 얼마나 걸릴까요?” → “아니, 근데, 그냥 다 같이 쓰면 안 되나요? 애초에 왜 다른 공간에서 쉬어야 할까요?” 이렇게. 난 질문 폭격할 때가 세상에서 제일 재밌더라. 질문만 가지고서 책 한 권도 쓸 수 있을 것 같다. 연쇄적 질문의 미학을 콘셉트로다가. 여튼, 졸라대도 안 만나주면 “안 만나줬음” 이라고 현황판에 떡하니 걸어놔야지 뭐. 시민들이 각자 자기 권역들만 나눠서 맡아줘도 한 달이면 끝날 것 같다. 아까 위에서 물었던 것처럼 각자 자기 회사 상황만 정확히 파악하고 맡아주면 더 빨리도 끝날 것 같다. (물론 본인 회사 사장님한테 가서 ‘최종 보스 만나러 가기’를 찍을 수는 없을 테니까 그거는 적절하게 옆 사옥 직원들이랑 맞교환?)      


경쾌하게 살고 싶거든요

  4일제 논의를 한다는 기사를 오늘 봤다. 대선 정국 시작하면서 계속 있어오던 얘긴데, 오늘  기사가 나서 들여다보았더니 청년들의 모자란 일자리 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나쁘지 않은 방안이라는 시각도 다뤘더라. 전혀 반대하는 바는 아니지만 글을 쓰면서 이런 생각이 든다. 법조계도 언론계도 공공기관도 애초에 사람이 부족한  같다. 아님 적재적소에   쓰고 있던가. 이미 있는 판에서 사람을  뽑아서 본인들 역량과 책임과 가능성의 영역을  확장하는  어떨까? 판사 많이 뽑아서  사람의 판사가 재판하는 재판 개수를 줄이면 매번 러운 양형 문제 토론도  하고 발전적인 방향으로 시스템 정비하고 연구하는 데도 판사들이 시간을    있을 테고 (과로사도 없어지겠지...) 아예 그걸 전담해서 제대로 빨리 발전하게 만드는 팀들도 실적을  텐데.

  기자 백 명 이백 명씩 더 뽑아서 저널리즘이 지금보다 더 실천적 저널리즘 영역으로 파고 들어서 아예 팀 꾸려 주제 별로 1년씩 끌고 가 쥐어 잡으면 민, 언, 관 협력해서 사회 문제 해결하고 또 그 다음 의제로 갈 수 있을 텐데. 정말로 이 사회에 변화를 만드는 집단이라고 시민들이 믿어주기 시작하면 그 채널은 사람들이 고마워서라도 시청률 박 터지게 해줄 텐데. 이게 다 공상일까?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데. 이렇게 되면 대국민팀플은 전혀 필요 없을지도 모르는데.

  나는 아무 것도 아니지만 내 세상의 문제들은 해결하며 살고 싶다. 누구의 문제든 해결되어야 옳은 것은 해결하며 살아야 이 세상에 조금은 경쾌하게 발 딛고 살 수 있을 것 같다. 동참해주시겠는가? 이 한 마디. 이 한 마디를 위해 이 책을 세상 빛 보게 하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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