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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소 Jan 03. 2024

왠지 털어놓고 싶은 아침

크로아상을 데웠다

쓰고 싶은 마음은 귀하다. SNS에 선언하듯 '쓰고 싶은 마음을 꺼내어 쓰기로 한다.'라고 썼지만 무엇을 먼저 써야 하는지 여전히 뒤죽박죽이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소파에 누워 있다 창문으로 들어온 해를 받은 주방이 너무 예쁜 것이다. 카메라를 집었는데 내 눈에 보이는 각도와 애매하게 다른 카메라의 눈 때문에 요리조리 위로 올렸다 아래로 내렸다 하다 몇 번 셔터를 눌렀다. 아주 완벽하진 않지만 꽤 마음에 들었다. 창문에 묻은 손 얼룩이 그대로 보이고, 밥솥이 너무 적나라한가, 집기가 너무 지저분한가 싶었지만 '저게 우리 집의 본 모습인걸.' 하며 그대로 인스타그램에 올려버렸다. 어제 세운 오늘의 시간별 계획은 이미 망했고, 괜히 여유로운 아침을 즐기고 싶었다. 마침 요거트가 있었고, 일하는 까페에서 훔쳐온 비건 크로아상이 생각났다. 냉동실에서 꺼내 전자렌지의 에어프라이어 기능을 켰다. 전기포트에 물을 올리고, 얼마 전 2,5유로로 데려온 새빨간 스타벅스 컵을 꺼냈다. 티백을 꺼내려다 찻잎을 꺼내 막대사탕처럼 생긴 스테인리스 거름망에 넣었다. 유청을 빼놓은 그릭요거트에 마지막 남은 그래놀라 부스러기를 털어넣고 견과류도 뿌렸다. 빵이 다 되었다는 소리가 울렸고 모든 걸 거실 테이블에 올려놨다. 왠지 브리티시 락이 듣고 싶어서 블루투스 스피커에 연결해 자동 재생목록을 틀었다. 이제 여유로운 아침을 즐길 차례였다. 책을 읽을까, 웹툰을 볼까 고민하던 새에, 갑자기 쓰고 싶어졌다. 몇달 간 어떻게 해도 생기지 않던 그 귀한 마음이 오늘 나를 찾아왔다. 





나에게 쓰고 싶은 마음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언제나 마음 한 켠에 가지고 있는, '언젠가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마음이고, 또 하나는 '당장 무언가 쓰고 싶다.'하는 마음이다. 전자는 너무 오래 가지고 있어서 이제는 '언젠가 세계일주를 떠나고 싶다.'나 '부자가 되고 싶다.'와 비슷한 종류의 일이 되어버렸다. 항상 바라지만 그것을 위해 그 무엇도 하지 않는 마음 같은 거랄까. 전자를 위해서는 후자가 선행이 되어야 하는데 또 몇 달 간 후자는 나를 찾아와주지 않았다. 2023년의 마지막을 앞두고 생각했다. 언제까지나 이렇게 살 수는 없다고. 가능성에 중독된 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살 수는 없다고. 


'쓰고 싶은 마음을 꺼내어 이제는 쓰기로 한다.'라는 나의 선언은 그런 것이었다. 첫 번째 마음을 두 번째 마음으로 어떻게든 바꾸는 것. 거기에 나의 고질병인 '잘하지 못하는 것 같을 때 그만둬버리기'를 이겨내고 계속 하는 것. 어느 작가의 말처럼 '집필이 우선순위가 아닌 스케줄링 버리기'를 실천하는 것.


'글을 쓸 것이다.'라는 말은 사실 너무 모호하다. 어떤 글을 쓸건데? 


나는 언제나 픽션이 쓰고 싶었고, 여전히 픽션이 쓰고 싶다. 드라마를 쓰고 싶고, 시나리오를 쓰고 싶고, 요즘은 또 소설이 쓰고 싶다. 그런데 나에겐 이야기 씨앗이 없다. 학교에서 단편영화를 만들 때도 그랬다. 아이디어만 있으면 잘 풀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모호하다. 


그래도 올해는 잡히지 않는 무언가를 잡아서 이리 굴리고 저리 굴려볼 생각이다. 새해가 된다고 나라는 사람이 달라지진 않겠지만 잘하려는 마음을 버리고 무언가 해보려고 한다. 


여전히 하고 싶은 건 많고 우선순위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갑자기 크로아상이 먹고 싶어지는 것처럼, 당장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순간들이 찾아왔을 때 흘려보내지 않고 그 마음을 냉장고에서 꺼내 접시에 담는 것. 그게 올해의 내가 내딛을 한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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