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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소 Feb 24. 2023

마음이 부서진 날들

일상의 지옥

그 해는 코로나가 시작된 2020년이었다. 발 빠르게 재택근무를 시작한 몇몇 회사와 달리, 우리 회사는 재택근무 권고가 내려온 지 한 달쯤 지나서야 격일제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처음 대규모로 시행되는 재택근무라 관련한 많은 기사가 쏟아지던 시기였다. 모두 시행착오를 거칠 수밖에 없었다. 기사나 지인을 통해 집 대신 까페에서 근무하는 사람들, 수도권보다 안전한 지방 본가에 내려가 근무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들려왔다. 회사에서는 재택근무를 집에서만 한정한다는 안내가 없었다. 업무만 제대로 처리한다면 내가 있는 장소는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했다. 업무일지도 쓰고, 출퇴근도 제대로 찍었다. 그건 나의 안일한 착각이었다.






4월 중순, 재택 근무일에 울산과 창원에 다녀왔다. 금요일과 다음 주 월요일이었던 재택근무일을 활용해 주말에 본가에 다녀오는 일정이었다. 장소의 이동은 근무시간 전후나 점심시간을 활용했고, 이동으로 점심시간을 써버렸을 땐 식사도 업무를 진행하며 간단하게 때웠다. 정해진 업무도 무리 없이 마무리했다. 양심에 찔리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문제가 있을 거라는 생각 없이 출퇴근 장소를 정확하게 GPS로 기록한 게 화근이었다. 5월 중순, 총무부에서 직원들의 지난 출퇴근 기록 위치를 열람하여, 집과 대조한 다음 내가 근무일에 지방에 있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부서장에게 출장을 보냈는지 물었다. 회사가 발칵 뒤집어졌다. 이렇게 위험한 시기에, 근무시간에 지방을 돌아다니며 직원들을 코로나 감염 위험에 빠뜨린 사람, 그게 바로 나였다. 당시 지방에는 감염자가 1-2명 나올까 말까 한 상황이었고, 수도권 감염자가 더 많아 격일제 출퇴근이 오히려 더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부서장은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화를 냈고, 총무부에서는 당시의 시간대별 상세한 이동 경로와 업무 진행 상세 내역을 요구했다. 사실상의 경위서였다. 근무일은 금요일과 그 다음주 월요일이었지만 금요일 퇴근 후의 주말 이동 경로까지 요구했다. 그때는 4월이었고, 경로를 요구한 당시는 5월이었기에 내가 코로나에 걸렸을 가능성이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일종의 사생활 침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요구한 내용을 상세히 써서 전달했다. 그리고 다음 날, 회사는 나에게 사장의 너그러운 판단으로 따로 징계위원회를 열지 않고, 연차 2일 삭감과 '반성문'을 작성하는 걸로 사건을 마무리하겠다고 통보했다. '반성문'이라고? 경위서도 아니고 회사에서 '반성문'...? 예상치 못한 사건과 전개에 나는 정말이지 크게 위축되었고,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나의 잘못이 있었고, 더 이상 일을 크게 키우고 싶지 않아 회사의 처분을 받아들였지만, 일을 했음에도 연차가 삭감되고, '반성문'이라는 걸 써야 한다는 게 굴욕적이었다.







며칠 후 노조지부장에게 연락이 왔다. 나에게 있었던 일을 총무부를 통해 들었는데, 내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했다. 사건의 전부를 설명한 내게, 노조지부장은 내가 겪은 일이 부당하다고 말했다. 회사에서 명확하게 공지를 하지 않은 사실이 맞고, 제대로 전달하지 않은 관리자 책임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징계의 여부는 노조 입회 하에 진행되는 징계위원회에서 결정하는데, 회사는 징계위원회도 열지 않고 경위서, 연차 삭감(사실 상 감봉), '반성문'까지 이중처벌을 한 거나 다름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반성문'은 징계 중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비합리적인 처벌이라고 했다. 내 잘못이 있다고 생각해서 말할 수 없었던 찝찝함이 명확해졌다. 잘못을 저지른 후 진행된 일련의 절차들이 모두 납득하기 어려운 과정이었다.


지부장은 차라리 공개적이긴 하지만 징계위원회를 여는 것도 방법이라고 했다. 나는 이미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고, 이런 상황에서 더 싸우고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일을 이렇게 마무리하는 것으로 하고, 지부장이 노조 대표로 이번 사건에서 회사가 명확히 공지하지 않은 잘못이 있고, 처리 과정에서 여러 가지 비합리적인 부분이 있었으니, 이후 비슷한 사건에서 회사도 부족했던 부분을 점검해 재발하지 않도록 신경 써 달라는 의견을 전달해주길 부탁했다. 








회사는 관리자들의 눈 밖에 벗어나 있는 나의 나태한 근무 태도로 인해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날 이후, 나에 대한 '집중 관리'가 이루어졌다. 본사 출근일은 주 1회에서 주 2-3회로 늘어났고, 코로나로 인한 오프라인 행사 축소로 주 1회만 매장에 근무하도록 했다. 매일 하는 업무를 상세히 정리하고, 각각 몇 분이 걸리는지 기록하게 했다. 또한 당장 하지 못하는 행사를 기획하게 하고, 기한도 빠듯하게 설정했다. 일을 위한 일이었다. 빠듯한 기한을 맞춰 기획서를 내도 일은 당연히 진행되지 않았고, 그냥 계속 문서를 쓸 뿐이었다. 손님이 적어도 매장관리를 위한 업무는 거의 줄어들지 않았지만, 일주일에 하루 출근하면 그 일을 다 처리해야 했다. 당장 처리해야 하는 매장 업무는 계속 쌓여 갔고, 나는 당장 필요하지 않은 일들을 기한 내에 처리하느라 골머리를 앓았다. 나는 계속 감시당하는 기분이었고, 시키기 위한 일을 하는 의미를 찾을 수 없었고, 매장은 더욱 엉망이 되었다. 내 마음도, 몸도, 정신도 모두 엉망이 되어 부서지고 있었다.


회사에서 운영하는 뉴스레터의 필진으로 참여하는 것이, 어둠의 구덩이 속 한 줄기 빛이었다. 처음에는 나를 제외한 부서원들만 필진으로 참여할 예정이었지만, 내가 용기를 내어 같이 참여하고 싶다고 이야기했고, 부서장에게 "니 일 소홀히 하면 안 된다."는 말을 들으며 함께할 수 있게 되었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독자의 피드백을 듣는 일. 그 일이 모든 일 중 가장 소중했다. 숨 쉬는 구멍이었다.


물리적 출근은 이틀에 한 번이었지만, 집에서도 업무를 하다 보니 퇴근 후에도 회사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밥 먹을 때도, 샤워를 할 때도, 심지어 꿈에서도 부서장의 가시 돋친 말들이 떠올랐다. 모두 나를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수군거리는 것 같았다. 마음을 나누던 선배들도 자주 볼 수 없었다. 주 1회 매장 출근일은 너무 바빴고, 출근일이 선배들과 겹치지 않는 날도 많았다. 극심한 우울을 앓았다. 살기 위해 요가와 명상을 시작했다. 생각을 비우려고 해도 쉽게 비울 수가 없었다. 






어느 날은 유튜브에서 한 명상 영상을 틀었다. 나레이터가 말했다.


"지금 내 눈앞에는 순수한 아이가 뛰어놀고 있습니다. 그 아이는 바로 어린 날의 나 자신입니다. 조건 없이 사랑받고, 존재 자체로 소중한, 우리는 그런 존재입니다."



누군가에겐 긍정적인 깨달음이 될 그 말이, 내게는 너무나 아팠다. 지금 이렇게 나약하고 자존감이 바닥난 이유가 모두 어린 시절에 조건 없이 사랑받은 적이 없기 때문인 것 같았다. 내 눈앞의 아이는 존재 자체로 소중한 했던 적 없이, 태어났을 때의 부모의 실망을 만회하려고 애쓰며 살아왔고, 그래서 자신을 증명하지 못하는 지금의 상황에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거라고, 조건 없이 사랑받은 아이만이 가질 수 있는 단단한 중심이 내게는 없다고 생각했다. 난 사랑받을 수 없는 인간이라고, 그런 적 없는 인간이라고, 그래서 어쩔 수 없다고. 그렇게 생각하며 두 시간을 엉엉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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